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이 아니라 우울한 마음이었습니다.

#7. 그림자 마을

by 니너하리

7-1. 게으름이 아니라 우울한 마음이었습니다.

"거의 매일 나타나는 피로 또는 활력의 상실"
- DSM-5-TR, 주요우울장애 진단 기준 중

진료실에서는 속상한 말들을 마주할 때가 많습니다. 그중 하나가 ‘게으름’이라는 단어죠. 함께 병원을 찾은 가족들이 답답함을 털어놓을 때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변화를 두고 서로를 탓해 왔을 시간들이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L씨는 게으름이라는 단어를 앞에 두고 함께 내원한 어머니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나도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니까? 엄마가 그러니깐 내가 더 아픈 거야..." 날이 선 L씨의 목소리에 진료실 안 공기마저 숨을 죽이는 것 같았습니다.

L씨는 얼마 전까지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생활하던 20대 대학생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L씨의 뒤로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무게를 더한 듯 피로가 풀리지 않고 에너지가 바닥난 날들이 반복되었죠. 피로는 옷을 겹겹이 껴입은 것처럼 쌓여, 벗겨내려 해도 잘 벗겨지지 않는 느낌이었습니다.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아도 피로감이 느껴졌고, 샤워하고 옷을 입는 간단한 일들이 마치 무거운 짐을 나르는 것 같았습니다. 하루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바닥난 것 같은 배터리는 아무리 쉬어도 차오르지 않는 느낌이었습니다.

피로나 활력의 상실은 우울증의 진단 기준 중 하나입니다. 이는 단순한 나른함이 아니라, 일상생활을 어렵게 만들 만큼 뚜렷하고 지속적인 변화죠. 이런 피로는 우울증에서 매우 흔하게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실제로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이처럼 쉬어도 회복되지 않는 피로를 경험한다고 보고합니다.

이는 잠을 못 자서 생기는 일시적인 피로와는 다릅니다. 충분히 잠을 자더라도, 때로는 하루 종일 누워 있어도 에너지가 차오르지 않기도 하죠. 마치 충전 단자가 고장 난 배터리처럼, 아무리 쉬어도 회복되지 않는 피로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L씨를 더욱 힘들게 했던 것은 주변 사람들의 오해였습니다. "그냥 게으른 거 아니야?"라는 말들이 L씨의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들었죠. 혹시 지금, L씨처럼 온종일 무거운 그림자를 등에 지고 하루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지쳐 있지는 않나요? 게으름이라는 익숙한 단어 뒤에 가려진 마음의 소리를 들어봅시다. 아마 당신의 마음은 꽤 오래전부터, 당신에게 이야기를 건네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참고문헌
Fatigue in Patients With Major Depressive Disorder: Prevalence, Burden and Pharmacological Approaches to Management. CNS Drugs. 2018. Ghanean H, Ceniti AK, Kennedy SH.
Fatigue and Brain Arousal in Patients With Major Depressive Disorder. European Archives of Psychiatry and Clinical Neuroscience. 2021. Surova G, Ulke C, Schmidt FM, et 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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