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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영 Sep 2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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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es Blunt


공들여 쌓아둔 것들이 흩어지는 일이 두렵던 그런 시간도 이제는 조금씩 내게서 멀어져 있다. 얼마나 멀어졌는지 모르지만, 그렇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나는 언젠가의 내가 바랐던 것처럼, 많이, 아주 많이 느슨한 삶을 살고 있다. 격한 감정으로 무언가를 표현하지도, 한없이 시니컬하지도 않은, 적당히 이완되고 수축하는 고무줄 같은 삶. 더우면 늘어지고, 추우면 움츠러드는 그런 삶.

 

수많은 인생의 가지는 저마다 의미가 있고 끝을 모르게 뻗어가고, 어느 끝에서 얽히고설키고, 그 엉킴으로부터 또 다시 새 가지가 뻗어나갈지 모른다. 끝내 무엇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 시간이 갈수록 더더욱 모호해지고, 그 모호함을 이제는 당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나는 이미 혈기왕성했던 시절의 독불장군의 고집은 벗어던진 지 오래되었다. 그래서 가끔은 옳든 그르든 간에 곧 죽어도 의지를 관철하려던 독불장군의 고집이 사라진 것이 서글프기도 하다. 인생의 꽤나 많은 부분들을 차지했던, 욕망이나 집착과도 같은 원색적인 감정들마저 순수했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

  

다만, 나이를 먹으며 조금 더 유연해졌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현재의 삶이 콕 집어서 '아니다.' 싶으면 언제든 곁에 널려 있는 수많은 가지 중의 하나로 옮겨갈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더 많은 나이를 먹어, 이 감정들에도 더 많은 세상살이의 색을 덧칠할 수 있게 된다면, 아마도 더 많은 감정들을 깊게 바라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아마도 그때가 되면, 나는 지금보다도 더 많은 것들을 떠나보낼 수 있을 것 같다.

   

'행복한가? 행복하지 아니한가?'라는 굳이 정의할 필요가 없는 이런 끝없는 화두도 함께 말이다.

   

기뻐하고, 슬퍼하며. 웃고, 울며. 그렇게 살고 싶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무엇 하나 먼 길에 내던져 버릴 수 없는 이 삶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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