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건널 수 없는 다리
10-1. 죽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저뿐인가요?
“반복적인 죽음에 대한 생각, 구체적인 계획 없이 반복되는 자살 사고, 또는 자살 시도나 자살 수행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
- DSM-5-TR, 주요우울장애 진단 기준 중
도저히 답이 떠오르지 않는 괴로운 날들이 이어지다 보면, 마음속에 건널 수 없는 다리가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다리만 건너면 고통과 슬픔이 눈앞에서 사라질 것만 같죠. 벼랑 끝에 몰린 마음이 만들어 낸 그 다리의 이름은 바로 자살사고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다리 앞에 홀로 선 순간은 혼자 견딜 때가 아니라 도움을 받아야 할 때라는 점입니다.
진료실에서는 하루에도 여러 번 “죽고 싶다”는 말을 듣습니다. 차라리 그냥 사라지고 싶다는 상상부터 구체적인 계획까지, 이 단어가 가리키는 지점은 사람마다 다르죠. 그래서 그 말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묻고 확인하는 과정을 꼭 거칩니다. 그 과정을 통해 지금 필요한 도움의 크기와 속도를 함께 가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마다 다른 사연으로 다리 앞에 서 있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들이 끝내고 싶은 것은 삶이 아니라 고통이라는 것. 그래서 저는 그 말을 “끝내자”가 아니라 “도와 달라”는 간절한 신호로 듣습니다.
죽음이라는 단어 뒤에는 많은 것이 가려져 있습니다. 우울, 불안, 분노, 죄책감, 절망감 같은 불편한 감정들과,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지만 방법이 보이지 않아 막막한 마음. 누구도 돌봐주지 않았던 상처받은 마음들이 ‘죽음’이라는 생각을 만나 점점 깊이 빠져들기도 하죠. 누군가는 그 생각을 놓으면 더 버티기 어려울 것 같아 차마 놓지 못하기도 합니다. 가족도, 친구도, 때로는 자신마저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해 점점 지쳐 가지만, 그만큼 괴로운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절실하다는 뜻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마음을 혼자 감당하게 두지 않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 깊은 곳에 살고자 하는 마음이 깃들어 있을 수 있다 해도, 자살사고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생각이 구체적인 계획으로 옮겨가거나, 위험이 커졌다고 느껴진다면 지체 없이 전문가와 연결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가능하다면 혼자 있는 시간을 줄이고, 곧바로 도움을 요청하시길 바랍니다.
건널 수 없는 다리 앞에서 망설이는 당신에게. 당신이 끝내고 싶은 것이 삶이 아니라 고통이라면, 도움을 청하는 일은 약함이 아니라 용기입니다. 그 다리 앞에서 멈춰 선 지금, 당신은 이미 중요한 신호를 알아차렸습니다. 혼자서 먼 길을 걸어온 당신에게 도움의 손길이 닿을 수 있길 바랍니다.
위기 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
• 109 자살예방 상담전화
(보건복지부 통합 번호, 24시간)
• 1577-0199 정신건강 위기상담전화
(가까운 정신건강복지센터로 연결, 24시간)
• 1388 청소년 상담전화
(청소년, 보호자 모두 이용 가능, 24시간)
• 112 또는 119 위험하거나 긴급한 상황일 때
참고문헌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2022). 2022. Dilip V. Jeste, Jeffrey A. Lieberman, David Fassler, et alGuidel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