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책은 어디에서 시작될까요?

#8. 자책의 호수

by 니너하리

8-2. 자책은 어디에서 시작될까요?

치료가 이어지며 G씨는, 너무 익숙해서 그냥 지나쳤던 ‘자책하는 습관’을 처음으로 정면에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스스로를 예민한 성격이라 여기며 어쩔 수 없다던 시간들이 호수의 물결처럼 일렁였죠. “아닌 걸 알면서도 저는 왜 자꾸만 저를 탓하게 될까요...?” G씨는 마음에 떠오른 물음표를 조심스레 꺼내보였습니다.

자책은 흔히 성격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내가 원래 예민해서 그래. 나는 스스로에게 엄격한 편이야.” 하지만 자책은 단순한 마음의 습관이 아니라, 뇌 안에서 경험을 정리하고 감정을 덧붙이는 ‘라벨 작업’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뇌는 우리가 한 행동의 의미를 해석하고, 그 의미에 감정의 색을 덧칠합니다. 예를 들어 내가 했던 말과 행동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정리할 때는 전측두엽이 관여하고, 그 의미에 죄책감이나 부끄러움 같은 감정을 덧붙이는 데에는 슬하전대상피질이 중요한 역할을 하죠. 이 두 부위는 평소 균형을 이루며, 실수를 학습의 기회로 바꾸고 자기 성찰이 가능하도록 돕습니다.

하지만 이 균형이 무너지면 작은 실수에도 뇌는 과도한 경고 라벨을 붙이기 시작합니다. 차가웠던 친구의 말투, 매끄럽지 않았던 회의 진행, 누군가의 표정이 잠깐 굳었던 순간이 “내가 잘못했어”라는 결론으로 단숨에 연결되는 것이죠. 실제 사건의 크기보다 내가 지는 책임의 무게가 과해지는 일들이 반복되기도 합니다.

실제로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에게서 이러한 자책과 관련된 회로의 불균형이 자주 관찰됩니다. 이것이 우울증의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과도한 죄책감과 자기 비난이 두드러질수록 조절 기능의 이상이 함께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들이 꾸준히 보고되고 있습니다.

진료실에서는 충분한 근거가 없어도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으려 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때로는 나와 크게 관련이 없는 외부에서 생긴 사건임에도, 내 탓이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비난하죠. 그렇게 자책이 반복될수록 마음은 점점 더 자신을 향해 날을 세웁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당신의 탓이 아닙니다. 상처 입은 마음에 필요한 것은 스스로에게 던지는 돌이 아니라, 굳게 쥔 돌을 내려놓게 해 줄 따뜻한 위로일지도 모릅니다.


참고문헌
Self-blame–Selective Hyperconnectivity Between Anterior Temporal and Subgenual Cortices and Prediction of Recurrent Depressive Episodes. JAMA Psychiatry. 2015. Lythe KE, Moll J, Gethin JA, et al.
Guilt-Selective Functional Disconnection of Anterior Temporal and Subgenual Cortices in Major Depressive Disorder. Archives of General Psychiatry. 2012. Green S, Lambon Ralph MA, Moll J, Deakin JF, Zahn 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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