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학생 시절부터 책을 많이 읽는 아이였다. 웃기게도 책을 너무 좋아해서 많이 읽는 건 아니었고, 독서왕 상장을 갖고 싶었다. 상장하나 받으려고 즐겁게 100권씩 읽는 애들를 견제했었다. 그렇게 꾸역꾸역 101권을 읽는 애였다.(이걸 읽었다고 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이야기의 참맛을 알게 된 건 중학생이 되고나서부터였는데, 인터넷 소설, 이라고 불리는 종류의 소설로 밤을 새우면서 이야기에 빠지기 시작했다. (뱀파이어가 나오고.. 여자 주인공과의 로맨스가 어쩌고저쩌고 한 책이었는데... 사실 지금도 그것의 엇비슷한 이야기들은 좋아한다. 하하) 꾸역 꾸역이라도 씹어 삼켰던 책이랑, 인터넷 로맨스 소설이 도움이 된 건지, 타고난 건지 잘 모르겠지만 기억하는 순간부터 글을 잘 썼다.(그렇게 평가받았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글을 쓰는 게 편안했다. 말하는 걸 좋아하고 잘했었던 덕에 말하듯이 글을 썼던 덕도 있었던 것 같다. 타고난 거짓말쟁이라서 독후감에 없던 감상을 만들어 넣는 것들도 참 쉬운 일이었다. 조금만 신경 써서 글을 쓰면 여기저기서 상을 받으니까 글 쓰는 건 좋았다.(초등학생 때는 상장 때문에 책을 억지로 읽을 정도였으니, 상장이라면 뭐든 좋았다.)
그래서인지 글 쓰는 건 뭐랄까 당연한?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한때 작가가 멋지다고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시기도 있었는데, 그건 글을 창작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노벨문학상을 받고 싶었다. 누가 노벨상 받으려고 작가가 되는가... 어릴 때였다.. 아무튼 삶에 글이, 창작이 목적이었던 적은 없었다.
그런데 나는 왜 글을 쓸까?
시간이 조금씩 흐르면서 다들 다른 삶의 양식을 갖게 되는데, 그건 서로가 묶여있을 때는 모호해 보였던 자신만의 것들이 선명하게 드러나게 하는 것 같다.
나에겐 그게 책과 글이다.
한 몸처럼 다니던 친구들과 각자의 자리가 생기면서 나에게 남아있는 것은 책이었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책은 참 멋지고, 좋다고 생각한다. 지식의 보물창고 같은 도서관을 사랑하고 좋아하니까, 책이랑 가까웠다.
20대 초반의 학교생활을 하면서는 자기소개할 일이 정망 정말 많았다. 영어로, 불어로, 한국어로, 어딜 가든 똑같은 말을 해야 했다. 이름, 나이, 고향, 전공, 좋아하는 음식, 영화, 책, 그리고 좋아하는 것들. 수많은 자기소개를 하면서 알게 된 건 내가 좋아하는 건 책을 포함한 '이야기들'이었다. 매체는 영화, 드라마, 애니, 만화, 글 등 상관없다. 각자의 맛이 있는데 좋은 이야기면 정말 뭐든 상관없다. 이런 이야기를 잔뜩 먹고 자랐고, 앞으로도 이런 것들 없이는 살지 못할 거라는 확신이 있다. 나는 이야기가 필요한 사람이다.
내가 쓰는 글의 종류는 크게 분류하자면 아래와 같다.
일기/브런치/블로그/트위터/인스타그램
-있었던 일(사실)을 작성한 글
-픽션을 가미해서 있었던 일을 작성한 글
-일어나지 않은 일을 작성한 글
-생각을 정리한 글
=감정을 뱉어낸 글
-거짓말을 고백하는 글
소설
-완벽한 픽션의 소설
그런데 이야기가 필요한 모두가 창작을 하지는 않는다. 특히 소설가? 라는건..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을 빌리자면 제정신인 사람은 소설 같은 거 쓰지 않을 거라고 한다.(농담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소설은 세상에 없는 세상과 규칙, 사람을 만드는 일이다.(어쩌면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이건 진짜 재밌다. 뭐든지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창조주가 된다. 단순히 즐겁다. 이렇게 성가신 방법으로 즐거울 수가 있나 싶지만, 아직은 이것보다 즐거운 일은 별로 없다. 이걸 구체화하고 작가로서 마인드 셋 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데, 쉽지 않지만 이걸로 내 세계가 더 견고해질 거라고 생각하면 참 좋다.
글을 쓰면 나를 정의하는 기분이 든다. 정리와는 다른 것이다. 불명확한, 나도 모르는 무언가에 흐릿한 네임텍을 달아주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쓰면 쓸수록 네임텍은 선명해지고 금세 아 그렇구나. 하고 납득하게 된다. 그건 꽤 기분 좋은 일이다. 일기 같은 에세이, 수필들을 있었던 일, 느꼈던 것을 쓰는 일이니까 수다쟁이 나에게는 대화와 같은 개념이다. 벽에 대고 말하는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것도 나름대로 즐거우니 상관없다. 하루키처럼 독자에게 좋은 이야기를 제공하기 위해 글을 쓰는 작가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역시 나는 나를 위해 글을 쓴다. 언젠가 변할 수 있지만, 지금은 온전히 나를 위해 쓴다.
모두가 글을 쓰지는 않지만 글이 내 세상에 들어온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이것 없이는 삶이 불완전해질 것임을 알고 있었다. 글을 읽으면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면서 사랑할 수 있을 것 같고 글을 쓰면 본격적으로 사랑하게 된다. 이렇게 앉아서 손가락을 움직이는 걸로 세상에 편입되고, 누군가를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건 정말 좋은 일이다.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사람이라서 정말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