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란 마음도 잠시 손이 더 빨리 움직였다. 양쪽 귀의 체온을 체크하고 해열제를 찾아 물과 함께 아이 앞에 대령했다. 미지근한 물로 젖은 손수건으로 아이의 이마, 목, 겨드랑이 순으로 닦아준 뒤 병원으로 날아갔다. 급박한 상황에 엄마는 슈퍼맨보다 빠르다. 감히 초보인 주제에 속력 아닌 속력을 냈다.
뉴스마다 독감환자가 많다는 소식은 이미 들은 터지만 남의 집 이야기인 줄 알았다. 직접 눈으로 보자 여기가 병원인지 아기판다를 보러 온 환상의 나라인지 이어진 대기줄에 입을 벌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허...그래도 접수는 해야지.
시간이 멈추었나? 가고는 있는 건가? 시계를 보기를 여러 번, 2시간이 넘는 시간에서야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 목이 조금 칼칼한 정도인데 목이 그리 붓지는 않았네요. 독감환자가 많은데 독감 검사 해보시겠어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독감검사를 받았다. '독감이 아니기를' 로또번호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숨죽여 기다렸다.
"최햇님~진료실로 들어오세요. "
"여기 빨간 줄이 안 떴는데 독감은 아닌 것 같네요. 내 눈이 이상한가? 맞지요? 요새 하도 많이 봐가지고"
의사 선생님의 말에 다시 독감검사키트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다른 것과 비교해 봤을 때 빨간 줄의 빨도 간도 안 보인다. '휴우~ 다행이다'
"근데 100프로 안심할 수는 없어요. 약 먹고도 또 열이 나면 독감검사 다시 해봐야 됩니다. "
이건 또 무슨 말이여. 또 코 찌르라구요.
(요즘 아이들은 코로나에 독감에 코가 남아나질 않는구나.)
집에 와 엄마표 뜨끈한 죽을 만들고 있는데 아이가 옆에 와 칭얼거린다.
"엄마, 안아줘. 나 힘들어."
"그지, 힘들지. 에구 힘들어서 어떡해"
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엄마의 무릎은 바운서가 된다.
"근데 엄마 있잖아... 미... 안.... 해"
얼굴을 내 품에 더 파묻고 아이가 말한다.
"응? 뭐가 미안해?"
웬 뜬금없는 말인가 싶어 아이를 쳐다봤다.
"내가 아파서 미안해.."
목이 메었다. 호박 고구마를 먹었나.
두 눈에 물기가 어리는 걸 꾹 참고서 아이의 눈을 바라봤다.
아이의 눈엔 벌써 닭똥 같은 눈물이 가득이다.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 할 수 있으면 엄마가 대신 아파주고 싶은데."
하고 내 품에 더 들어오도록 꼬옥 안아줬다. 그리고선 아이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그건 싫은데... 엄마가 아픈 것도 싫어."
아이의 펄펄 끓던 열이 따스한 온기로 다가왔다.
아이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마음에 고개가숙여졌다. 엄마의 마음 따윈 모를 거라 확신했다.
정말 무지했구나. 아이의 마음은 엄마의 마음보다 더 깊고 진했다. 눈치를 못 챌 뿐이지.
"빨리 나으려면 잘 먹고 쉬어야지. 어서 먹자"
울컥한 마음을 들킬세라 엄마의 자리로 돌아왔다. 입에 데일까 뜨끈한 죽을 후후 불어가며 한 숟갈 먹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