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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영 Mar 13. 2017

사평역에서

곽재구



곽재구의 <사평역(沙平驛)에서>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게 있어, 곽재구 시인의 <사평역에서>는 참으로 닮고 싶은 시였다. 교과서처럼, 나는, 이 시를 외우고 다녔다.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시인은 첫 문장에서 이미 ‘시란 이런 것이다.’라고 말하는 듯했다. 내게 이 첫 문장은 목에 걸린 굵은 가시처럼, 쉽게 빠져나갈 수 없는 그 무엇이었다. 실제로, 무언가를 기다려 본 사람은 안다. 항상 기다리는 것은 쉽게 오지 않았다. 더구나 ‘막차’라니. ‘막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누구나 노곤함을 매달고 있기 마련이었다. 놓칠지도 모른다는,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불안감은, 가슴 어딘가에 늘 달고 다니는 만성위염과도 같았다. 이미, 그들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몰려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담담한 듯 시인이 그려내는 문장에는 현란한 수사법도, 이질적인 어휘들이 난무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라도, 시인이 그려내는 풍경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시를 가까이 하든, 혹은 그저 일상을 살아가기에 급급한 사람들일지라도, 시인이 서 있는 그곳에 함께 발을 담그고 있는 느낌을 가질 수 있는, 담담하기에, 더 깊은 마음이 잘 전해지는,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는 역사(驛舍)에 서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마른 어깨를 가졌고, 조금은 거친 마디를 지닌 손으로 쿨럭이는 이들의 마냥 가볍지만은 않은 나이들은, 제법 무거웠을 것이다. 아주 작은 틈이지만, 나는 그들의 인생을 엿본 듯했다. 어둡고, 저물어가는, 실낱처럼 가늘고 희미한 그믐처럼, 야위어 가는 사람들의 하루살이가, 마치, 나와 같아서, 차마 당신에게는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그 자정 즈음의 시간이 유난히도 길었던, 기억이, 한없이 작아지던 시간들이 잘박거리던, 그날들이 여전히 내게도 있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는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무게를 지니지 않는 말들이 얼마나 쉬이 흩어지는지, 그리고 말로써는 위안이 될 수 없음을, 이미, 서로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정이 넘어가는 역사에서, 시인은, 아마도, 술에 취한 사람들을 보았을 것이고, 한 두릅의 굴비를 들고 있는 이를, 고향으로 들고 갈 약간의 과일 더미를 어색해하며 만지는 이들을 보았을 것이다. 고향을 떠나, 고시원이나 옥탑방에서 지친 새우잠을 자면서도, 가족들에게 쉬이 기쁜 소식을 전하지 못하는 이 시대의 수많은 이들처럼, 오히려 침묵이 더 큰 위안이 되는 하루를 살아내 본 이들은 안다. 가족이란, 때때로, 타인보다 더, 가장 먼 다리를 건너가야 하는 사이라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고 차가운 강물 저 밑바닥에는 ‘여기’와 ‘저기’가 서로 이어지고 있음을 안다.

    

[눈꽃]은 [쌰륵쌰륵] 소리를 내며 [쌓여간다.] 이 서러움도 새하얀 눈으로 덮일 거라고 조용히 위로를 건네는 시인을 본다. 저마다의 아픔과 서러움으로 층층이 쌓여가는 이들도, 그래서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시는] 것이다.


과장되지 않는 언어, 아프다고, 절절하다고, 감정의 과잉을 남발하지 않는 담담함. 쉽고 평이한 어조. 그런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은 성찰이 돋보이는 시라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관통한다. 쉽고 담담하고 평범하되, 사람의 가장 깊숙한 곳, 그 누구라도, ‘아, 그래, 나도 그랬지.’라고 고개 끄덕이게 만드는. 동시에 위로를 건넬 줄 아는. 때때로 스쳐 지나가는 것들이 위로가 되기도 하는 것처럼. 어둠 속에서는 [단풍잎 같은] 고운 [몇 잎의 차장을 달고] 우리 곁을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간다], 그 작은 불빛들이 더욱 절실하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추운 겨울날 오래도록 문 밖을 헤매던 사람들일 것이다.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그렇게 이제는 낡은 역사에서 떠나야 할 시간이다. 가서는 돌아오지 않는 것들을 우리는 너무 많이 잃어버렸다. 하나하나 작은 이별을 건네고, 돌아서는 것들이 부끄럽지 않다고,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참으로 많은 눈물과 만나게 된다고, 그러니 우리는 이제 ‘역’을 떠나 어디론가로 향해도 된다는 따뜻한 메시지가 나는 참으로 눈물겨운 것이다.



시인은 어디선가 말했다. 이 <사평역에서>라는 시는 시인에게 축복이면서 동시에 감옥과도 같았다고. 누구나 <사평역에서>에 대해서는 쉬이 이야기를 하였으나, <사평역에서> 외의 시는 기억하지 못했다고.

   

나는 시인의 이야기에 공감했으며, 동시에, 이 선한 눈빛의 시인이 또 얼마나 따뜻하고 긍정적인 위안의 시들을 썼는지를 안다. 나는 그가 그려낸 동화 역시 읽었으며, 동시에 그가 다녀왔고 바라보았던 바다와 포구와 기억들에 대한 산문집들을 읽었다. 그가 얼마나 단단한 시인인지, 불의한 세상 속에서 쉬이 흔들리지 않았는지, 동시에 [등이 굽지 않은, 곧은 마음의 길을 가졌는지]*를 또한 조심스레 짐작해본다.

   

내가 아는 시는, 이런 것이었다. 마음으로 읽히는 시, 인생에 대한 깊은 사유가 있는 시, 오래된 묘비와도 같은 시, 마음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오는 문장들이 숨어 있는 시,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시, 낯선 시선으로, 나와 사물이, 서로 치환되어, 나와 우리의 내부와 외부를 순식간에 뒤바꿔놓는 시. 그 놀라운 사고의 재확장. 예쁘고 반짝거리는 단어들로, 단순히 나열된, 참기 어려울 만치의 가벼움을, 사유의 얕음을, 생경한 언어로 가리는 그런 인스턴트 같은 시가 아닌, 온몸으로 맞부딪히는, 뜨겁고도, 낮고도, 담담하면서도, 절절한 시. 나를 물들여가는 시. 그런 시들이, 그립다.




* 곽재구 시인의 <나무>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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