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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운 니니 Apr 18. 2022

05. 가족 같이 일 못하겠네

 나는 '중소기업'이란 말을 생각할 때 대부분 어느 정도의 규모가 있는 사업을 생각했었다. 중소기업은 말 그대로 중견기업과 소기업을 함께 부르는 말인데 나는 꽤 편협했다. 둘을 나누는 기준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기준은 사실 모호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본 제일 작은 소기업은 사장 혼자저 사업장을 내고 일을 하는 기업이다. 그리고 그 소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이 바로 아빠이다. 아빠의 회사에는 사장님인 아빠와 은퇴를 앞둔 할아버지가 함께 일하고 계셨는데 막내 직원으로 내가 입사하게 되었다.

 주변 공장들을 보면 혼자 사업을 하는 사장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혼자 일을 하다 보니 저마다의 개성이 각 공장마다 묻어나는데 대표 적은 것은 노동의 시간에서부터 나눠졌다. 일찍 출근해서 일찍 퇴근하는 사람, 늦게 출근해서 새벽까지 일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침부터 취해있는 사람도 있었고 매일 공장문을 닫고 있다가 일이 있을 때만 출근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빠의 스타일은 아침에 출근해서 늦게까지 일을 했다. 오전 9시에서 10시 사이에 출근을 해서 밤 11시부터 12시 사이에 퇴근을 했다. 쉬는 날도 없이 일을 해서 빨간 날 쉬지 않으셨다. 가끔 일이 없어도 공장에 나오셨는데 문제는 나에게도 이런 것을 요구하셨다.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아니 강요하셨다. 나의 의견은 수렴되지 않았으며 쉬고 싶다는 나의 요구는 철딱서니 없는 철부지의 어리광으로 여기셨다. 작은 회사이고 가족회사여서 그런지 연차, 월차, 수당,  보너스의 개념이 없다. 생각해보면 출퇴근 시간의 개념이 없는데 복지의 개념이 있을 리 만무하다. 주말에 있는 친구의 결혼식을 위해서는 온갖 눈치를 봐야 됐고, 회사의 상황을 지켜봐야 됐다. 연애 중이었던 나는 데이트 또한 쉽지 않았다. 그 당시 일주일에 한 번, 딱 한 번 저녁을 함께 먹는 것이 나의 소원이었다.

 2013년 1월. 현아내, 구여친이 나에게 말했다. 

"오빠, 올해 우리가 100번을 만나지 않는다면 우리 헤어지자."


 가족과 함께 일하는 것은 나쁜 것보단 좋은 것이 더 많을 것 같았다. 나는 욜로를 바라지 않았다.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요구했다. 주 5일, 혹은 격주 토요일 휴무, 정해진 퇴근시간, 국경일 보장. 내가 너무 무리한 것을 요구한건가? 아빠한테 월급을 500만원 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수당을 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모든것이 묵살됐다.

  핑크빛이었던 아빠와의 노동은 가족이란 이름하에 혹사로, 착취로 물들고 있었다. 

가족! 같이 일 못하겠다는 생각은 입사 후 얼마 되지 않아서 들기 시작했다.

가 족 같이 일 못해먹겠다.



사담 : 아내는 100번을 내걸었지만 상반기 동안 부단한 노력으로 겨우 절반 가까이 만남의 숫자를 채웠다. 그러다 아주 우연한 개기로 결혼 이야기가 양쪽 부모님 쪽에서 나왔고 그 해 11월 결혼을 하게 됐다. 결혼 후 나머지 100번을 채웠을까? 난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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