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건널 수 없는 다리
10-2. 스스로를 아프게 하는 사람들
S양은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비밀을 하나 가지고 있었습니다. 더운 여름인데도 팔을 가리기 위해 긴소매 셔츠를 꺼내 입은 모습이, 그 답답한 마음을 말해주는 것만 같았습니다. 언제부터였는지 선명하진 않지만, 우연한 계기로 시작된 스스로를 다치게 하는 행동은 어느새 익숙한 일이 되었고, 숨겨야 한다는 두려움까지 더해졌습니다. S양은 그 마음을 품은 채 진료실을 찾았고, 자해라는 두 글자 뒤에 숨겨져 있던 자신의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진료실에서는 스스로를 아프게 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납니다. 비자살적자해(NSSI)는 자살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면서도, 의도적으로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는 행동을 뜻합니다.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이 모두 자해를 하거나, 자해를 하는 사람들이 모두 우울증인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울과 자해가 함께 나타나는 경우는 적지 않고, 특히 청소년기에는 그 연관성이 더 두드러질 때가 있습니다.
자해에 대한 오해는 상처를 더 깊게 만듭니다. “관심을 받으려는 거야”, “보여주기 식이야” 같은 비난은 상처를 숨기게 하고, 도움의 손길에서 더 멀어지게 하죠. 하지만 그들도 처음부터 이런 행동에 익숙했던 것은 아닙니다. 상처 속에는 저마다 말로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가 몸을 움츠리고 있죠. 그렇다면 그들은 왜, 스스로를 아프게 해야만 했던 걸까요?
제 사무실에는 글을 쓸 때 사용하는 낡은 키보드가 하나 있습니다. 어떤 날은 타자를 쳐도 입력이 잘 되지 않아, 저는 답답한 마음에 키보드를 책상에 탁탁 두드리곤 합니다. 가끔은 키보드가 잠에서 깬 듯 다시 작동하는 것 같아 잠깐 안도하지만, 결국 키보드는 더 고장에 가까워지겠죠. 저는 키보드를 아프게 하고 싶은 게 아니라, 당장 이 답답함을 끝내고 글을 이어가고 싶었을 뿐이었습니다. 모든 경우에 해당하진 않겠지만, 자해도 때로는 비슷한 마음에서 시작되곤 합니다. 나를 다치게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너무 커진 감정을 잠시라도 멈추고 싶어서 말이죠.
실제로 자해는 여러 기능을 가질 수 있습니다.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을 가라앉히거나,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마음을 밖으로 꺼내는 방식이 되기도 하고, 스스로에게 벌을 주어 죄책감을 덜어내려는 시도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익숙해진 누군가에게는 자해가 쉽고 빠른 방법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자해가 잠시 무언가를 덜어주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내가 원하는 것에서 점점 멀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반복되는 자해는 실제 자살시도로 이어지는 것과 같이 더 큰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어, 가볍게 지나쳐서는 안 됩니다.
익숙한 것을 손에서 놓는 일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낸 당신이, 수많은 상처에 가려진 간절했던 마음의 목소리를 조금씩 알아차릴 수 있길 바랍니다. 당신이 원했던 것은 상처가 아니라, 도움의 손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참고문헌
Intra/Interpersonal Functions of Non-Suicidal Self-Injury in Adolescents With Major Depressive Disorder: The Role of Emotion Regulation, Alexithymia, and Childhood Traumas. Psychiatry. 2021. Taş Torun Y, Gul H, Yaylali FH, Gul A.
Relationship Between Facial Emotion Recognition and Non-Suicidal Self Injury in Adolescents With Depression: A Multicenter Cross-Sectional Study From China. Journal of Affective Disorders. 2025. Zhu Y, Ren W, Yang L, et al.
A Meta-Analysis of the Prevalence of Different Functions of Non-Suicidal Self-Injury. Journal of Affective Disorders. 2018. Taylor PJ, Jomar K, Dhingra K, et 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