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규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나는 이 시를 참으로 아름다운 시로 기억한다. 단순히 사랑시여서가 아니다. 나는 이 시에서 처음으로 행간과 행간을 ‘읽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느낄 수가 있었다. 많은 시들이 그렇겠지만, 이 시 역시 계속해서 들여다봐야 비로소 내면을 엿볼 수 있다.
황동규의 <즐거운 시>는 정말 너무나 유명한 산문시다.
시가 쓰인 해는 무려 1958년도. 거의 60여 년 전에 쓰인 시다. 그러나 그렇다고 보기엔 너무나 세련되어 있다. 그 세련됨은 그가 차용하는 언어의 힘에 있을 것이다.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이렇게 우리가 누군가를 생각하는 마음이, 미처 누군가에게 닿지 않고 그저 햇살이나 당신 곁을 그저 지나쳐갈 뿐인 바람처럼, 지독히도 아무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소소함이 되어 버린 적이, 그러한 순간들이, 어떻게 없을 수가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아지지 않는, 마음이 마음을 붙잡는 날들을, 우리는, 가져본 적이 있다.
<즐거운 편지>가 가진 힘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출발한다. 나의 마음이, 나의 사랑이 당신에게 닿지 않음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변함없이, 나는 당신을 사랑하노라. 나는 여전히 당신을 그리워하노라. 아니, 오히려 차갑고 매서운 계절을 지나갈수록, 나의 마음은, 나의 기다림은 여전히 깊어져 간다는 이 절절함.
내 마음이 당신을 향하여 커다란 그리움의 주파수를 세우며 매일 저녁마다, 아침마다, 당신에게로 향하여 가던 이 오랜 시간들이 싸락눈이 되어 밤새 뒤척이는 소리를 듣는다. 당신이 알 수 없었던 날에도, 혹은 당신이 이런 나의 마음을 알고 있어도 당신에게는 그저 아무 의미 없는 ‘스쳐지나감’ 그 이상도 이하도 되지 않지 않을 때에도, 언제인지 기약조차 할 수 없었던, [그대가 한없는 괴로움 속을 헤매일] 그 순간, 수없이 길고 길었던 밤 동안 내 마음들이 길을 내어, 드디어, 당신에게 닿을 것이라는 사랑의 고백들.
어두운 [밤], 나 혼자 있는 차갑고 시린 이 시간들, 외로운 [골짜기]에 갇혀 있는 동안, 내 마음을 뒤덮는 그리움들이, [눈]이 되어 내리기 시작한다. 대답 없는 시간, 내 안을 맴돌던 수많은 의문과 질문들, 안개를 닮은 흐린 기다림 위로 [눈]들이 내린다. 당신의 온기가 없는, 당신 외에는 그 누구도 나를 위안치 못하는, 이 골짜기에서 퍼붓는 [눈]들로 나는 모든 것을 덮는다. 끝없이 홀로인 순간,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며, 당신을 끊임없이 기다린다. 어느 날인가 시간이 지나면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안다. 아니, 믿는다. 그러나 이미 나는 [기다림의 자세]를 가진 자. 그러니,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이라는 걸 안다. 나의 사랑은, 늘 당신의 뒤에서 사소한 배경으로 존재하는 기다림이므로.
그래서 <즐거운 편지>가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국민 연애시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벅찬 기다림의 순간들이 있었을 것이므로. 그래서 숱한 시간 동안 수많은 이들에게 회자되었을 것이다.
놀랍게도 이 시를 썼을 무렵 황동규 시인은 고등학교 3학년인 열여덟이었다. 그때 그는 연상의 여대생에게 연모의 감정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때의 마음을 담아 쓴 시라고 한다. 그리고 이 시는 그대로 「현대문학」에서 추천을 받아 그의 등단작이 된다. 그가 이토록 뛰어난 문학에의 성취를 보인 수많은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랑받는 소설로 꼽히는 <소나기>의 작가 황순원의 아들이라는 이유 때문도 있지 않았을까.
그는 유명한 소설가였던 아버지를 바라보며 성장했을 것이며, 아버지의 서재에서, 퇴고 중이던 수많은 원고지들을 보았을 것이며, 책장 가득한 책들을 보며 때때로 의미도 제대로 알 수 없었던 난해한 글들의 책장을 수없이 넘겼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글은 곧 ‘황홀한 감옥’이 되었을 테니, 그 재능이 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