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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외) 나의 불안에 대한 고백

살아가는 이야기

by 니너하리

무더운 여름날,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신가요? 9월에 예정된 강연 준비로 인해 원고가 펑크 나버렸습니다. 오늘은 휴재 공지를 가장해, 살아가는 이야기를 잠시 들려드리려 합니다. 많지는 않겠지만 <안녕, 나의 우울아> 시리즈를 기다려주신 분들께는 죄송한 마음을 전하며, 다음 주에는 꼭 귀여운 그림과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문득 지나온 길을 돌아볼 때가 있습니다. 시골로 전학을 가며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던 초등학교 시절, 경제적 어려움으로 좋은 일에 기뻐할 여유조차 없던 날들, 막연한 불안을 잠재우려 목적 없이 공부하던 시간, 성형외과 전공의 선발에 탈락하며 겪은 첫 실패, 유난히 추웠던 3년간의 군 생활, 끝이라 여겼지만 이제 시작에 불과했던 정신과 전공의 생활, 그리고 의정 갈등으로 인한 2년에 가까운 공백기까지. 이렇게 글로 정리해보니, 나름 다사다난했구나 싶은 마음도 듭니다. 누군가는 그런 시간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걸어온 저를 대견하게 여길지도 모르지만, 이제 와 고백하자면 저는 늘 불안과 함께 살아가던 사람이었습니다.


불안은 언제나 나쁘기만 한 감정은 아니었습니다. 사소한 미래의 불확실성에도 쉽게 불안해지는 성격은, 오히려 작은 일도 미리 계획하고 차근차근 실천하게 해주었습니다. 어쩌면 그런 습관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었겠지요. 하지만 그만큼 놓친 것도 많았습니다. 행복하고 편안해야 할 순간에도 미래를 걱정하며 인상을 찌푸리거나,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에게 힘든 이야기만 늘어놓으며 정작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놓쳐버리곤 했습니다.


책을 쓰던 순간에는 ‘완성할 수 있을까’, ‘누가 읽어주긴 할까’ 하는 걱정에 사로잡혔고, 책을 낸 후에는 ‘다음 시리즈를 이어가는 것이 과연 가치 있는 일일까’, ‘정신과 의사로서 본업에 더 집중해야 하는 건 아닐까’ 같은 고민이 이어졌습니다. 의정 갈등이 길어지며, 하루빨리 사태가 해결되기를 바라는 마음과, 다시 전공의 수련을 이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이 뒤섞인 채, 불안과 술잔을 나누는 날도 많았습니다. 책이라는 형태로 제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고, 누군가는 그 이야기에 따뜻함을 느껴주었고, 수련은 잠시 멈췄지만 새로운 병원에서 환자들을 만나며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기쁨과 행복은 길게 주목받지 못한 채, 금세 또 다른 불안이 그 자리를 채웠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혹시 푸념처럼 보이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저를 보면, 아마도 저는 불안과 영영 이별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불안이라는 감정이 가진 역할처럼, 위험에 대비하고 준비하는 것은 인간 본연의 습성이니까요. 그래서 이제는 불안을 느낄 때, 그 안에 담긴 마음의 소리를 들으려 노력합니다. 간절히 이루고 싶은 무언가가 있다는 것, 혹시 모를 실패에 대비하고 싶다는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 합니다. 막막하고 불안하지만 어떻게든 하루를 살아가는 내 모습을 대견하게 바라봐주기도 하고, 힘듦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더라도, 내게 소중한 것들에 더 가까워지는 하루를 살아가자는 마음으로 이렇게 글을 씁니다.


고난과 역경의 파도는 언젠가 또다시 얄밉게 찾아오겠지만, 제가 좋아하는 쓰고 그리는 일, 그리고 제가 잘할 수 있는 정신과 의사로서의 일을 모아 세상에 작은 좋은 영향을 남기고 싶다는 꿈을 놓지 않고 걸어가보려 합니다. 미워할 수만은 없는 불안이라는 오래된 친구와 함께, 다가올 내일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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