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사진 출처 : https://www.hani.co.kr/arti/economy/it/1083351.html한겨레 신문기사 사진)
나는 어린이집 교사다. 숫자도 묘하기 짝이 없는 18년 차.
나는 워킹맘이다. 먹고살기 위해 시작한 일이 나는 의미다.
그런데 단지 먹고살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나를 증명하고 싶었고 표현하고 싶었다.
내겐 가정을 지키며 내 아이를 키우는 것만큼이나 일터에서 동료들과 보내는 삶의 에너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비록 엄청난 대기업도, 대단한 월급도 기대할 수 없는 직장이지만 나란히 앞치마를 두른 선생님들과 별 시시콜콜한 일상을 공유하며 웃고 떠드는 시간이 주는 소소한 행복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삶의 우선순위는 내 아이다. 마음속 우선순위인 내 아이를 두고 출근하는 삶, 그래서 미안함은 내 삶의 기본값이다. 당당하기 위해 애써 노력했다. 비슷한 연령대의 아이를 만나고 교육하는 일은 한다는 자부심은 내 아이에게 드는 미안함에서 자유롭게 도왔다. 그래 , 일하는 엄마의 보람은 이런 거지.
단지 그 일이 있기 전부터는... 말이다.
바야흐로 아이가 5살 , 10월의 멋진 날이 되길 바랬으나 10월의 아픈 날이 되었을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이다. 아이들의 눈물, 콧물범벅은 기본이요.
점심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고 마시고 있을 때 지이이잉~앞치마 주머니 속에 있던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또 광고겠지’하고 생각하고는 카톡 내용을 확인도 하지 않은 채로 눈앞에 마주한 일들부터 하나 둘 처리하기 시작한다. 아이들을 재우고 한숨 돌릴 즈음 핸드폰을 켜고 물밀듯이 밀려온 카톡 내용을 그제야 확인했다.
‘엇! 근데 어라? 모르는 사람이네?’ 낯선 이름에 조심스레 카톡 내용을 누른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지구의 반지름에 맞먹는다는 길고도 긴 만리장성처럼 스크롤을 아무리 내리고 내려도 화면을 꽉꽉 채우고도 남는 카톡 내용이 기다리고 있었다.
카카오톡을 접한 이후 그렇게 긴 장문의 내용은 사실 처음 본다. 카톡을 보낸 이는 다름 아닌 내 아이와 같은원에 다니는 친구 엄마이다. 워킹맘이기에 같은 원에 다닌다 하더라도 얼굴만 가끔 보며 인사 나눌 뿐 연락처를 교환한다던지 하는 관계는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수민이 엄마인데요. 전화상으로 얘기하려다가 감정 상할까 봐 이렇게 먼저 톡으로 남겨요. 기분 좋은 얘기는 아니니 감안해주세요. 오늘 등원 때 할머님 행동이 넘 화가 나고 당황스러워서요.”로 시작된다. 아뿔싸! 할머니? 우리 엄마가 사고 쳤나? 갑자기 심장이 두근두근, 동그란 파동이 둥둥둥 내 마음이 요란하다. 어떻게 해야 하지? 할머니한테 말해야 하나? 말하면 어른 싸움 되는거 아냐? 질문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잠시 진정하자. 휴우~심호흡 한번 들이쉬고 생각해 보자.
사건의 요점은 이렇다. 어린이집 등원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때 내리 손녀사랑이 지극하신 할머니께서 평소 친구가 안 놀아준다는 손녀의 하소연을 들으시고 대뜸 그 아이에게 가서 왜 같이 안 놀아주냐, 우리 애가 싫으냐 등 따지듯이 물으신 것이다. 이에 화가 난 친구엄마는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우리 아이와 관련된 사건과 진심? 에 대해 길고도 긴 이야기를 풀어낸 것이다. 참고로 친정엄마에 대해 덧붙이자면 알고 보면 정도 많고 마음이 약하신 분이나 겉으로 보면 호랑이띠에 버금가는 한 인상을 짓고 계셔서 사실 세상 인자하고 포근한 인상을 풍기는 할머니는 아니다. (친정엄마 디스 아님) 오해할 만도 하다.
순간 친정엄마 때문에 이 사달이 났다고 생각하니 그동안 손녀딸을 애지중지 키워준 고마움도 잠시 잊은 채 원망이 가득했다. '벌써 일어난 일이니 어쩔 수 없지' 하면서도 카톡 내용 속 무서운 말들이 다시 내 마음을 후벼 팠다. 내 아이가 나쁜 말을 하고 따돌림을 했다는 사실과 물건도 자주 뺏아갔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설마 내 아이가? 믿을 수 없는 내용들에 또 한 번 놀랐다. 무엇보다 내 아이는 ‘나쁜 아이야’라고 낙인이 찍히는 것 같아 슬펐다.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이게 워킹맘의 비애인가? 옆에 엄마가 없어서 그런가? 엄마들과 친목을 쌓았다면 이런 사달이 났을까? 할머니께 육아를 맡기는 게 아니었나? 내 아이도 지키지 못하는 마당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는 여러 망상들에 사로잡혀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당장 아이들 귀가준비도 해야 하는데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질 않았다.
모든 워킹맘이 그렇듯이 나름 어려움이 있었지만 한단계 한단계 스스로 잘 헤쳐갔다고 생각했다. 이런 일이 있고 보니 그동안의 일은 새발의 피였다. 자신감 있게 아이와 공감하는 워킹맘의 모습은 온데간데 사라졌다.차곡차곡 쌓아두었던 '나'라는 성도 와르르 무너졌다.
내 아이와 관련된 일들이 어디까지 진실인지 아직까지 모른다. 사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이에게 미안하고 미안했다. 엄마가 옆에 없어 미안하다고, 엄마가 너의 마음 몰라줘서 미안하다고, 너의 고민을 들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알아서 잘 크기만 할 줄 알았다고... 바쁘다는 핑계로 넘겼을 엄마는 다분히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최선일 거라고 이게 너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대단한 착각이다. 엄마로서 1순위가 일이 아닌 너였는데 생각과 달리 행동은 가끔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휴~ 다시 한번 숨을 내쉬고 긴장되고 걱정되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미안하다는 전화를 걸었다. 다소 시간이 지난 시간이라 그런지 친절하게 받아주었고 시간 되면 커피 한잔 하자는 대화로 사건은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다.
워킹맘은 늘 생각한다. 일과 육아 중 어떤 정도로 균형을 맞추어야 하는지 어느 정도로 무게를 맞추어야 하는지.. 사실 정답은 없다. case by case이므로.. 이렇게 내 아이와 관련된 일들이 하나 둘 터질 때마다 워킹맘은 아이에 대한 죄책감, 미안함을 잔뜩 쏟아져 낸다. 하지만 후회 is 뭔들.. 이런 계기로 또 워킹맘은 성장한다.
이 일로 또 배운 거지 뭐.
이 세상의 어머님들 오늘도 좋은 수업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