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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푸른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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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영 Feb 03. 2017

P.M.  10:07


이 도시는 낯.설.다. 한때 이 도시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품던 어린 나이가 있었다. 자주 와서 이 도시의 바람에 몸을 맡겨보곤 하지만, 여전히 내게는 낯설다. 나는 분명, 주류가 아닌, 반주류일 것이다.

이미지를 분할해본다. 아홉 조각이 난 도시는 그래도 빛난다. 분할되어도, 여전히, 도시라는 본성은 변하지 않을 것이므로.


찬란한 불빛 아래 어디선가 몸을 뉘이고 있을 서투른 나날들. 긴 몸을 흔들며 간다. 안녕, 안녕, 안녕, 손 흔들며, 더 짙고 깊게 일렁거릴 어둠 속으로, 내 미약한 날들도 간다.


벌써 2월이다, 한 해의 시작에서, 나는 또 무엇을 보내며, 무엇을 놓아주어야만 할까. 한 해 한 해 세월이 내 안에 똬리 짓는 것을 허용하며, 내 안의 빈집들은 늘어만 간다. 언젠가는 출렁거릴 것이다, 숭숭, 허한 바람만 깃들던 이 빈집들이, 기쁨으로, 혹은 환한 빛으로, 복사빛으로 곱게 빛날 것이다, 그리 믿었던 날들도 있었다. 그런 날일수록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더 멀었다.


혹은, 무디어지길 바랬다. 다 그런 거야, 시간이 지나면, 다 잊혀, 그렇게 지워져 가는 거야, 상처 위에 내려앉은 딱딱한 껍질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기억이 나지 않지,라고 무수히 많은 이들이 말했다, 책에서, 직장 상사가, 늙은 어머니가. 허나, 지금은 이 도시 어딘가에서, 멈출 수 없었던 바람들도 잠시 곤한 잠을 청할 것이다. 세상의 모든 웅크린 불안한 젊음에게 축복을, 그리고 모든 서른 즈음에도 건배를.



내일은,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충북 보은으로 떠난다. 아마도, 수령 400여 년이 훌쩍 넘은 느티나무가 있는 그곳의 바람은 한결 웅숭깊으리라. 마당 깊은 집- 아흔, 깊은 주름의 증조할머니가 아침마다 빗질로 하루를 깨우는, 따뜻한 아침밥상이 혼곤한 지난밤을 따스하게 품어주는 곳. 그곳에서 나도, 내 안의 바람들도, 조금쯤은 맑게 눈을 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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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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