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해도 혁명이 아닌 전쟁: 서울의 봄

전쟁 디코딩 #002: 국가를 집어삼킨 전쟁 기계의 약탈

by 나인테일드울프

김성수 감독의 『서울의 봄(2023)』은 1979년 12월 12일 밤에 일어난 반란을 다루는 영화다. 천만 관객 돌파라는 상업적 성공과 함께 관객에게 사건의 실상을 알리는 기록물로서의 효과를 거두기도 한 작품이다.


하지만 영화는 등장인물을 모두 가명으로 처리하는 것으로 역사와의 거리를 분명하게 유지한다. 각색을 통해 실제 사건과 인물의 성격을 영화적 허구로 구현한 장면도 많다.


이를테면, 역사적으로는 이미 당일에 충분한 결사 조직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것으로 알려진 반란 세력들을, 영화에서는 지리멸렬한 상태에서 당일에 이뤄진 각성의 흐름으로 묘사한다. 이는 왜곡이라기보다는 이전에 이뤄진 결의의 과정을 영화 내의 시간으로 압축해 옮겨옴으로써, 그 집단의 본질적 성격을 충분히 묘사하기 위한 선택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이 영화는 그 사건을 일으킨 하나회의 실체를 아주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스포일러 주의 : 아래 글은 영화의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전쟁 기계의 외부성

정상호 총장에 의해 배치되는 두 인물, 하지만 전두광은 경계의 바깥에 있다.


국가는 '전쟁 기계'의 파괴적인 에너지를 통제하기 위해 군대라는 이름으로 전유한다. 이 수단이 위계, 지휘계통, 계급 등과 같은 것들이다. 영화 내에서 정상호(이성민) 참모총장은 전두광(황정민)을 합동수사본부의 책임자로 지명한다. 이태신(정우성) 또한 같은 인물이 수도경비사령관으로 임명한다. 둘 다 국가에 의해 임명받은 군인이다. 아직은 국가가 전쟁 기계를 통제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영화가 잡아낸 독특한 장면이 하나 있다. 문 너머 멀리 있는 전두광의 모습, 영화는 자신과 다른 세상에 있는 자를 비추듯 거리감을 두고 그를 조망한다. 이것은 전쟁 기계가 가진 본연의 외부성을 보여 주는 장면이다. 이 외부성이 발현되는 순간, 군대라는 전쟁 기계는 그 공격성을 국가를 향해 드러낸다.


전두광은 국가의 밖에 있는 사람이다. 물리적 위치, 국가가 부여한 계급, 지위는 중요치 않다. 스스로가 체계 밖의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것을 영화는 저 한 장면만으로 효과적으로 설명한다.


국가 장치 안팎의 두 전사

영화 내내 국가와 군대의 작동은 엉망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두 전사의 싸움으로 치닫는다.


군인은 국가 장치의 일부이다. 명령과 복종, 계급 체계 속에서 움직인다. 반면 '전사'는 국가 외부에서 오는 사람이다. 그는 매 순간 새로운 규칙을 발명한다. 그는 어디에도 정착하지 않고 경계를 넘나 든다. 전사는 주변의 사물, 환경, 타인과 새로운 관계를 맺어 강력한 에너지를 만든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변신한다.


전두광

전두광은 공식 지휘 계통 밖에서 '하나회'라는 수평적 사조직을 가동한다. 상황에 따라 페르소나를 끊임없이 바꾸며 권력 쟁취에 최적화된 전사로 움직이며, 정해진 교범을 무시하고 즉흥적으로 룰을 발명한다. 그는 이 압도적인 속도전과 '충성'이라는 정동(Affect)을 무기 삼아 우왕좌왕하는 군부 시스템을 붕괴시킨다.


이태신

이태신은 지휘계통이 마비된 상황에서도 독자적 판단과 행동으로 전사적 면모를 드러낸다. 그리고 승기를 잡는다.


이태신은 합법적 지휘 체계가 마비된 공백 속에서, 제도의 역할을 넘어 '책임감'이라는 정동에 이끌려 스스로 시스템 외부의 주체인 '전사'로 각성한다. 그는 고정된 지휘소를 벗어나 현장을 누비며 방어선을 구축하려 한다. 실제 8 공수를 서울로 출동시켜 쿠데타를 막을 승기를 잡는다.


하지만 그는 곧 한계에 부딪힌다. 이태신 자신은 유목적 전사로 움직였으나, 그가 동원해야 할 병력들은 철저히 국가의 지휘와 명령에만 반응하는 군인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두광에겐 군인이 아닌 유목 부족이 그를 따르고 있었다.


유목 부족 하나회

국가가 전쟁기계를 군대라는 이름으로 전유할 때 위계와 같은 틀을 사용한다. 하지만 위계는 승진과 출세, 입신양명이라는 인간의 분자적 욕망을 자극하고, 그것은 국가 장치가 의도치 않은 균열을 만들어 낸다.


이 욕망에 공명하는 이들이 사조직인 하나회로 모여들며, 이는 국가 장치의 공식적 위계를 우회하는 비선형적인 리좀(Rhizome)적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이들은 국가를 위한 군인이 아닌, 사적인 목표를 가진 '군대 외부의 유목 부족'으로 작동한다.


군복을 입고 국가의 영토 안에 존재하지만, 그들의 충성 서약이 국가에서 하나회의 수장 전두광에게로 전이되는 것 자체가 '기능적 탈영토화'이다. 이들은 이미 국가의 통제 바깥에서 움직일 준비를 마친, 잠재적 '전쟁 기계'의 상태가 된다.


이 둘의 충성의 방향은 국가에 있지 않다.


영화 초반 이태신은 수도 경비대의 지휘관으로 부임 후 지휘계통 내의 인사들을 점검한다. 하나회 소속일 가능성이 높은 세 인물들에 대해 자신의 명령에 대한 불복의 가능성을 묻는다. 이 질문 자체가 군대의 문법으론 비문이다. 처음부터 이런 문장은 성립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다음 장면에서 현실의 상황을 비춘다.


이어지는 하나회에 대한 충성서약 장면. 두 명의 군인이 전두광 개인과 사조직 하나회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는 자리이다. 영광을 뼈에 새기겠다는 결연한 의지는 국가를 향해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전쟁 기계 전두광

상황에 따라 페르소나를 끊임없이 바꾸며 하나회라는 어정쩡한 유목 부족을 결사체로 탈바꿈시킨다.


영화 속 하나회는 비장한 충성 맹세와 달리, 실상은 '출세'를 매개로 줄을 대기 위해 모인 느슨한 이익 집단에 불과하다. 대통령 재가 보류, 8 공수 출동, 이태신의 야포 위협 등 위기가 닥칠 때마다 이들은 우왕좌왕하며 불만을 터뜨리고 이탈을 시도한다.


하지만 전두광은 매 순간 흔들리는 부족민들을 결연한 전사로 탈바꿈시킨다. 노태건(박해준)에게는 친구로서 간청해 9사단을 움직이고, 도희철에게는 자신을 쏘라며 권총을 쥐여주는 광기를 보여 준다. 특히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닙니까!"라는 선동은 집단 전체를 단번에 각성시킨다.


진급을 위해 모인 어설픈 유목 부족을 파국적인 전쟁으로 추동해 내는 폭발적인 에너지, 이것이 바로 '전쟁 기계'로서 전두광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지난 글의 드레슬러가 두 강대국을 조종해 전쟁을 강요했듯, 전두광 역시 군부라는 거대한 국가 장치의 틈새를 파고들어 내부의 자원들을 반란의 소용돌이로 밀어 넣는다.


각성한 유목 부족

반란군은 조직망을 일제히 펼쳐 진압군의 공식 지휘 계통을 압도적인 속도로 교란하고 마비시킨다.


썸 오브 올 피어스』에서 잭 라이언이 네메로프에게 직접 통신을 시도하여 전쟁의 위기를 극복하는 장면을 두고, 많은 관객은 그것이 단순한 영화적 허용이며 현실에선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 여긴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이 영화 『서울의 봄』에서도 이와 완벽하게 동일한 시도가 일어난다. 전두광이 던진 '자신의 심장을 쏘라'는 광적인 결의에 각성한 노태건은, 즉각 지휘 계통을 무시하고 혈연, 지연, 학연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사적 네트워크를 가동해 전화를 걸라고 지시한다. 이후 하나회는 유목 부족처럼 조직망을 일제히 펼쳐, 공식적인 의사결정권자들을 동시다발적으로 포위해 들어간다.


물론 잭 라이언이 네메로프와의 개인적인 신뢰에 기대어 '진실'을 폭로했다면, 이들은 거짓말과 회유, 협박을 무기로 삼았다는 점은 다르다. 하지만 여기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 '작동의 방식'이다.


잭 라이언과 하나회 모두, 국가 장치가 촘촘하게 파놓은 견고한 수직적 지휘 체계와 공식 매뉴얼을 거부했다. 국가의 군대는 위에서 아래로 선형적으로 흐르는 명령 체계 없이는 움직이지 못하는 경직된 집단이다. 하지만 각성한 유목 부족 하나회는 이 거추장스러운 위계질서를 건너뛰고, 사적 네트워크라는 '매끄러운 공간'을 리좀처럼 가로지른다.


혈연, 학연과 지연이라는 끈끈한 정동의 선을 타고 흐르는 이들의 전화 공세는, 정해진 절차대로만 움직이려는 진압군의 공식 지휘 계통을 압도적인 속도로 교란하고 마비시킨다.


하지만 이태신도 정확하게 똑같이 작동한다. 앞서 언급했듯, 이 교란과 마비 속에서 그는 8 공수를 서울로 출동시키는 결정적 승기를 잡아 낸다.


또다시 게임이론, 하지만 이번엔 도킨스

수뇌부는 치명적인 오판으로 이태신이 겨우 잡아낸 승기를 무위로 만든다.


『서울의 봄』에서도 『썸 오브 올 피어스』와 유사한 게임의 무대가 펼쳐진다. 바로 진압군(8 공수)과 반란군(2 공수)이 서울 진입을 두고 대치하던 상황에서 맺어진 이른바 '신사협정'이다.


표면적으로 이 협정은 양측 모두에게 매우 합리적인 선택으로 보인다. 서울 한복판에서 아군끼리 총격전을 벌이는 최악의 결과(상호 공멸)를 피하기 위해, 양측은 각자의 최대 이익(전투를 통한 완전한 제압)을 양보하고 '동시 회군'이라는 타협점을 찾는다. 교과서적인 게임 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양측이 파국을 피해 이성적인 차선책을 선택한 완벽한 윈-윈(Win-Win) 전략이다. 육군본부의 수뇌부들은 이 합리적인 도출 결과에 안도한다.


하지만 쿠데타 군은 이 게임의 룰을 비웃듯 반칙을 저지른다. 8 공수가 기수를 돌린 순간, 반란군의 부대들은 약속을 깨고 그대로 서울로 진입해 버린다.


이 비열한 배신을 가장 명확하게 설명하기 위해 리처드 도킨스의 진화론적 게임 이론(Evolutionary Game Theory)을 빌려와 보자. 도킨스는 생태계 내의 생존 전략을 설명하며 '매(Hawk)'와 '비둘기(Dove)'의 모델을 제시한다.


비둘기는 이 게임의 무대에서 둘이 모두 이득을 얻는 선택을 한다. 그리고 이것을 모두가 지켜야 할 '규칙'으로 받아들이고 게임에 임한다. 하지만 매는 다르다. 매는 모두가 이 규칙을 준수하려 방심할 때, 역으로 이를 어기는 선택을 한다. 결국 평화를 믿었던 비둘기는 최악의 경우를 맞이하고, 반칙을 저지른 매는 최대 이익을 거둔다.


전두광 무리는 애초에 규칙이라는 '홈' 밖에서 움직이는 완벽한 '매'이자 '사기꾼'이었다. 그들에게 신사협정은 이성적인 타협이 아니라, 눈앞의 거추장스러운 8 공수를 치워버리기 위한 기만전술에 불과했다. 결국 육본 수뇌부의 치명적인 오판은, 이태신이 겨우 잡아낸 승기를 무위로 만든다.


국가를 집어삼킨 유목 부족

영화는 반란의 모의를 보안사령부가 아닌 사적인 공간으로 각색하여 이들의 외부성을 더 짙게 드러낸다. 군복을 입고 사진을 찍지만, 그들의 정체는 국가 밖의 유목 부족이다.


들뢰즈의 유목적 관점에서, 유목민은 경계가 없는 '매끄러운 공간' 전체를 통째로 자신들의 존재 기반으로 삼는다. 그래서 토인비는 유목민은 이동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애초에 이들에겐 구분이 없는 하나의 공간이다.


전두광 무리는 30 경비단이라는 타인의 물리적 영토와 '통신망'이라는 비물리적 네트워크를 결합하여, 직제와 계급이라는 기존의 거추장스러운 홈을 완전히 지워버렸다. 그리고 그곳을 오직 자신들의 사적 네트워크와 야망만이 흐르는 완벽한 '매끄러운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이들이 유목 부족처럼 행동할 수 있었던 근원은 철저한 '외부성'에 있다. 전두광은 출세욕이라는 사적 욕망과 육사 출신이라는 내적 편향을 교묘히 자극해 하나회와 국가 사이에 깊은 골을 파낸다. 구체적으로 그는 집안 사정 때문에 서울대 대신 육사를 선택했다는 말로 국가 및 일반 사회와의 심리적 거리를 벌리고, 시험도 안 친 노땅, 똥차들 때문에 별도 못 달고 있지 않느냐며 불만과 욕망을 자극해 군대와 하나회를 분리시킨다. 반란을 위한 첫 모의에서 뱉은 이 말들은, 전쟁 기계가 자신에게 필요한 유목 부족을 생산해 내는 주문이었다.


'약탈'의 측면에서도 이들은 유목 부족의 특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홈을 지우고 들어섰을 때 서울대와 노땅, 똥차가 차지하던 몫은 당연히 이들의 노획물이 된다. 전두광은 자신을 따르는 하나회 장성들이 반란의 명분보다는 그저 떨어지는 떡고물이라도 주워 먹으려 모여든 사람들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그는 혁명의 영광을 혼자 독식하지 않겠다며 그들을 이 거대한 국가 약탈극에 동참시킨다.


그리하여 영화는 이 12.12 사태가 전두광이라는 영악한 전쟁 기계가 하나회라는 유목 부족을 규합해, 그들의 굶주린 사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장치를 통째로 털어먹은 사상 최대의 약탈적 전쟁이었음을 빠짐없이, 그리고 서늘하게 증명해 낸다.


결론: 성공해도 혁명이 아닌 것, 전쟁

전두광이 뱉은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닙니까"라는 대사는 흔들리던 하나회 부족원들을 맹렬한 전사로 각성시킨 가장 강력한 주문이었다. 그들은 이 명분을 방패 삼아 국가의 홈을 파괴하고 서울을 유린했다. 그럼 성공했으니 과연 혁명일까?


그들의 목줄을 쥐고 있던 사람은 영화에선 이미 죽은 각하였다. 전두광은 그 각하의 혁명이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시가행진을 감행했다고 친구 노태건에게 말한다. 혁명 이념에 대한 동조가 아닌 성공에 편승하는 처세, 그가 조직한 하나회가 사적 욕망으로 뭉쳐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반란 모의 때 이들이 나눈 건 출세와 자리보전에 대한 이야기뿐이었다. 이들의 행위를 평가하기 위해선 집단 형성의 동기에 집중해야 한다.


그들은 국가 시스템을 쇄신한 것이 아니라, 벙커에 앉아 통신망이라는 매끄러운 공간을 가로지르며 국가의 심장부를 도둑질했다. 도킨스의 게임 이론에서 보았듯, 이것은 룰을 지키는 비둘기(진압군)의 목을 물어뜯은 매(반란군)의 비열한 승리이자, 정착민이 피땀 흘려 쌓아 올린 창고를 단숨에 털어간 유목 부족의 거대한 '약탈극'이었다.


무엇보다 전두광과 하나회는 철저하게 국가의 외부에 있었다. 전두광은 포획을 풀고 뛰쳐나온 전쟁 기계이자 전사였고, 하나회는 그를 따르는 유목 부족이었다. 들뢰즈에 따르면 이들은 모두 국가의 외부에 있는 것들이다. 그래서 영화에도 잠재하는 적 북한과 전두광-하나회는 동일한 존재론적 위치를 점유한다. 30 경비단과 육본, 북쪽 영토의 점거는 대한민국의 홈 안에서 동일한 해석의 흐름을 따른다. 즉, 그들은 국가의 '적'이다. 적에 의한 혁명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12.12 사태는 아무리 그 껍데기를 화려한 성공으로 포장하더라도 결코 혁명이 될 수 없다. 그것은 그저 사적 탐욕에 눈이 먼 전쟁 기계가 국가 장치를 상대로 벌인 참혹하고 일방적인 '전쟁' 그리고 '약탈'이었다.



『서울의 봄(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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