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난관을 만들었다. 빠른 실행력은 또 다른 조바심을 만들었다. 최고의 선택 같았고 순탄한 진행이었지만 역시나 변수가 생겼다. 인생은 늘 이렇다. 잘 풀리는 것 같지만 쉽게 되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다. 상황을 수습해야 될 것 같았다. 우선 다시 침착하게 계산해보았다. 돈이 어디 어디에 얼마가 들어갈지, 이 돈으로 얼마나 생활할 수 있을지 등등. 결론은 역시 위니펙에 있는 것이었다. 나는 서둘러 에어캐나다에 메일을 보냈다. 상황을 설명한 뒤 환불해 줄 수 있는지 문의하였다. 메일을 보낸 뒤 뛰는 심장을 답답함이 짓누르고 있는 기분이었다. 돈은 1원도 벌지 못하는 상황에 애꿎은 항공비만 날리게 생겼으니 답답한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내가 잘못한 거 누구 탓을 하랴... 감사한 건 아내 또한 한 번도 내 탓을 하지 않았다. 걱정은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쿨하게 인정하고 넘어갔다. 며칠 뒤 에어캐나다에서 메일이 왔다. 역시나 규정상 환불이 불가능하다는 메일이었다.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됐고, 떨어지는 와중에 공기라도 붙잡고 싶어 허공을 허우적거리는 기분이었다. 또다시 메일을 보냈다. 제발 환불해 달라고. 이번 답장은 며칠 뒤에 왔던 지난번 메일과 다르게 바로 다음날 답장이 왔다. 24시간이 지났기에 환불은 할 수 없고 가능한지 알아보겠다는 메일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고 느꼈다. 더 이상 따질 수도 없었다. 왜냐면 따질 만큼 내 영어가 안됐다. 이미 전화로 이야기해볼까 생각을 했지만 자신이 없어져서 생각한 지 1초 만에 단념했었던 나다. 이만큼도 충분히 했다고 생각이 들었다.
전쟁같이 정신없는 나날이 며칠 동안 몰아쳤다. 시간이 흘렀지만 멍-청페이는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자신도 없으면서 헬스장을 1년이나 끊어놓고 가지 않았던 지난 나날, 온라인 영어강좌를 1년이나 끊어놓고 반년도 못했던 지난 나날, 운동한다고 운동복을 세트로 사고 운동 안 하다가 결국은 작아져서 못 입던 모든 순간들이 떠올랐다. 이런 시간들이 모여서 나는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걸까? 변화가 없는 것 같은 나의 모습에 작은 우울함이 몰려왔다.
지금 상황에서 최악의 상황은 위니펙에 계속 있으면서 다른 캐나다의 도시를 여행하지 못하고, 가지도 않을 토론토 좌석은 취소해놓고 환불은 받지 못해서 토론토도 가지 못하는 그런 상황일 뿐이다. 적어도 토론토에 넘어가서 지낼 집이 없어서 아무 곳이나 싼 지 비싼지도 모르고 어떤 동네 인지도 모른 곳에서 3달씩 계약해서 눌러앉아야만 하는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시원한 에어컨과 선풍기가 있는 위니펙에 있으면 노숙할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이 일을 기회로 또 하나 배웠다. 특가라를 말에 쫓기듯 물건을 사지 말 것. 나의 멍청함으로 나는 멍청페이를 또 한 번 지불했지만 하나를 더 배웠으니 좋게 생각해야겠다. 그래 좋게 좋게.
때론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반대일 때도 많이 있다. 이럴 때 나의 멍청함은 빛을 발한다.
이름하여 '빛나는 멍청함.'
사담) 몇 달 뒤 카드값이 취소가 됐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난 뒤여서 나는 갑자기 입금된 돈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알 수 없었다. 아내와 나는 몇달치의 카드 명세서를 뒤져가면서 이 돈의 출처를 밝히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 포기하고 있을 무렵 아내가 기억해냈다. 아내가 없었다면 그냥 돈이 하늘에서 굴러 떨어졌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나저나 '환불 불가'라고 했는데 환불해주고... 이게 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