아무것도 사랑할 수 없는 날을 견디는 법

어후 지긋지긋해

by 해구
오늘도 M의 그림


최근 며칠간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원인이랄지, 이유 같은 건 잘 모르겠다. 늘 이런 사이클이 인생에서 돌고 돈다는 건 알고 있었으니까 새삼스럽지는 않지만 지긋지긋하긴 하다.


지금 내 상태는 뭐랄까 항아리 밑이 뻥 뚫려서 아무것도 고일 수 없는 상태 같다. 끊임없이 생각하는 사람으로 태어나서 항아리에 구멍이 생기는 건 슬픈 일이다. 정보의 통로가 된 것처럼, 감정도 상황도, 생각도 의미들도 나를 스쳐 지나간다. 평소였으면 하나 둘 마음에 드는 것들을 담아 뒀다가 새벽마다 토해내듯 글을 썼을 텐데, 지금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도 나를 슬프게 하기 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글을 쓴다.


지금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사랑할 수 없다는 부분이다. 평소에 사랑하던 것들을 사랑할 수가 없다. 이런 날들을 잘 알고 있지만, 여전히 버겁다. 오늘도 버텨내는 날의 기록을 한다.




운동

우울하거나, 우울하거나 우울한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권하는 것이 가벼운 걷기이다. 다른 종류의 운동도 좋을 것이다. 알고 있다. 걸으면 조금 나아진다는 것쯤은 우울의 스페셜리스트들은 잘 알 테다.


샤워

샤워는 높은 확률로 도움이 된다. 욕조가 있다면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는 것도 좋겠다.


청소

방의 상태는 정신상 와 비례한다. 물건들을 정리하고, 쓰레기를 버리고 바닥을 쓸고 닦자.


좋은 것들 보기

사람에 따라서, [좋은 것]들의 정의가 달라지겠지만 나에게 좋은 것이란 좋은 영화, 좋은 날씨, 좋은 책이 떠오른다. 날씨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으니까 좋아하는 책이나, 영화를 본다. 꼭 미리 봤던, 결말을 알고 있는 영화를 보면 어느 정도 나은 기분이 된다. 봤던 영화를 또 보는 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고, 볼 때마다 다른 감상이 들기 때문에 ‘내 뇌가 굳은 건 아니구나’ 하고 안심할 수 있다.


잠 자기

상태가 심각하면 심각할수록 몸에서 내가 모르는 부분이 일하면서 잠이 오는 경우가 있었다. 그렇게 되면 한동안은 정말 이상할 정도로 잠만 자게 된다. 차라리 그렇게 된다면 꿈속으로 도망이라고 칠 수 있을 텐데, 요즘 같은 애매한 날들에는 잠이 오지 않는 날이 지속된다. 사실 운동, 청소, 샤워를 마치고 나면 높은 확률로 잠이 오지만, 그래도 잠이 안 온다면 아래의 방법들을 사용해서 최소 6시간은 자려고 한다.


- 스트레칭 : 폼롤러를 추천한다. 종아리가 쉽게 붓는 편인데 폼롤러로 다리 이곳저곳을 마사지해주면 시원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 ASMR : 이건 역시 취향을 타는 부분이지만, asmr의 종류는 다양하니까 한번 맞는 채널을 찾아보면 유용하다. 나는 계란과 설탕을 섞는 소리나, 말하는 영상을 좋아한다.


- 술 : 사실 가장 안 좋은 방법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나는 술을 한잔만 먹어도 졸리기 때문에 금방 잘 수 있다. 정말 기분이 끔찍하게 별로라서 기절하듯 자고 싶을 때만 쓰는 방법이다.


- 수면 유도제 : 가장 간편한 방법이다. 수면유도제라는 약을 쓴다는 사실이 거부감이 들 수도 있지만 3000원~5000원에 10알 넘게 들어있는 약을 사놓으면 언제든지 먹을 수 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효과도 괜찮은 편이다. 이번 우울한 날에 먹어 봤는데, 나는 효과가 별로였다. 뇌는 자라고 하면서 멍해지는데 몸은 깨어있는 느낌이었다. 자려고 마음먹으면 잘 수 있는 상태지만 자발적으로 자려고 하지 않으면 잘 수 없는 것 같았다. 그래도 정말 자고 싶은데 잠들 수 없는 분들에게 병원 수면제 처방전에 써볼 만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은 뭐랄까 너무 지긋지긋해서 2022년에도 내가 이렇게 지긋지긋하게 살고 있다는 작은 기록이다. 누군가에게 도움..? 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겹도록 우울하게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괜찮아질 몇몇을 상상하면서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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