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 준(By Jun)
하나.
계절이 지나가고 있다는 걸 느낀다. 문 밖으로, 찻장 너머로, 문득 눈길 닿는 곳에 노오란 개나리가 피어있다. 겨우 이름을 외운 산수유도, 옅은 꽃잎의 매화도 피어있다. 목련이 흐드러지다 못해 꽃잎이 만개해버렸다는 것도 겨우 어제서야 알았다. 시간은 4월을 향해 가고 있고, 겨울옷들이 점차 두껍게 느껴진다. 저 무거운 것들을 겨우내 걸쳤더랬다. 매서운 추위에 종종걸음 치기도 했던 지난해 언저리가 어떠했는지, 좀처럼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게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나를 두고, 세상은 어느 사이엔가 봄으로 조금씩 채워지고 있다.
둘.
어둠이 내려앉으면 천천히 어디선가 저녁 불빛이 하나둘 켜지는,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 한 구석이 설레거나 따뜻해지는 그런 거리에 서 있고 싶다. 따뜻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푸른 바다 물결 내음이 가득한 남도도 좋을 것이다. 구비구비 둘러가는 길을 따라, 빠르게 지나쳐버리거나 성큼성큼 큰 보폭으로 걷는 게 아닌, 느린 걸음과 자주 멈춰서는 발걸음이 어울리는 그런 길을 따라 걷고 싶다. 조금만 걸어도 곧 옆으로 거나 아래 로거나 꺾어져 걸어야 하는 그런 골목 가득한 길도 좋을 것이다. 유행처럼 번져버린 벽화들이 구석구석 숨어 있는 작은 골목길들. 지난해 여름, 비가 와서 성급히 떠나야 했던 부산의 바다가 보이는 벽화거리도 괜찮을 것이다. 영화 변호인을 찍었던, 어린 왕자의 말들이 적혀 있던, 그날은 흐렸지만, 햇살이 가득한 날이면 마치 이국의 어느 바닷가에 와 있는 것 같다던 그 작은 거리를 다시 찾아가도 좋을 것이다.
미처 이루지 못했던, 마냥 다음을 기약하는, 그러나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이 보들거리는 그런 약속들로, 이런 봄날 같은 오후에는, 천천히 두근거려도 좋을 것이다.
셋.
오랫동안 못 보았던 지인이 불쑥 전화를 걸어왔다. 잠시 퇴근길에 볼 수 있냐고. 그리고는 액자를 하나 건네주고는 총총걸음으로 다음에 다시 보자는 조각달 같은 말만 남기고 떠나갔다. 건네받은 액자에는 꽤나 오래전 장난 반 진담 반으로 그렸던 내 어설픈 그림이 담겨 있었다. 유화로 작지 않은 사이즈의 캔버스에 그렸던 꽃과 나무. 캔버스 가득 커다란 나무 위에는 꽃잎들이 꽃등처럼 환하게 매달려 있었다. 오래간만에 내가 그렸던 그림을 보며 맨 처음 든 감정은 부끄러움이었다. 그때 난 왜 저렇게 꽃들을 그리고 싶었던 걸까. 자주 거친 붓칠로 거침없이 그려나간 꽃잎들. 그땐 나도 저렇게 환히 불 밝히는 봄이 되고 싶었던 걸까. 이런 글들을 주절거리는 것도,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이야기들이 올라오는 것도, 다, 봄, 저 대책 없이, 환한 봄,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