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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영 Feb 02. 2017

안개에 대한 기록 #2


차창 밖으로는 안개가 짙었다. 차 안에는 히터가 세게 틀어져 있었다. 팔을 타고 오소소 소름이 돋아왔다. 바깥도 틀림없이 추울 터였다. 거리에서 차를 기다리는 동안 분명 차가운 바람들이 손끝을 감싸 안고는 했으니. 나는 잠시 외투를 쓰다듬어 본다. 냉기. 그렇다. 이 차가움. 저 바깥에 산재하여 있는 거대한 갈색빛의 가지들은 그 사이사이로 스며드는 바람과 함께 안개의 무게도 같이 견디고 있을 거다.


안개는 모든 것을 가리고, 또한 잠자고 있던 것들을 깨운다. 안개 속에서 저마다 기억들은 제 빛깔로 뚜벅뚜벅 걸어 나온다. 그래서 안개 속에서는 길을 잃는 게 당연했다. 무성한 기억의 숲. 방금 나는 그 숲을 헤치고 나왔다.


당신의 기억도 안녕하신가. 늘 안부를 물으며 나도 간다. 때때로 벼랑 끝 같은 세상살이를 모른 척하며, 소매 끝에 묻은 물기도 보지 않으며 나는 간다.


안녕하신가. 간혹 누군가 내게 건네는 작은 아메리카노, 혹은 낯선 이의 다정한 포옹. 나는 괜찮다, 너는 밥은 제대로 챙겨 먹었니, 수화기를 타고 넘어오는 목소리. 그런 온기들이 이 냉기 속에서 나를 숨 쉬게 한다. 안개가 가슴 속에 주렁주렁 매달려오더라도, 나는 이 온기의 무게로 다시 걷는다, 다시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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