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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영 Feb 01. 2017

안개에 대한 기록


안개는 곳곳마다 내려앉았다. 세상 그 어디라도 안개가 닿지 않는 것은 없었다. 나도 요절한 기형도 시인처럼 안개의 주식을 갖고 있었다.


안개는 경고다. 사물의 경계선을 무너뜨리는 안개는, 우리에게 제일 먼저 거리를 잊게 한다. 나와 너의 거리, 지워짐과 잊혀짐의 그 언저리, 한때 가벼우리만큼 나를 닮은 기억과 망각의 얇은 두께. 그래서 안개의 곁에 서게 되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시간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아니다, 안개는 돋아오름이다. 올가미다. 때때로 바쁜 일상의 물결 속에서 잊혔던 나뭇잎이, 길모퉁이가, 연자줏빛 꽃송이가 누군가가 확- 끄집어내듯이 우리 눈앞으로 내던져지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안개가 우리 앞에 집어 던지는 사물들의 생생한 목소리에 시선을 강탈당한다. 그때야 우리는 나뭇잎의 짙푸른 초록의 정맥들을 손끝으로 생생하게 읽어내는 것이다.



잊힘과 잊히지 않음, 그 사이의 속도에서 자주 길을 잃는다. 이것은 또한 흐린 날의 기록.


기록, 새겨짐, 지층. 이것은 키워드. 나와 당신을 이어주는 또 하나의 장치. 타닥타닥, 경쾌하게 손가락으로 읽히는 당신과 나의 패스워드.


안개는 도둑처럼 목덜미를 타고 누른다. 이런 날이면 거리의 사람들은 안개를 닮은 짙푸른 기억의 옷을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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