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라는 허무에 굴복할 것인가

죽음과 사생관

by 이규호

문득 여름양복 상의가 없어질 걸 알았다. 생각해보니 5개월전에 세탁소에 맡긴것이 기억난다. 내 기억은 정확한 것일까? 옷은 그대로 있을까? 일요일 아침부터 세탁소에 전화를 건다. 내일 찾아보겠다고 한다.

곧 교회 갈 시간에 앞서 모니터 앞에 섰다. 오늘은 지각을 말아야 할텐데. 내일은 월요일. 아버지는 일하는게 늘 즐거웠다고 하셨는데. 일이 노동이 될 것인가. 자아실현까지는 아니어도 부담이 아닌 일터가 될 방법은 무엇일까. 우린 직업으로써 그 사람의 정체성을 유추할 수 있다. 무슨 직업이든지 그 안에서의 위치 또한 중요할 것이며..직업이 노동이든 아니든 댓가로 돈을 주어 삶을 꾸려가니 신성까지 언급하기는 뭐해도 나름 중요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사실 어제 쓰고 싶었던 주제는 공자의 사생관이었다. 공자는 익히 '삶도 모르는데 죽음을 어찌 알겠느냐'란 문장으로 유명하다. 괴력난신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 말을 이렇게도 생각해본다. 삶도 벅찬데 죽음까지 생각못한다.

성경에서도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라고 했으니, 오늘이 삶이면 죽음은 아직 내일이다.

그러나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죽음을 기억해서 삶을 좀 더 삶답게 소중히 여기라는 뜻이렷다.

그러나 죽음이 닥치기 까지 죽음을 알지 못한다. 그것은 인식의 한계.

시간은 허무한 것.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삶만큼 절실한 것이 없고, 죽음만큼 심각한 것이 없다.

그러나 티클같은 죽음부터 태산같은 죽음까지..

인생필패! 인간은 누구나 한번은 죽지만, 그러니까 영웅 천재도 모두다 죽지만, 우리는 죽음마져 견뎌내야하기에 그 앞에 일상에서 걱정하는 바는 얼마나 사소할 것인가.

그리고 많은 종교는, 기독교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고 한다.

최소한 육체로써는 소멸해도 영혼이 가야할 곳은 있는 것이다.

삶도 어렵고 죽음도 어려운지 모르지만, 죽음으로 삶에서 탈출하는 지도 모르지만,

삶이 유한하기에 삶이 더 소중하다고도 하지만,

믿음으로 영원을 꿈꾸지만,

지금 당장 기뻐하고 절망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죽음은 삶에 대한 스포일러.

'삶이 진행되는 동안은 삶의 의미를 확정할 수 없기에 죽음은 반드시 필요하다'-파졸리니

'죽어야 할 인간일랑 행복하다고 여기지말라. 삶의 종말을 지나 모든 고통에서 해방되기까지'-오이디푸스

철학과 종교는 죽음과 깊게 관련있다. 삶보다 내세를 말해야 기복신앙에서 벗어날지 모른다.

삶에 대한 의지. 삶이란 기억이 허무할지라도, 삶이 고작 80세를 사는 것이라도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 우리가 삶을 살아가야 할 의지는 어디서 올까.

사마천은 자신이 죽으면 구우일모에 불과하다면 끝까지 살아남아 역사서를 남겼다.

모두가 그런 의지를 가질 순 없어도 그의 의지를 한번쯤 생각해 볼만하다.

삶은 한바탕 꿈같으니 무엇하러 수고롭게 하리란 고전의 문장도 기억나지만, 성경에서 우리가 갈 곳은 일도 없으니 살아있는 동안 열심히 일하라고 했다.

파스칼은 인간이 죽으면서도 자신의 죽는 다는 것을 인식할 땐 우주보다도 위대하다고 했다. 이제 인간이 ai한테 일자리를 빼앗길지 모르나, ai는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인식할까?

인간은 분명 능력면에서는 보잘것 없을지라도 파스칼의 말처럼 우주보다 위대하듯이, ai보다도 위대할 것이다. 그것이 파스칼 식으로 생각하는 갈대, 즉 죽으면서도 스스로 자각하는 존재이든, 영혼을 지닌 존재라서든 말이다.

특이점이 있는 시대라고는 하나, 어째든 우린 태어나서 일해야 하고, 언젠가는 다들 죽을 것이다.(믿음의 문제는 또다른 영역이니까.)

keyword
이전 24화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