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제본 서평
딜리 터:사라지게 해드립니다 - 서평
2022년 7월 14-15일(금)에 완독
출판사, 자이언트 북스에서 가제본을 받아서 서평을 작성하게 됐습니다. 작가님이 비밀인 채로 도착한 가제본을 은근한 기대를 가지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완독한 후의 느낌은 재밌다는 느낌입니다. 초반 몇 페이지를 제외하면 속도가 굉장히 빠른 소설입니다. 쭉쭉 빠지는 전개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좋아하실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문체나 소재가 어렵지 않아서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출판사 측에서 작가님을 마음껏 추리해 보라고 하시니 생각해 보건대, 신인작가님이 아닐까 하고 예상해 봅니다. 아래로는 인스타에 업로드한 서평의 전문입니다.:)
".. 지우는 걸 최고로 잘하는 인간들 중에서도 가장 잘 지우는 사람들이 바로 딜리터들이다._[딜리터 묵시록] 중에서"
세상에는 '지우는 일'을 하는 딜리 터라는 존재들이 있다.
베스트셀러 소설가인 강 치우에게 소하윤의 실종 건으로 대화를 하자는 오재도가 찾아온다. 강치우는 그에게 적대심을 보이며전 여자친구인 하윤과는 10개월 전을 마지막으로 보지 못했다고 한다. 강치는 자신에게 없는 능력, 세상의 여분 레이어를 볼 수 있는 조니 수를 만나면서 하윤을 찾는다. 하윤을 찾는 사람과, 딜리 터의 능력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얽히며 이어지는 현대 판타지 소설이다.
딜리터의 질문 법과 딜리팅
-딜리 터는 대상자에게 스무 개의 질문을 던진다. (질문은 딜리 터가 정한다)
-대상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진실하지 않은 대답으로는 딜리팅이 불가능하다.
-스무 개의 답을 모두 듣게 되었을 때 그 사람의 실체가 드러나고 비로소 딜리팅이 가능해진다.
세상을 '레이어'의 개념으로 바라보는 설정이 재미있었다. 딜리 터는 언뜻 보기에는 물건을 없애는 사람들 같지만, 사실은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안 보이는 여분 레이어로 옮기는 사람들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읽고 현실의 몇몇 사람들을 떠올렸다. 우리는 모두가 같은 것을 보고, 같은 세상에 사는 것 같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우리는 슬픈 기억을 기억하려 하고, 남들이 보지 않는 것들을 보고, 마음에 담고 해결하기 위해 발버둥 치거나 좌절하는 사람들을 알고 있다. 조이수를 보면서 그런 사람들이 생각나서 사랑스러웠다.
이야기의 맥을 끌고가는 강치우는 알면 알수록 평범한 사람인 게 드러났다. 딜리터라는 능력을 가진 것부터가 평범과는 거리가 멀지만, 나는 이야기 속에서 가장 평범한 사람 중에 한 명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는 평범이란,실수하고 후회하는 것이다. 작중에서는 내내 많은 것에 시니컬하고 초연하게 대처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소윤의 이야기가 나오면 초조해하거나, 남의 눈치를 보기도 하고, 무엇보다 가슴 깊이 '나는 그래서는 안됐어.'라고 후회하고 있다. 그 후회를 후회로 남겨두지 않기 위해 이 이야기를 이끌어준 강치우가 매력적이었다.
이 책을 읽게 되는 많은 분들이 그러실 거라 예상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조이수다. 여분의 레이어를 보는 이수는 어느 날 갑자기 생겨버린 능력에 고통스러워한다. 픽 투 스페이어와 빅토르에 대해 알고 나서 그간의 고통을 모조리 이해받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강치 우의 조력자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정보를 거를 수 있게 선글라스를 쓰고 다니는 이 여자가 정말 매력적이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볼 수 있다는 건 굉장히 고독한 일일 거다. 하지만 누군가는 해줘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그녀가 여분의 레이어를 봐준 덕분에 강치우의 후회, 하윤 씨를 만날 수 있었다.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필요한 사람은 대체로 안타깝고, 사랑스럽다.
*'말하는' 문장들 - 이 이야기는 보여주는 소설보다는 말하는 소설에 가깝다. 몇몇 장면들은 보여주지만, 대부분의 장면은 말해준다. 작품의 분위기와 작가의 문체에 따라 어느 것이 더 좋고 나쁜지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 소설의 글이 내게 전달해 주는 이야기의 선명도는 낮은 편이다. 눈앞에 그려지지도 않고 상상이 되는 것도 아닌 애매한 문장들이 많습니다. 대화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끌고 가기 때문인데요. 저는 읽는 내내 이 인물은 이 대사를 하면서 어떤 표정을 지었으니 알 수 없으니 굉장히 답답했다. 어떤 인물은 살아있는 캐릭터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시점과 캐릭터 - 기본적으로 3인칭의 전지적 작가 시점이지만, 설명의 부재, 지나치게 상투적인 대사, 그에 비해 자주 바뀌는 인물들로 인해 누가 누군지 알기 어려웠습니다. 이는 인물 한 명 한 명이 책 속에서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는 서평을 작성해야 하는 입장으로서,처음에는 이게 누가 누구람. 어파라 아? 하는 느낌으로 1회독을 하고 서평을 위해 빠르게 필기를 하면서 다시 읽을 때야 인물들이 조금 보이기 시작했다. '말하는'소설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지요. 저는 설명이 좀 더 필요하다고 느꼈다.
*소재 - 읽기 시작한 순간부터 청소년문학적인 소재라고 느꼈다. 나는 청소년 문학을 호호 할머니가 될 때까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서 괜찮았지만, 몇몇 분들은 다소 오글거리거나 인 소감성의 소재라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이건 취향의 영역인긴 하다!
저녁 먹기 전에 이 이야기를 다 읽고 나서 나의 '레이어'에 대해서 생각했다. 내 컴퓨터 속에 잠들어있는 수많은 레이어들은 언젠가의 '혹시'와 예측 못할 '만약'을 위해 삭제되지 못한 채 묶이고, 잠기고, 꺼져있다. 누군가는 깔끔하게 레이어를 사용하고 정리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아직 그렇게 요령이 좋지 못하다. 겹겹이 있는 수많은 레이어들과 그곳으로 도망친 사람들을 생각했다.
사람을 레이어로 옮기려면, 여분 레이어를 보려면, 딜리팅하는 것처럼 그 사람을 온전히 다 알아야 볼 수 있다. 그것을 위해 딜리 터가 준비한 스무 개의 질문과 그에 대한 진실한 답들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런데, 스무 개의 질문과 진실한 답변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나? 딜리 터의 딜리팅 조건을 만족하면 정말 지울 수 있나? 지우는 거라고 했던 딜리팅조차 다른 여분의 레이어로 옮기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이 이야기가 어떤 질문과 진실한 대답으로도 한 사람의 모든 것을 알 수 없고, 세상의 어떤 것도 지울 수 없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지우고 싶은 수많은 과거와 현재들, 살아가는 우리들은 한 한 레이어 안에서 요령 없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래서 서로 부딪치고, 얽히고 알아가며 사랑하게 되는구나 싶다. 어떻게든 설득해서 이곳에 함께 머물러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생각나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