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 국가를 전유한 자들에 맞선 유목민의 비밀

전쟁 디코딩 #003: 비밀과 지각 불가능한 전쟁 기계들

by 나인테일드울프

장준환 감독의 2017년도 영화 『1987』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실을 둘러싼 은폐와 폭로의 과정을 다루고 있다.


이전 글에서는 『서울의 봄』을 통해 의 12.12 사태를 통해 전두광-하나회가 국가를 점거하는 과정을 들뢰즈의 전쟁 기계, 전사 등의 개념을 통해 정리했었다. 그리하여 하나회라는 집단의 국가 군대이면서도 마지 국경 밖의 유목민처럼 지니고 있었던 외부성을 영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집단이 점거한 국가, 그로부터 7년 후를 다루는 『1987』에서는 이들은 어떤 존재로 군림하고 있을까? 역사가 이미 스포일러인 상황, 과연 어떤 수단과 동력으로 우리는 그들을 물리칠 수 있었을까. 이번에는 들뢰즈가 말하는 비밀의 개념이 해석의 열쇠이다.


[스포일러 주의 : 아래 글은 영화의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버리지 못한 유목성

겉모습은 그럴듯하게 흉내 내고 있으나, 여전히 그 외부성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 집단 신군부. 7년이나 지났는데 주인 아닌 손님처럼 말한다. 정작 청와대를 비워 줄 생각은 없으면서.


영화 초반 장세동(문성근)이 박처원(김윤석)을 만나서 청와대 주인은 바뀌어도 남영동은 그대로라는 말을 한다. 의외의 효용성에 놀라며 만족스러워하는 말인데, 왜 의외인가? 자신들이 이미 존재하던 국가에 나중에 눌러앉았으니 아직도 새로 알아가는 게 많다는 것, 완전히 융화되지 않았음을 말한다. 국가가 되어가는 중이었겠지만 아직 유목 부족이다.


전두환-하나회 집단이 국가를 점거한 후 그 유목 부족으로서의 외부성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 상태. 들뢰즈는 국가가 외부의 전쟁 기계를 군대라는 이름으로 전유한다고 했지만, 이 영화에선 정확하게 반대로 유목민인 신군부가 국가 기관을 전유하고 있다. 전투경찰, 백골단은 이 결과로 만들어진, 억압과 통제가 아니라 전쟁의 수단이라는 성격까지 띠는 특이 장치다.


대공수사처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국가의 공식적인 행정 계통을 따르기보다, 자신들만의 '전쟁 기계적 속도'로 몰아붙인다. 박처원은 최환(하정우) 검사와의 대화 중에 서로가 같은 사냥개라고 말한다. 자신이 국가의 '부품'이 아니라, 점거자를 위해 외부에서 투입된 '야생적 힘(전쟁 기계)'임을 자각하고 있다는 증거다.


작동하는 국가

경찰의 언행은 계속 심기에 거슬린다. 이 거슬림은 관객들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사정없이 전화기를 부수는 최환. 『서울의 봄』에서 육본의 지휘관들이 했어야 하는 행동이다.


이 도치된 전유가 행사하는 폭력은 존재하던 국가의 홈을 가로지른다. 이 가로지름은 반공이라는 거대한 이분법 아래에서 잘 연동하는 것 같지만, 국가가 이를 거슬려할 가능성이 아주 없지 않다. 특히, 유교의 인본주의가 500년을 지배한 지리적 공간에서, 민주주의 헌법 체계에서 파인 홈은 국가 자신의 작동을 강제하는 힘이 있다.


이 영화에선 이 거슬림이 두 가지 사건으로 나타난다. 첫 번째가 공안부장 최환 검사의 시신 화장에 대한 결재 거부와 부검의 진행이다. 두 번째는 영등포교도소 보안계장 안유(최광일)가 박처원에게 교도소 규정을 준수하라고 항변했다가 폭행당한 일이다.


특히 최환 검사는 대공수사처의 절차를 문제 삼으며 검사로서의 자신의 권한만으로 대공수사처를 방해한다. 이 지점에서 최환은 개인이 아닌 국가의 장치로 저항하고 있다. 부천서 성고문 사건 이후에 검찰 조직 느끼던 정치적 부담감 또한 일종의 거슬림이다. 결국 검찰 조직은 최환에게 조력하며 이를 표면화한다. 이것은 점거자에게도 자신이 파놓은 홈을 따르게 하는 국가 본연의 움직임이며, 침입에 대한 면역 반응이기도 하다.


이 영화의 주된 서사는 바로 이 가로지름과 거슬림이 교차하는 사건들에서 발원한다. 국가가 본연의 체계와 유목민의 점거가 본질적으로 호환되지 않아서 발생한 이 두 가지 사건이, 결국 새로운 흐름을 만든다.


경계에 서는 첩자들

두 사람이 선 밖으로 밀려날 때, 거기엔 기자가 있다. 영화는 비밀을 가진 자와 진실을 나르려는 자들의 만남을 반복한다.


국가의 부품(관료)들이 자신의 위치(홈)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전쟁 기계에 맞서는 저항이 되고, 이는 곧바로 진압이 이어진다. 최환 검사는 사직하고, 안유 계장은 대공수사처 형사들에게 모멸적 폭행을 당한다. 국가 장치로 정상 작동했을 때, 뒤따른 진압은 이들이 유목집단이 만들어 놓은 기이한 시스템의 경계의 밖에 있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이들은 국가 장치이면서 각자가 한 사람의 인간이기도 하다. 최환은 부검 직전 울부짖는 박종철(여진구)의 어머니(김혜정)를 본다. 영화는 그의 감정선을 세세하게 묘사하지 않는다. 하지만 최환과 관객, 모두의 피부 밑에 흐르기 시작한 어떤 것이 있다. 이는 안유 계장의 폭행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모멸적 상황과 수감된 형사들에 대한 관찰이 최환과 같은 것을 만들어 낸다. 단순한 연민이나 분노를 넘어선, 이 강렬한 정동(Affect)이 마침내 그들을 움직인다.


기이한 체계가 파 놓은 진한 붉은 홈은 이 둘을 포획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 두 사람과 연결되는 두 명의 기자가 있다. 동아일보 사회부의 윤상삼(이희준) 기자는 최환이 밀려난 검찰의 선, 그 경계에서 그를 만난다. 처음부터 바깥의 존재인 수감된 해직기자 이부영(김의성)은 안유 계장과 같이 있다. 이 홈 바깥을 탐색하던 두 기자가 경계 밖으로 쫓겨난 두 사람을 통신 회선으로 작동시킨다. 그리하여 국가가 감추려 하는 비밀은 새롭게 뚫린 이 통로를 타고 흘러나간다.


이 유출은 영화 『300(2007)』에서 에피알테스가 크세르크세스에게 샛길을 알려주는 일과 같다. 레오디나스의 스파르타는 그를 경계밖으로 내보냈고, 최환과 안유도 동일한 대우를 받았다. 이 셋의 입력은 모두 같으며, 이에 대응한 비밀 누설의 출력은 그저 정확한 작동일 뿐이다. 수신자가 누구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비밀의 비가시성

연희는 지배적인 구조(다수자)의 눈에 포착되지 않는다. 그래서 누구나 자신을 볼 수 있는 이 대로에서도 샛길로써 비밀을 품고 지나갈 수 있다.


에피알테스가 말한 샛길은 눈에 띄지 않는 통로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은밀한 것이다. 크세르크세스의 부하들이 이 경로를 지날 때, 샛길에 있는 그 군대라는 내용도 자연스럽게 은폐된다. 이 내용과 형태의 비가시성으로 인해 샛길은 들뢰즈가 말하는 비밀의 조건에 부합한다.


이 영화 『1987』에도 그런 샛길이 하나 있다. 주요 인물 중 인물 이연희(김태리)는 유일하게 순수한 창작의 소산으로 완전히 허구인 인물이다. 그녀는 기록되지 않은 익명의 사람들이 서사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통로이면서, 이야기 안에서는 비밀을 나르고, 그것을 감추는 샛길이다.


비밀은 숨기는 행위가 아니라, 지배적인 구조(다수자)의 눈에 포착되지 않는'비가시성'을 의미한다. 한병용(유해진)이 자신이 직접 밀지를 전달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가시성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부탁받는 연희는 검문소에서 희롱을 감내해야 하는 소수자 여성이다. 국가 장치(검문소의 전경들)의 눈에 그녀는 그저 '여학생'이라는 성적 대상이나 보호와 훈계의 대상일 뿐, 정치적 주체로 보이지 않는다.


지배적인 구조(다수자)의 눈에 포착되지 않는 소수의 비가시성, 대로가 아닌 소수자 에피알테스의 샛길과 연희의 작동 방식은 동일하다.


그녀는 역사라는 홈 패인 공간에 기록되지 않았기에, 비로소 비밀을 운반하는 매끄러운 선이 될 수 있었다. 비밀의 샛길이야 말로 민중의 힘이다. 그 자체가, 그 어떤 실체로도 국가에 자각되어서는 안 되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 허구는 당위성을 갖춘다.


또 다른 비밀

학교 입구에 전투경찰이 포진한 이런 상황 때문에 만화 동아리의 비가시성은 학내에서만 가능할 뿐이다.


신군부라는 유목 부족에게 광주 학살은 영원히 가두어야 할 '최상위 비밀'이었다. 이 비밀의 위력은 대한민국이 전체를 뒤흔들 만큼 거대했지만, 역설적으로 그 거대함 때문에 전달의 경로는 극도로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처럼 데이터가 파편화되어 빛의 속도로 흐르는 유튜브나 인터넷 환경과 달리, 당시의 모든 공식 방송망과 통신망은 국가가 촘촘하게 파놓은 '홈 패인 공간'의 격자 안에 완벽히 포획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광주의 참상을 담은 외신 비디오테이프는 공식적인 루트를 탈 수 없기에, 오직 대학의 만화 동아리방 같은 비공식적인 공간만을 타고 흐른다. 여기서 비밀은 사회적 확산이 아닌, 내부의 결속을 다지는 '너만 알려줄게' 식의 내적 강화 수단으로 작동한다. 들뢰즈가 말한 비밀의 형태적 특징처럼, 이는 외부와 단절된 채 운동권 전사들을 더욱 견고하게 결집시킨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전쟁 기계(운동권)가 보유한 비밀의 치명적인 한계가 드러난다. 비밀의 내용물은 파괴적이었으나, 그 비밀을 운반하는 주체들은 이미 국가의 레이더망에 포착된 '가시적인 적'들이었기 때문이다. 국가 기관은 눈에 불을 켜고 이들을 검열하며, 이들이 움직이는 모든 경로에 '홈'을 파고 포획의 그물을 드리운다.


결국 운동권 학생들에게는 들뢰즈가 말한 비밀의 핵심 조건인 '형태론적 비가시성'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들은 누구보다 뜨거운 진실을 품었으나, 그들의 신체와 정체성이 이미 국가 장치의 감시 체계에 낱낱이 등록되어 있는 한, 그 비밀은 매끄러운 공간을 가로지르는 탈주선이 되지 못한 채 끊임없이 차단되고 격리되는 '고립된 섬'의 진실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격문: 비밀의 폭로

한쪽에서 '쿠릴타이' 개최를 선포하자, 비밀은 다른 쪽 유목민의 결집을 호소하는 격문이 된다.


전두환과 신군부는 마지막까지 유목성을 버리지 못했다. 마치 쿠빌라이가 원이라는 정착 왕조를 세운 뒤에도 황실이 유목의 습성을 끝까지 유지했던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만의 '쿠릴타이*' 개최를 선포하기에 이른다. 전두환의 호헌 선언은 딱 그 정도 수준이다.


"탁하니 억하고 죽었다"라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하긴 했지만, 박처원은 기민하긴 하다. 강대강의 대치 상황이 벌어지기 전에 수를 써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들이 지금까지 쌓아오던 야권의 두 인사를 빨갱이로 만들 거대한 비밀을 완성하고 폭로해야 한다. 비밀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아는 그는, 암캐의 분비물에 끌려 자신을 드러내는 수캐의 일화로 이야기한다. 비밀은 쫓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드러나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 가닥을 잡아 낸다.


하지만, 유목민의 종잡을 수 없는 종적, 그것이 추적자에겐 풀리지 않는 비밀이다. 국가가 눈에 불을 켜고 찾을 때, 이미 다른 곳에 가 있는 속도가 비밀 그 자체이다. 홈을 지워버린 매끄러운 공간에서의 이동, 쫓는 자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움직임은 예측과 지각이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러한 유목적 움직임의 비가시성 또한 비밀의 조건에 부합한다.


종교는 국가 못지않게 깊은 홈을 파지만, 김정남(설경구)은 이 홈들을 가로지른다. 그는 절에 숨어있으면서 천주교 신부와 밀지를 주고받고, 경찰들이 들이닥치자 개신교회로 도망쳐 숨는다. 중으로 변장하여 빠져나온 그를 박처원의 눈길에서 감춰준 건 예수가 그려진 스테인드글라스이다.


연희가 선 밖으로 밀려날 때, 등사기로 전단지를 만들던 그가 찾아온다. 세 번째 반복이다. 그가 가져다준 신발은 움직일 수 없었던 연희를 걷게 한다. 그래서 샛길이 작동한다.


박처원은 끝내 잡아낸 가닥을 풀지 못한다. 그 수단이었던 한병용에 대한 폭압은 연희 또한 경계선 밖으로 밀려나게 한다. 그리고 그곳에는 등사기를 밀며 전단지를 만들던 잘생긴 남학생(강동원)이 있다. 비밀을 갖춘 자가 바깥으로 밀려날 때, 진실을 나르려는 자와 마주치는 장면의 세 번째 반복이다. 다시 한번 선 외의 존재가 통신 회선으로 작동한다.


결국 영화는 비밀과 그 진실을 폭로하는 격문이 이 역사의 고비를 넘기는 중대한 동력이었음을 세 번이나 말하고 있다. 그리하여 박종철 고문치사의 가장 큰 비밀이, 레오디나스를 파괴한 그 샛길을 통과해 성 밖의 유목민들에게 도착한다. 정의구현사제단의 김승훈 마티아 신부(정인기)의 폭로는, 유목민의 결집을 호소하는 격문이다. 이에 질세라 칠판의 보도지침을 지우던 언론사는 앞다투어 실어 나른다.


*몽골부족은 칸(왕)이 사망하면 황족과 유력 부족장이 모여 합의하는 '쿠릴타이(Quriltai)'라는 최고 회의를 통해 후계자를 추대했다.


새로 시작하는 전쟁

비밀은 영원히 감춰지기보다, 적절한 순간에 드러나거나 누설됨으로써 그 사회적 기능을 완성한다.


국가 장치의 폭력이 연희의 미시적 일상을 직접적으로 짓밟을 때, 그녀는 이성이 아닌 신체적 고통과 공포, 슬픔이라는 분자적인 떨림(정동)을 통해 비로소 국가의 야만성을 뼈저리게 지각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이 야만성을 목도하게 되는 '광주 학살'의 미시적 재현이었다. 지하에서 은밀히 유통되던 비디오 속 광주의 학살이, 서울 한복판에서 평범한 대학생이 끌려가 죽은 사건으로 내 피부에 직접 닿는 순간. 이 압도적인 '정동'의 공유가 이념의 장벽을 부수고 익명의 대중을 각성시켰다. 국가가 결코 통제할 수 없었던 수많은 대중의 샛길들이 마침내 하나의 거대한 해방의 네트워크로 연동된다.


앞서 언급했지만 전투경찰이라는 명칭 자체가 국가를 전유한 전쟁 기계의 발명품이다. 경찰력은 국가의 통제와 억압을 위한 대표적인 수단이지만 전투는 외부의 유목민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이 명명에 따라 이들 앞의 시위대는 국가의 바깥 존재가 된다. 그러지 않고서야 최루탄을 어찌 사람을 향해 쏠 수 있겠는가. 이 최후의 발악에 이한열이 쓰러짐으로써, 연희는 버스 위에 올라서게 된다.


그녀는 이한열이 마지막으로 이 전장으로 불러 모으려던 절대 소수자이다. 폭압자들의 눈에 적으로 조차 인지가 안되던 그 소수자들이 모여 다수로써 이 전선의 대열에 가담하게 되었을 때, 국가를 사이에 두고, 칸을 옹립하려는 유목민과 그것을 없애려는 유목민의 전쟁이 시작됐음을 알리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마지막으로 연희는 익명의 대중과 관객이 영화로 들어서기 위한 샛길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한열이 가져다준 그 신발, 우리에게 신겨 준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길바닥에 버려졌던 그의 운동화와 같다.



『1987(2017)』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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