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는 무당 내지는 영매라고 할 수 있겠다. 자신이 되고자 하는 대상을 정하면, 흉내내기를 시작하고 결국 되고자 하는 존재를 이승 어딘가에 끄집어내고 만다.
소설가와 마찬가지로, 본인의 정체성을 초월할 수 있는 독특한 직업인 셈이다. 물론 소설가는 허구와 세계관을 스스로 창조해내야 하고, 에디터는 주어진 정보 안에서만 움직일 수 있다는 점에서 소설가 판정승.
구로사와 아키라 / 라쇼몬(1950)
살해당한 무사의 원혼을 몸에 받아들여 분한 마음을 힘주어 말하는 무당처럼. 사물이나 사람에게 깃든 어떤 감정이나 생각을 당사자 없이도, 어쩌면 당사자보다 더 뛰어난 호소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매직 터치magic touch'가 있으면 당사자보다 더 진정성 있는 호소력을 담아 말하고자 하는 바를 남에게 전달할 수 있다.
자신이 아닌 것이 되려고 마음먹었을 때, 그것을 능히 해낼 수 있는 에디터는 훌륭한 에디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소설가도 하늘이 내린 소설가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브랜드 에이전시에서 글만 전담하는 일을 맡게 된 나는 몹시 흥미로운 파트너를 만났다. 국내외 양품잡화를 취급하는 종합상사의 말을 다림질하게 된 것이다. 좋은 물건에 담긴 사연을 귀담아듣고, 불필요한 정보를 걸러내 사람들이 물건의 쓰임새를 잘 이해하도록 돕게 된 것이다.
매달 귀한 월급 타다 쓸 수 있게 해 주시는 창조주, 광고대행사의 하나님이신 클라이언트의 이름을 내가 믿사오며, 도심 한복판에 우뚝 솟은 종합상사의 물류유통력이 온라인 마케팅에 이르렀으니. 명품을 팔라면 팔고, 북유럽 가구를 팔라면 얼마든지 팔겠사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에디토리얼 컬럼 작성이다. 주어진 자료를 토대로, 사람들이 그럭저럭 읽어봄직한 줄글을 편집하는 것이다.
국내외 수입잡화를 소개하는 에디토리얼 컬럼이 쓸모있었는지 아닌지 판단하는 기준도 명확하다. 얼마나 독자들이 글을 오래 읽었는가? 배포한 글의 쓸모는 독자대중이 뒤로가기를 누르지 않는 시간만큼 높아지는 것이다. 지금보다 사람들이 콘텐츠 플랫폼에 더 오랜 시간 머무르게 만들어야 하며, 플랫폼에 더 오랜 시간 체류하면 나는 급여를 더 올릴 수 있다.어쩌다 아티클을 읽은 독자가 다음 글이 궁금해 읽을 수 있게끔 판을 짜야한다. 판에 들어간 독자가 즐길 놀잇감을 만들어야 한다.
좋은 에디터는 무엇일까? 어떤 에디터가 되려고 애써야 할까? 좋은 에디터에 대한 기준은 에디터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커머셜 에디터는 자신의 주관적인 취향을 텅 비우고, 의뢰인에게 접신을 해야한다.
무당인 내가 바라보는 정경은 의뢰인의 시선이다. 접신이 끝나면, 의뢰인의 입장은 그간 수많은 의뢰인의 입장을 통과시킨 에디터로서의 나와 융화되기 시작한다. 그러면 더 많은 상상력을 품고, 취급하는 물건을 욕망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낼 수 있다.
그러면서 나는 세상을 더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바라볼 수 있고, 더 자유로운 발상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 더 많은 세계와 연결되는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가보지 못한 곳에도 다녀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