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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영 Feb 13. 2017

어떤 밤


비가 와, 그럼 어느 사이엔가, 습해져 있곤 하지. 
가끔씩, 격렬해져 있다가, 다시 이런 밤엔 순해져 있곤 해. 
순하게 눈뜨는, 착한 습관을 가질 수 있을까.

빈약한 의식이 마음에 안겨주는 무게와,
마음이 빈약한 의식만의 타성이 만들어낸 무게, 란
표현을 어디선가 읽었지. 

언제부터인가, 나는, 내 의식이란, 혹은 영혼이란, 아주 얇고
얇아져, 이제 더는 지층이란 걸 가지지 못하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해. 기억의, 존재의 지층.


사물이 지닌 시공간에 포커스를 맞추는 일이, 
이제 막 카메라를 손에 든 것처럼 아주 흥미롭게 다가오곤 하지. 
보정을 하면서, 불필요한 여백을 자르고, 혹은 인위적인 색감을 추출해 내는 
일련의 과정이 주는 느낌 또한 색다르고.

아직은 자연스러운, 깊은 질감을 표현해 내지 못하지만,
언젠가, 내가 더 깊어지고, 더 많은 삶의 이야기들이 자연스레 고여 든다면,
시간의 결도 좀 더 부드럽게 표현해낼 수 있을까.

어느 사이엔가, 이토록, 많은 시간들이 흘러갔어. 
천천히 차올랐다가는, 빠르게 휘몰아치다,
다시 부드러워 있는, 
수많은 시간들.
이런 밤에는, 그 시간들도 천천히 어루만질 수 있을 것만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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