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디코딩 #001: 1986과 2026의 청춘은 어떻게 다른가
이종필 감독의 『파반느(2026)』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으로, 박민규 작가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원작으로 한다. 젊은 세 주인공들이 겪어야 하는 삶의 무게와 함께 이들의 사랑과 우정을 그리는 영화이다.
재밌는 점은 곽지균 감독이 1986년도에 연출한 『겨울 나그네』와 인물의 구도가 매우 흡사하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서사의 흐름과 방향은 다르지만, 이는 오히려 달라진 시대의 모습과 인물, 영화의 상승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사례이다.
공교롭게도 각각이 모두 클래식 곡을 모티브로 삼는 유사성까지 지녔다. 이런저런 비슷한 점이 두드러지는 두 영화를 비교 분석하는 일은 꽤 재밌는 일이 될 것 같다. 지금부터 시작해 보자.
[스포일러 주의 : 아래 글은 영화의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파반느』의 주요 인물은 박요한(변요한), 이경록(문상민), 김미정(고아성) 삼인방이다. 경록과 미정이 연인이고, 요한이 이 둘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한다. 요한은 경록의 멘토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이 셋의 형태는 『겨울 나그네』에서의 현태(안성기), 민우(강석우), 다혜(이미숙)와 인물 구도와 동일하다. 『겨울 나그네』에서 현태는 민우가 따르는 형, 다혜와 민우가 연인, 초반에 이 둘을 이어주는 역할은 현태가 담당한다.
그리고 『파반느』의 세라(이이담), 『겨울 나그네』의 은영(이혜영)이 남자 주인공에게 연심을 품으면서 또 다른 삼각 축을 만들어 낸다는 면에서 인물 간의 갈등의 구조도 유사하다.
이렇게 이 두 영화는 비슷한 인물 구도를 형성하지만, 시대의 압력이 달라지면서 서사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분출된다. 좀 더 세밀하게 인물들을 비교하며 이야기를 따라가 보자.
경록(파반느)과 민우(겨울), 이 둘은 모두 혼외자이다. 경록의 아버지인 이동철(박해준)은 배우로 유명해지자 가족을 버렸다. 초반에 떠나면서 현금 뭉치를 주고 간 것 말곤 경제적 지원을 묘사하는 장면도 딱히 없다. 경록은 동철이 그저 숨겨야 할 과거라는 그늘 안에 있다.
반면 민우는 아버지에겐 사랑받는 존재이긴 하지만, 그에겐 아무런 힘이 되어 주지 못하는 거동이 불가능한 환자다. 의붓어머니와 형은 혼외자인 민우를 매우 싫어하며, 결국 아버지의 사망 후 그를 완전히 버린다. 그래서 민우는 생모의 과거인 기지촌이라는 그늘로 향한다.
아버지의 부재로 세상에 혼자 남은 존재라는 점에서 이 둘은 공통점을 지닌다.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이 추억하는 대상이라는 점에서도 같다.
재밌는 점은 이 둘이 연인을 처음 만나는 과정이 정말 흡사하다는 것이다. 민우는 자전거를 타고 가다 다혜와 부딪히고, 경록은 스케이트 보드로 질주하다 어둠 속에서 미정을 보지 못해 부딪힐 뻔한다. 두 영화의 비교는 처음부터 평행 이론이 떠오르게 한다.
요한(파반느)과 현태(겨울), 이 둘은 주인공 커플의 조력자 역할을 한다는 점, 뭔가 괴짜스러우면서 삶을 초탈한 듯한 태도를 지녔다는 점이 비슷하다.
차이점은 요한이 혼외자라는 것, 어머니의 비극, 아버지 가족으로부터의 냉대 등 민우가 가진 서사의 일부가 이쪽으로 옮겨왔다는 점이다. 그래서 『겨울 나그네』에서의 비극은 오히려 이 인물을 통해 재현된다.
요한과 현태는 모두 작품 전체의 서술자로 작동하는 공통점이 있으며, 영화의 클로징 멘트를 담당한다. 요한은 ‘청춘은 영원하다’라고 말하지만, 현태는 ‘청춘이 끝났다’라고 한다.
먼저 두 영화의 표면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여성은 다혜(겨울)와 미정(파반느)이라는 남주인공의 연인이다. 은영(겨울)과 세라(파반느)는 남자 주인공을 바라보며 애정의 삼각 구도에서 같은 위치를 점유한다.
그리고 민우와 경록이 육체관계를 맺는 것은 오히려 후자 쪽이라는 희한한 공통점도 있다.
그러나 사회/공간적 위치를 보면 분명한 도치가 보이는데, 다혜와 같은 빛의 공간에 서 있는 건 오히려 세라이고, 은영과 같이 어둠을 점유하는 것은 미정이다. 그렇다면 애정의 대상이라는 절대 속성에 따라 어둠의 의미가 달라져야 한다.
『겨울 나그네』에서 은영이 머무는 기지촌의 어둠은 민우가 필사적으로 벗어나고 싶었던 '출생의 굴레'였다. 또 은영은 어둠 속에서 희미하지만 유일한 빛인 민우를 어떻게든 붙잡으려 한다.
반면 『파반느』에서 미정의 어둠은 과도한 빛의 세계로부터 숨어들어 쉴 수 있는 아늑함으로 변주된다. 미정이 빛을 몰고 온 경록을 밀어내는 모습은 은영과는 정반대이다.
사랑의 방향을 떠나서 빛, 밝은 세계라는 같은 위치에 서있는 세라와 다혜를 비교하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을 할 수 있다.
먼저 『파반느』의 세라는 외모지상주의의 상징으로 일면 악역처럼 보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주인공을 미정으로 이끄는 내면의 성숙함을 보여주는 입체적인 캐릭터이다. 지나간 사랑에 자신을 괴롭히기보다는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현대 여성의 능동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겨울 나그네』에서 다혜는 민우를 은영에게 돌려보내지 못한다. 이미 그에겐 아내도 있고, 아들도 있다. 그 어둠을 아늑한 휴식처로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이곳으로 민우를 돌려보내는 건 다혜의 몫이다. 그의 비극적 삶이라도 긍정하게 할 수 있는 격려와 위로는 오로지 다혜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메시지는 현태의 냉랭한 충고로 전달된다. 그래서 다혜와 현태의 결혼은 민우의 삶을 지탱할 마지막 동력마저 앗아가는 최악의 배신으로 작용하며 비극에 쐐기를 박는다
『겨울 나그네』에서 비극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다혜뿐이었다. 하지만 80년대 여성 캐릭터가 지닌 시대적 한계와 수동성 때문에 그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그러나 『파반느』에서의 세라는 상처받은 것은 오히려 자신임에도 사태를 받아들이고, 주인공을 아늑한 어둠 속으로 밀어 넣는 조력을 발휘한다.
두 영화는 같은 인물 구도에서 다른 이야기로 뻗어 나가는 차이를 분명히 보이고 있지만, 민우와 경록이라는 주인공이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는 비극과 남겨진 사람들이 이를 추억한다는 서술의 구조는 비슷하다.
하지만 사건이 전개된 양상은 무척 다르다. 『겨울 나그네』에서 민우의 비극은 철저히 그리스 비극의 전개를 따른다. 출생부터 비극의 씨앗을 가진 주인공이, 거듭되는 운명의 장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파멸적 결말을 맞는 이야기라는 점이 그렇다. 정해진 결과를 벗어날 수 없다는 인과의 법칙과 비극성만이 서사를 이끈다. 인물의 능동적 저항은 전혀 볼 수 없다.
『파반느』에서 경록의 죽음은 완전히 다른 양상을 띤다. 미정과의 행복한 결말만 남은 줄 알았던 관객에게 영화는 『러브 어페어(Love affair, 1994)』에서 본 듯 한 장면을 연출한다. 불구가 된 테리 멕케이(아네트 베닝)는 연인과 재회했지만, 경록은 죽었다는 점이 다르다.
이 우발적 사고는 누구를 탓할 수도 없고, 원인을 찾을 수도 없다. 비극적이지만 세계와 삶 속에서 나타나는 우연한 사건일 뿐이다. 이 또한 운명의 다른 측면이긴 하지만 민우의 것과는 받아들이는 자세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우연이 지배하는 삶에서 요한이 원인-결과로써 출생과 삶의 비극을 연결 지을 이유는 없다. 그래서 요한은 출생과 어머니의 비극에 연연하지 않고 삶을 긍정하고 받아들인다.
앞서 잠시 언급했지만 『파반느』 중반부의 요한의 사고와 『겨울 나그네』의 최종 비극은, 혼외자라는 출생의 비밀과 어머니라는 존재에서 근원을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양태가 비슷하다. 하지만 요한은 목숨을 건졌고, 출생의 과정에 연연하지 않는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 낸다. 꿈꾸던 작가가 되고, 경록의 죽음을 작품 속에서 승화시켜 미정을 위로한다.
현태가 다혜와 결혼하며 민우를 완전히 밀어냈던 것과는 다르게, 죽은 친구를 그들의 삶에 계속 살아있게 한다는 점은 이 시대가 가진 과거에 없던 힘이라고 해야겠다. 그래서 요한은 청춘이 영원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에 와선 민우가 보이는 운명론적 자포자기는 쉽게 공감하기 어렵다. 명문 대학교의 의대생이 자신의 어머니가 기지촌 출신이라는 이유로, 자기 존재를 부정하고, 나락으로 걸어 들어가는 흐름은 지금 시대엔 개연성이 많이 떨어진다. 끊임없이 우발적 사고가 뒤따르며 그를 몰아넣는 운명의 장난이 보이긴 하지만, 비극은 모두 민우의 자학에서 시작된다는 점에서 이젠 서사의 긴장감도 많이 떨어진다. 영화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이 너무 많이 변했다.
마지막에 현태와 다혜는 죽은 민우의 아이를 맡음으로써 자신들의 친구이자 옛 연인을 그들의 삶 안으로 끌어안는다. 그래서 둘의 삶은 30대의 결혼과 양육이라는 현실적 책임을 수행하는 단계로 전환된다. 80년대의 30대에겐 지금의 40대 보다도 더 깊은 성숙을 요구했던 시기다. 그래서 현태는 자신들의 청춘이 끝났다고 말한다.
『겨울 나그네』를 이야기하면서 당시 영화 산업을 지배하던 검열 시스템을 말하지 않을 순 없다. 80년대를 배경으로 하면서 당시의 독재에 저항하던 젊은이들의 모습을 영화에 담지 않는 것은, 등장인물들의 입체성을 많이 손상시킨다. 검열이 원하는 것이 순응이라면, 이 인물들의 태도도 그 궤적을 따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영화를 통해 당시의 청춘을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등장인물의 한계는 그들이 대변하는 그 시대의 젊음보다는 영화의 한계였다.
다혜의 수동성과 민우의 자포자기는, 당시의 국가 시스템이 길들이려던 청춘에게 요구했던 것이다. 그래서 현태를 선 외의 존재에게 순응을 강요하는 국가의 상징으로 읽는 냉정한 분석도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 『겨울 나그네』라는 영화이다.
『파반느』는 외연 상으로는 현대의 물질만능, 외모지상주의에 찌든 젊음을 비판하는 듯한 모양새를 지닌다. 하지만 돋보기를 들이대고 세밀하게 관찰하면, 그 안에서 작동하는 젊은이들의 삶에 대한 긍정과 능동성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1986년도의 비슷한 인물 구도를 지닌 작품을 소환하여 비교하였을 때 가장 두드러지는 점이 바로 이것이다.
끝으로 현태와 다혜가 가정이라는 체계 안에서 민우의 아이를 키우게 되는 결말은 패인 홈을 따르는 삶이다. 누구보다 자유로워 보였던 현태는 단정하고 반듯한 현실의 직장인이 되었고, 다혜는 첼리스트의 꿈을 포기하고 잡지의 편집인-주부의 길을 걷는다. 이 시대의 눈으로 보면 이는 청춘과의 이별이다.
반면 요한과 미정은 타인이 강요를 벗어나, 자신의 삶 그 자체를 긍정하며 경록을 추억하며 살아간다. 셋이 함께 초원 위로 말 달리는 장면에선, 들뢰즈가 말한 자유로운 유목민, 소수자의 삶이 떠오른다. 요한은 작가가 됐고, 락 밴드에서 연주도 한다. 미정도 자신의 일을 찾아 웃음 지으며 행복하게 지낸다. 그렇게 여전히 경록과 함께인 이들의 청춘은 끝나지 않는다.
우리의 청춘이 영원하기를...
이 바람을 여기에 담는다.
민우와 경록을 다시 한번 추억하며 글을 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