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지칠까요?

#7. 그림자 마을

by 니너하리

7-2.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지칠까요?

추운 겨울이 찾아오면 겨울잠에 드는 동물들이 있습니다. 먹이가 부족한 혹독한 환경을 견디기 위해, 몸을 덜 움직이며 에너지를 비축하는 동면은 효율적인 생존 방식이죠. 최근에는 우울증에서 나타나는 피로와 활력 저하 역시, 신체가 에너지를 아끼고 소비를 최소화하도록 적응한 변화로 이해하는 관점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극심한 스트레스나 반복된 좌절 속에서 몸이 생존을 위해 저전력 모드로 전환되면, 그 변화가 우울증에서는 피로와 활력 저하로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이죠. 이는 뇌의 면역·대사 조절 회로가 흔들리며, 뇌가 신체의 에너지 상태를 정확히 읽기 어려워 에너지가 부족하다는 신호를 과도하게 보내는 과정으로 설명되기도 합니다. L씨가 겪던 깊은 피로감 역시, 우울이라는 추운 겨울을 견뎌내기 위해 어떻게든 에너지를 아끼려 했던 마음의 결과였을지도 모릅니다.

여기에 스트레스 호르몬을 조절하는 회로의 이상이 더해지면, 피로감의 무게는 한층 더 깊어집니다. 우울증이 찾아오면 만성적인 스트레스로 인해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HPA) 축이라 불리는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계의 균형이 무너지고, 이러한 변화가 에너지 수준과 생체 리듬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솔과 자율신경계의 불균형으로 몸의 에너지 관리 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리면, 브레이크와 가속 페달이 망가진 자동차처럼 필요한 순간에 에너지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합니다. 그 결과,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았는데도 하루 종일 피로가 가시지 않는 상태가 반복될 수 있죠.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하루를 시작하기도 전에 지쳐버린 L씨처럼, 몸과 마음의 변화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은 때로는 그 이유를 알 수 없기에 자책하며 괴로움이 깊어지기도 합니다. 우울증에서 나타나는 만성적인 피로감과 활력 저하는 그 원인이 복합적이기에, 단 하나의 이유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것이 게으름이나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지친 하루를 보내는 누군가에게 필요한 건, 더 힘내라는 말이 아니라 마음이 건네는 이야기를 함께 이해해 주는 온기일지도 모릅니다.


참고문헌
The Role of Energy Homeostasis in Depression Pathophysiology and Its Heterogeneity. JAMA Psychiatry. 2025. Pistis G, Strippoli MF, van Dalfsen JH, et al.New
The Role of Inflammation in Depression and Fatigue. Frontiers in Immunology. 2019. Lee CH, Giuliani F.
Low on Energy? An Energy Supply-Demand Perspective on Stress and Depression. Neuroscience and Biobehavioral Reviews. 2018. Østergaard L, Jørgensen MB, Knudsen 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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