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의 영화감상문: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20170121]

by 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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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21. 토요일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늙은 80세 노인으로 태어난 ‘벤자민’은 낳아준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늙은 자신의 아이를 보며 잘 키워달라는 부탁을 엄마(부인)에게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양로원 앞에 아이를 버린다. 18달러와 함께 말이다. 양로원의 퀴니는 불임의 여인으로 아이를 보자 신의 이라며 아이를 거두어 준다. 생각보다 벤자민의 아버지가 그나마 잘한 일이라고 한다면 양로원에 아이를 버린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벤자민이 7살 일떼 그는 걷지 못하는 늙은 노인과 같았다. 만약 그가 보육원 앞에 버려졌다면 그는 노인 모습으로 어린아이들과 함께 자라며 유년기 시절을 평화롭게 보내지 못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벤자민은 계속 퀴니의 애정 아래 양로원 안에서 자신과 닮은 처지의 친구들을 하나둘 잃어가며 지내다가 퀴니 남편의 친구 통장으로 처음 양로원 밖으로 나가보게 된다. 그에게 여러이야기를 듣고 혼자 밤새 걸어 집으로 오기도 했다. 벤자민은 그날이 많은 것을 한 날이라고 했다. 그 후 그가 7살 즈음일 때 데이지를 만난다. 일요일마다 양로원 할머니들의 손자 손녀들이 오는데 아마 그때 벤자민이 푸른 눈의 데이지에 데 첫눈에 반한 것 같았다. 데이지는 벤자민의 비밀(시간이 지날수록 젊어지는 것)을 알게 되고 받아들인달까.. 너무 당연하게 너는 그럴 줄 알았다고 한다. 데이지는 점점 자라서 소녀가 되고 벤자민은 일당 2달러를 주는 배의 잡일꾼으로 들어가게 된다. 양로원을 떠나는 것인데 이때 그의 나이는 17살 겉모습은 지팡이를 짊어지고 다니는 노인이었다. 그는 배일에 아주 만족했다. 그냥도 해줄 수 있는 일인데 돈을 주다니! 이러면서 말이다. 그 배의 선장은 처음에 벤자민을 금방 쓰러질 것 같은 다리로 뭘 하겠나 싶었지만 그가 괘 마음에 든 것 같다. 나중에는 벤자민과 술 마시며 자기는 예술가가 되고 싶었는데 잣기는 그 꿈을 이뤘다며 몸의 문신을 보여주며 자랑한다. 이러면서 벤자민은 첫 경험도 해보고 사랑도 하게 된다. 벤자민은 전쟁에 참전하기도 했다.(이때 건원 반이상이 죽고 선장도 죽는다.) 전쟁이 끝난 것을 시작으로 벤자민이 집으로 돌아가게 되고 데이지와의 관계가 시작된다. 데이지와는 벤자민이 집으로 돌아오고 2주 후 정도에 만났는데 굉장히 근사한 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데이지는 그날 바로 자신의 직업이자 꿈인 무용수로서 뉴욕으로 떠나야 했다. 벤자민은 밤을 청하는 데이지를 밀어낸다. 그렇게 어색한 헤어짐과 함께 벤자민에게는 새로운 만남이 찾아온다. 그를 버린 아버지가 나타난 거다. 그의 아버지는 전에도 술을 나누며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은 적이 있다. 그 아버지는 자신이 병에 걸렸다며 벤자민을 버린 것을 후회한다고 했다. (영화 속에서는 간간히 그의 아버지가 양로원 앞에서 벤자민을 살펴보는 모습이 나오기도 했다.) 벤자민 아버지의 마지막 날, 함께 노을 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독백으로 ‘살면서 세상이 더럽다고 소리쳐도 되고 욕해도 되고 신을 믿어도 되지만, 마지막에는 받아들여야 해.’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고 그의 아버지는 벤자민의 곁에서 숨을 거둔다. 그 이후부터 벤자민은 데이지와 열렬한 사랑을 한다. 중단에 찢어진 일기장 때문에 이야기가 중간에 뛰어넘고 데이지는 차에 친인다. 이때 벤자민은 ‘삶은 상호작용의 연속이다.’ 라면서 데이지가 차에 치인 상황을 하나하나 집어가면서 누가 뭐뭐 했다면 데이지는 차에 안치였겠지, 이랬다면 괜찮았겠지. 하면서 수많은 만약들을 가정하고 후회한다. 지금 팔이 아파서 짧게 줄이자면 데이지와 사랑하다, 오래간만에 돌아온 양로원에서 키워준 어머니인 퀴니가 죽었다는 걸 알게 된다. 그 후 그들을 집을 팔고, 새집을 사서 행복하게 지내다가 아이를 갖는다. 데이지는 마냥 좋아하면서 잘 키울 수 있다고 말했지만, 벤자민은 아이가 자기처럼 늙어가는 삶을 가지고 태어나면 어쩌나, 점점 어려지는 스스로가 아빠 노릇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 어떡하지, 하면서 걱정이 가득했다. 하지만 데이지의 불가능은 없다는 말을 듣고 용기를 내서, 아이를 낳고 1살까지 함께한다. 그는 어느 날 데이지와 딸을 두고 떠나지만. 이때 벤자민은 데이지와 딸이 편하게 살 수 있도록 요트를 판 돈을 모아 통장에 돈을 넣어두고 떠난다. 떠나면서 딸이 자신을 기억하기 전에 떠나야 한다고 말한다. 참 서글프다.

그 후 벤자민은 인도를 가거나 뭐 여러 나라를 돌아다닌다. 그리고 이때 명대사들이 나온다.

[살아가면서 너무 늦거나 이른 건 없다]

[조금이라도 후회가 생긴다면 용기 내서 다시 시작해라]

-네가 보고 싶은 걸 보고 너랑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났으면 좋겠구나.

-아빠 노릇을 할 수 만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

딸에게 보낸 엽서에 적힌 말들, 딸에게 전하는 말이다.

딸이 12살 일 때 데이지 앞으로 벤자민이 찾아간 적이 있었는데, 이때 만난 데이지가 하는 말이 슬펐다. [당신이 옳았어. 아이를 둘이나 키울 순 없었을 거야.]

그리고 시간은 흘러 흘러 데이지가 늘고 벤자민이 대략 10살 즈음의 외모로 어려졌을 때, 데이지는 벤자민을 돌봐준다. 벤자민은 점점 어려지고 걷는 방법을 잊고, 말하는 방법을 잊어갔고, 데이지는 점점 주름지고ㅓ 허리가 굽어갔다. 볕이 좋은 어느 날 작은 신생아가 된 벤자민은 데이지의 품속에서 조용히 눈을 감는다.

그 이후에 나오는 장면으로 이 이야기들은 데이지가 병원 침대에 누워서 딸에게 이야기해주던 것이었고, 데이지는 ‘굿 나이트 벤자민’학 말하며 생을 마감하는 것으로 이영화는 막을 내린다.

사실 내 마음대로 생략한 내용이 있다. 시계 정인 이야기인데 죽은 아들이 살아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거꾸로 흐르는 시계를 만들었는데 진짜 영화 마지막 장면으로는 그 시계가, 낡은 작오ᅟ겁실 구석에 박혀서 여전히 거꾸로 시간이 가고 있고 바닥에는 허리케인과 비로 인해 물이 차오르고 있어서, 물에 잠겨가는 시계의 모습으로 영화가 진짜로 끝난다.

이 노트를 쓰면서 줄거리랄까, 여하튼 글을 제일 길게 쓴 것 같다. 아우 팔아 파.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느낌은 ‘괜찮은 영화다.’싶은 말이 육성으로 나왔다. 그냥 단순히 교훈적이고 한 느낌이 들어서 그런 말이 나온 게 맞다. 이 영화는 굉장히 ‘삶’에 대해,‘인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지금 당장이 아니라 긴-삶을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양로원에서 사람들이 하나둘 없어지고 죽어가고 벤자민의 부모님도 죽고 데이지도 죽고 굉장히 죽음과 밀접한 영화다. 그만큼 죽음에 대해 무뎌진달까? 눈을 감는 노인의 모습에 담담해지는 내 모습을 보니, 기분이 참 묘하다. 대부분의 영화가 그렇긴 한데, 이 영화도 뭘 말하고 싶은 지 대충 감은 잡히고 느낌은 알겠는데, 역시 정확히 이영화가 말하는 메시지를 간결하게 말하지는 못하겠다. 뭐 당연할 수 도 있지만.

나는 벤자민이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사람 하는 사람의 품에서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물론 탈 많은, 좀 굴곡이 많은 삶이라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그만큼 평범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행복한 삶으로 보였다. 내 눈에는 말이다. 어우 팔아 파.

음 역시 불가능이란 없지. (임파서블 이즈 낫띵)


(아래로는 감상문 이미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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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겨 쓰는 내내 과도하게 쏟아지는 사건들의 나열에 의문이 들었다. 이 시절의 나는 왜 이렇게까지 사건과 줄거리에 집착했던 걸까? 칸이 좁은 노트 두 바닥을 빽빽하게 줄거리로 채우고, 세 번째 바닥에 헐 빈 하게 감상을 적었다. 손이 아프다는 말과 함께..


누가 읽을 일도 없는 감상문이었는데, 왜 이렇게 까지..? 나중의 내가 이렇게 써먹을 줄 알고 있었던 걸까. 그때야 쏟아져 나오는 말들을 글로 주워 담느라 급했던 것 같지만..


줄거리를 줄줄 써준 덕분에 영화 장면 하나하나가 섬세하게 떠올랐다. 그리고 영화 속의 명대사들을 보고 많이 놀랐다. 저때는 저 명언들이 멋있다고 생각하기는 했는데, 나에게 필요한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15살은 어리고, 15살들은 의외로 스스로가 어린걸 아주 잘 안다. 그때야말로 후회 같은 건 없던 시절이었다. 조금 찝찝하게 후회가 되면 금세 바로잡을 수 있는 것들이었으니까, 너무 당연한 말을 멋있게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정말 뼈에 다가오는 명언이다. 사람들 생각하는 건 다 똑같은가 보다. 살아가면서 너무 빠르거나 너무 늦은 게 없다는 건 정론이고, 명언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후회되는 지나온 일에 뛰어드는 게 현실에서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아는 사람들은 씁쓸하게 '그렇지..' 하게 된다. 그럴 때 딱 등을 밀어주는 이런 말들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 지금에서야 알겠다.


벤자민의 삶이 행복하고 좋은 삶이라고 생각했던 건 지금도 그렇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중요한 것과 사랑을 비교하면서 무게를 가늠하곤 한다.(일이랑 사랑 중에 뭐가 더 중요해? 같은) 놀라운 건 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선택한다는 거다. 중학생 때는 그런 거 이해 못 할 때였다. 진심으로 사랑이 밥 먹여 주냐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중학생에게도 벤자민이 행복해 보였다면 영화를 참 잘 만들어 줬구나 싶다.




아마 이 감상문 노트에서 가장 긴 글인 것 같은데, 그만큼 지금도 좋아하는 영화다. 옮겨쓰기에도 빡빡한 이 글을 볼펜으로 꾹꾹 눌러썼을 중학생을 생각하면 지금의 나를 반성하게 된다. 그때보다야 체력도 열정도 모자라지만 해야 할 것들을 훨씬 많아졌다. 과거의 내가 좋다고 벌여놓은 일들이라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일이 쌓여서 버거울 때면 과거의 내가 미워지기도 하는데, 이 글을 쓴 중학생은 도저히 미워할 수가 없다. 참 열정적이었고, 대견하고 멋지다. 글로 남겨놓길 참 잘했어. 이런 마음으로 오늘도 글을 쓴다. 10년 뒤에 내가 미워하지 못할 사람이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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