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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가 본 영화 좀비딸 후기

영화 이야기

by 니너하리


정신과 의사가 본 영화 <좀비딸>


얼마 전 개봉한 영화 <좀비딸>을 보고 왔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랜만에 재미와 감동을 모두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습니다.

(애용이가 참 귀엽습니다 ㅎㅎ)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세상에서 좀비가 된 딸과 함께 살아가는 가족의 이야기. 좀비라는 소재를 빌렸지만, 그 안에는 가족의 사랑과 기다림이라는 익숙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다림은 제게는 어딘가 익숙한 풍경처럼 다가왔습니다.


누구도 원치 않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변화. 겉모습은 그대로인데 낯선 딸의 모습 당황하는 가족들. 그리고 어떻게든 예전으로 되돌리려 애쓰는 그 마음은, 정신과 진료실을 찾는 많은 이들의 이야기와 겹쳐 보였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병과 씨름하는 시간은 영화 속 무인도에서 딸을 훈련시키는 장면처럼 유쾌하지만은 않습니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지쳐가는 마음에 상처를 주고 등을 돌리기도 하죠. 분명 같은 마음에서 출발한 것을 알기에 그런 모습을 볼 때면 더욱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영화 속 가족들은 딸의 예전 모습을 되찾기 위해 애를 씁니다. 화장을 하고 추억의 거리를 함께 걷고, 좋아하는 음식과 노래를 찾아 하루하루를 기록하죠. 그러나 때로는, 딸의 모습을 숨기려 하는 복잡한 감정에 휩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가족들은 서서히 깨닫게 됩니다. 좀비가 된 딸이 예전처럼 웃지 않아도 함께할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지.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는 딸의 환영이 남긴 이야기는 누구보다 변화를 갈망하지만 그만큼 두려운 마음에 망설이는, 진료실을 찾은 내담자들의 얼굴과 겹쳐 보여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습니다.


영화 속에서 딸을 회복시킨 건 멋진 추억의 장소도, 익숙한 노래도 아니었습니다. 그 모든 시간을 묵묵히 견디며 곁을 지킨 가족의 사랑이었죠. 눈에 보이지 않았던 그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봄처럼 다시 피어났습니다.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과 그 곁에 있는 가족들에게도 그런 시간들이 분명 쌓이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지치고, 조급해질 때도 있겠지만 서로를 향한 그 마음만은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상, 영화 <좀비딸> 후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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