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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필년 May 22. 2021

에디터와 기획자가 일평생 갈고닦는 능력 4가지 (1)

알려지지 않은 에디터의 눈물과 창작하는 삶 -2-

자! 지금까지 4년제 대학을 나와 상식적인 범위 안에서 채용되는 에디터 직무를 살펴봤어요. 그러면 이제 저런 일을 하려면, 학교다닐 때 어떤 노력을 해야 취업에 유리한지, 일하면 실제로 어떤 능력이 필요한지 얘기해봐야겠죠.


여기서 정말정말 강조하지만, 에디터는 크리에이터적인 성향이 강한 직업이예요. 이건 바꿔말하면 학점이나 토익같은 기성스펙보다는 당장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내는 '쇼잉SHOW-ING'할 수 있는 작업물이 더 중요하다는 건데요. 물론 학점이나 토익이 높아서 나쁠 건 없습니다. 하지만 그게 여러분이 취업하게 될 결정적인 이유는 아닙니다. 여러분이 시간을 쏟아 열심히 만든 모든 흔적과 작업물이 여러분을 새로운 앞날로 인도할 겁니다. 저는 그런 점이 평생 편집하는 사람이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조금 많이 부끄러운 이야기긴 한데, 제가 졸업할 때 학점이 어학점수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4.5만점에 2.9...이 스코어 받으려면 A부터 F까지 정말 골고루 수집해야 해요. 실제로 저는 D를 갖고 졸업했어요. 그런데 D를 받은 수업이 제가 인생에서 제일 값진 수업이었다고 생각해요. 매일 아침 쪽지시험을 보던 고전수필수업에서 가장 큰 가르침을 얻었다는 게 학점의 아이러니. 저는 고전수필 공부하면서 옛날 사람들의 컨셉형 글쓰기 방식이나 말투만큼은 학점과 상관없이 잘 배웠다고 생각하는데요. 제가 써보고 싶었던 창작물에 제가 영향을 받은 수업의 방법론을 적용시켜서 열심히 습작을 해봤었어요. 





그렇게 쓴 글이 학보에 실리기도 하고... 그런 경험과 작업물이 쌓이고 쌓여 제가 돈받고 글쓰는 데 다 연결되고 있습니다. 특히 모든 경험이나 작업물은 개인성장이나 잠재력해방에 기여한다고 생각해요. 말이 나온 김에 에디터적인 삶을 꾸려나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자질, 저는 정말로 그렇게 믿고 있는 4가지 능력에 대해 말해보죠. 




시선, 통찰력, 지적 호기심, 취향


이 네가지를 단련하고 이 네가지가 남들보다 우월하고 특장점을 드러낼 수 있다면 여러분은 정말로 에디터가 될 수 있습니다. 언제든 에디터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네가지는 딱히 에디터가 아니더라도, 여러분이 유튜버나 기획자 같은 직업을 택한다고 해도 반드시 필요한 자질이라고 생각해주세요. 창작하는 삶을 꾸준히 잘하려면 평생 공부하고 평생 갈고 닦아야 하는 재능입니다.


그리고 저 네가지는 20대 초중반이 가장 무럭무럭 성장하기 좋은 시기입니다. 먼저 '시선'과 '취향'에 대해 말할 게요. 두가지를 기르면 보통 통찰력과 지적 호기심은 알아서 따라오거든요.


먼저 '시선'. 제가 시선이라고 말하는 것은 종합적인 판단능력을 뜻합니다. 하나의 대상을 놓고 개인이 제출하는 해석. 다양한 해석을 가능케 하는 유연한 해석가능성을 말합니다. 제 생각에는 특정 환경에 놓여야 각성하는 능력인데요. 결국 살면서 감각을 예리하게 갈고 닦아야 터득하는 특별한 인식능력라고 해야 할 거 같네요. 이 만화 <나루토>를 예로 들어볼까요. 우치하 사스케는 사륜안 덕분에 나루토가 못보는 걸 볼 수 있어요. 만화를 따라가다보면 사륜안도 단계별로 클래스가 올라가버리죠. 볼 수 있는 것도 더 깊고 많아지죠. 눈깔만화라고 비웃음 당하기도 하지만, 우리 현실에서도 그럭저럭 원리는 비슷하게 돌아갑니다. 단, 만화처럼 유전으로 물려받는 능력이라기보다, 개인의 노력과 환경적응에 따라 터득가능한 후천적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누구나 열심히 단련하면 얻어낼 수 있는 재능입니다.같은 대상을 바라보더라도 해석할 수 있는 맥락을 여럿 쥐고 있으면, 여러분은 그 자체로 창의성이 올라가버립니다. 남들이 못하는 걸 해내고, 남들이 못보는 걸 나는 더 잘 보게 될 때, 사람이 성장하게 됩니다.

시선은 보통 나와 정반대에서 자란 사람과의 관계맺기나 단 한번도 처해보지 못했던 상황에서 진심으로 그것을 이해하려 애쓸 때 각성하게 되는 거 같아요. 저의 경우에는 여대학점교류 때 그랬는데요. 한학기 동안 다녀보면서 같은 국문과여도 우리학교랑 숙명여대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내가 여기서 교수님이나 학생들이랑 자연스럽게 지내려면 어떻게 처신해야할지 고민하는 시간을 보내면서 제게 그간 없었던 감각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여대라는 고정관념을 걷어내고 직접 다녀봐야 알 수 있는 디테일들이 또래 친구들을 정확하게 바라보게 만든겁니다.

사회생활 시작하고나서는 서촌에 보안여관이라는 갤러리에서 열린 야외캠핑행사에 참여했던 게 제일 기억에 많이 나네요. 미술관 한복판에서 대기업 출신 푸드 컨설턴트 분이 주최하는 행사였어요. 참여비는 꽤 셌지만, 후회없는 하루, 특별한 감각으로 충만했던 기억이 납니다. 평생 한번도 먹지 못한 캠핑요리를 이런저런 설명과 함께 만들주시던 게 아직까지 기억나네요. 우연히 합석한 푸드 스타일리스트...유명 매거진 에디터...현대미술작가...등등등 평소에 만날 접점이 없는 사람들과 맛있는 거 먹으며 다양한 얘기를 나눴는데, 거기에 낀 제 존재 자체가 이질적이여서 여운이 오래가는 행사였었죠. 당시 느꼈던 마음을 잘 기록해뒀고. 저는 당시에 업계 선배들이 밥상머리에서 보여주신 태도나 세계관 같은 걸 제 몸에 통과시켰던 거 같아요. "자기 분야에서 업력이 쌓인 사람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저런식으로 나아가는구나" 라는 어림짐작에 그칠 뿐이지만, 거기서 느낀 감흥은 제가 진로방향을 조정하는데 중요한 레퍼런스가 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잘 응용해서 제 직업에 응용하고 있어요.


여러분도 마찬가지예요. 여러분이 지금 1~2학년이면 점수를 따기 위한 공부에 너무 얽메이지 마세요. 휴학도 두려워하지 마세요. 오직 시선을 틔우기 위한 공부를 많이 하시길 바래요. 제가 말하는 시선공부는 보통 덕질에서 출발합니다. 내 직관이 거기에 유익한 뭔가가 있을 거라 말해주는 분야의 덕질을 말하는 거죠. 소설을 좋아하세요? 있는 힘껏 파세요. 대신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보세요. 내가 막연하게 좋아한다 믿었던 작가의 작품이 영 아니다 싶은 점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하면, 잘 성장하고 있는 겁니다.

이거는 여러분이 국문학 전공이라서 특별히 권장하는 팁인데요. 문학 텍스트 취향기르기와 트렌드 캐치를 동시에 하고 싶다면 <문학동네><자음과모음>같은 문예지 하나 추려서 10년치 최신간을 정주행하는 걸 추천드려요. 이걸 절대 다 읽으란 말은 아니구요. 목차를 추려서 여러분이 읽고싶은 걸 멋대로 읽으세요. 한 계절 내내 푹 빠져있으면 됩니다. 


특히 여러분 등록금 낸 걸로 교보문고 스콜라같은 데이터베이스에 무료이용이 되는 건데, 거기에 여러분이 좋아하는 작가의 최신간이나 사회이슈 정리하는 명글이 잔뜩있어요. 거기서 나름 안목을 발휘해 읽을 거리를 추려내고, 나름대로의 감흥을 정리하는 시간은 분명 만만치 않아요. 저는 군휴학 할 때 시도했던 거 같은데, 그 때 기른 문학적 주관이 제 나름대로 콘텐츠를 선별하고 구분짓는 시선으로 자리잡게 됐네요. 지금 일하는데도 큰힘이 되는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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