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날두와 장미십자회의 비밀

『푸코의 진자』의 헤르메스적 표류와 AI

by 나인테일드울프

호날두와 장미십자회의 비밀

C.R.은 R.C.와 같다?


AI에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C.R.)와 장미십자회(R.C.)의 이니셜 유사성을 던져주며 물었다. "이 둘 사이에 숨겨진 성전 기사단의 비밀 계획이 있을까?"

AI는 망설이지 않았다. 호날두의 등번호 7을 생제르맹 백작과 엮고, 레알 마드리드 엠블럼에서 십자가를 찾아내며 순식간에 완벽한 음모론을 직조해 냈다. (이 기가 막힌 우연의 일치와 상세한 실험 과정은 링크된 책 『에코로 AI 읽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실험은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푸코의 진자』를 떠올리게 한다. 소설 속 주인공들이 컴퓨터 '아불라피아'를 통해 무작위 단어들에서 '숨겨진 진실'을 찾아 헤매듯, AI는 인터넷이라는 지식의 바다에 떠도는 음모론의 파편들을 재조립했을 뿐이다. 논리적 정합성만은 완벽한, 그러나 현실의 닻을 잃은 ‘논리의 감옥’이다.


무한 표류: 상인의 명세서가 성전의 밀지가 되다


AI의 작동 방식은 소설 속 인물들의 '지적 장난'과 닮았다. 그들은 단순한 ‘상인의 배달 명세서’에 불과한 텍스트조차 거대한 비밀 계획(헤르메스 계획)으로 해석해 낸다. '모든 것은 모든 것과 연결된다'는 주문을 걸었기 때문이다.

에코는 텍스트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 현상을 ‘무한한 기호 작용’이라 불렀다. 신체도, 현실 감각도 없는 AI는 이 무한 연쇄의 정점에 있다. 그렇기에 AI는 아무런 의심없이 C.R.과 R.C.의 간극을 메워버린다.

문제는 텍스트의 논리가 현실의 진실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계를 잃은 해석은 ‘해석의 암세포’가 되어 자라난다. 그것은 이성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광기다. AI가 내놓은 매끄러운 답변은 사실 우리 문명이 남겨놓은 과잉 해석의 데이터를 충실히 학습한 결과일 뿐이다.


푸코의 진자: 이성의 전당인가, 광기의 무대인가


에코는 소설을 통해 과학과 이성의 상징인 ‘푸코의 진자’ 아래에서 벌어지는 비이성의 파국을 그렸다.

AI는 우리 시대의 ‘푸코의 진자’다. 방대한 데이터와 통계적 합리성을 갖춘 이 도구는 현대 과학의 정점이지만, 우리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허구와 광기의 무대가 될 수도 있다.

AI가 만들어낸 '그럴듯한 허구'를 진실로 수용할지, 아니면 비판적으로 걸러낼지. 그 진자가 매달린 공간의 성격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질문을 던지는 우리의 몫이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에코로 AI 읽기: 움베르토 에코의 기호학으로 읽는 AI』

AI의 환각과 현대의 음모론을 움베르토 에코의 기호학으로 명쾌하게 풀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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