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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필년 Nov 07. 2017

자기소개서에 대하여

모든 자소서에는 한 인간이 획득한 오리지널리티가 깃들어 있다.

학사졸업도 못하고 허우적대는 백면서생도 가끔은 쓸모가 있는데, 그건 바로 자소서 피드백이다. 왜 하필 취업도 못하고 있는 나인지는 모르겠으나, 유독 나한테 자소서 피드백이 많이 들어온다. 한 때 "국문과라는 꼬리표 덕분에 얻는 단순한 고정관념인가?"라 여기기도 했지만, 국문과 출신 친구들의 자소서까지 보고 있으니 정확한 인과관계는 아니리. 자소서는 필력을 뽐내는 게 아니라 정형화 된 양식에 썰을 밀어넣는 작업이라. 문학이라기보다 편집에 가깝다. 사실 내 재능은 문학적 필력보다는 기술적 편집에 있으니 다들 잘 보고 찾아오셨수다.

기본적으로 내가 자소서라는 양식을 오래 전부터 써내려왔고, 스무살 후로 온갖 종류의 알바인턴에 지원하며, 자연스레 자기소개서에서 물어보는 주류질문을 터득하게 됐다. 결국 다른 사람한테 인정받기 위한 글쓰기를 줄곧 해왔다는 거다. 독하게 바꿔 말하자면, "어찌 해야 프로-관종이 되는가?"만 열심히 탐구해온 셈이다. 이런 이력이 주변 지인들에게 스멀스멀 스며든 탓도 무시 못한다.


음~ 난 이런 가벼운 위악爲惡에서 곧바로 이어지는 담백한 본론이 좋아. 내 스타일이야 오홍홍



글 전체를 작문하는 게 아니니, 자소서 피드백은 생각보다 정신소모가 적다. 오히려 수동형 문장을 능동형으로 바꾼다거나, 시제를 일치시킨다거나 모호한 비유나 단어를 정확한 어휘로 바꿔넣는 일은 사실 텍스트중독자들이 푹 빠지고 마는 유희가 된다. 케이크에 데코레이션을 하는 일과 비슷하달까? 원래 아름다움을 위한 놀이란 쉽게 질리지 않는 법이니까.

해서 나는 요즘 시간날때마다 스스로의 취업 자소서를 정리하고 있지만, 이번 주도 어느 고3학생의 입시자소서를 봐주고 있다. 작년에도 했고 올해도 한다. 지난 달엔 컨텐츠창작레지던스 응모를 희망하는 친구의 자소서 설계를 도왔다. 나는 일단 사연을 접수하고, 내가 배우고 익힌 바를 토대로 맞춤형 피드백을 해주는 편인데 다들 동공이 크게 열렸으리라 짐작된다. 글쎄요. 나는 여러분이 전전긍긍했던 문장을 토대로 전혀 몰랐던 여러분의 모습을 발견하느라 동공이 작아질 틈이 없다 없어 ~_~

다들 자소서를 어려워 한다. 본인 자소서는 순 뻥이요, 억지로 지어낸 소설이라며  다들 쓴미소를 짓는다. 나는 여기에 절반만 동의하겠다. 다들 삶을 조각내며 간직해서 그렇지, 컨셉과 테마를 잡아 하나로 이어붙이면 누구나 훌륭한 자기소개를 할 수 있다.나는 여러분 곁에서 조각난 삶을 하나씩 엮을 수 있도록 돕는다. 모든 자소서에는 한 인간이 획득한 오리지널리티가 깃들어 있다. 나는 그런 고유함을 증폭시키는 작업에서 무엇과도 바꾸기 힘든 기쁨을 맛본다.


p.s 이렇게 떠들어 놓고 꿀팁 하나 적지 않으면 다들 몹시 서운하실 듯하여 짧게 남겨본다. 이 이상은 영업비밀이라...20000...돈 받고 컨설팅해야할까부다 호홓




<자소서 쓰다 너무 안써져서 답답할 때  슬럼프를 탈출하는 비결>

1. 첫 문장에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을  일단 다 꾸겨 넣어보세요.


살다 보면 이런 저런 어려움도 있고 그렇지만 사람은 그런 것을 극복해 나가는 열정이 어디에서 생기느냐면 이런 보람 '나라가, 지역이 발전해 나가는 한 걸음을 내딛었구나' 그런데서 어떤 일이 있어도 참 기쁘게 힘을 갖고 나아가는 에너지를 얻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서부터 여러분들이 조금이라도 뭔가 상처를 위로 받을 수 있다, 그것은 제가, 분명히 알겠습니다.

->수인번호 503이 생각나는 수치스런 아무말 대잔치여도 좋으니/ 의식의 흐름을 무시하지 말아줘!

2. 당신이 쓴 첫 문장(내지는 첫문단)이 분명 펄펄 끓는 뚝배기의 계란찜처럼 넘쳐 흐를테니, 쫄지 말고 문장을 계속 쪼갭니다. 주어 +서술어, 그리고 온점. "철수는 영희를 만났습니다. 안녕 영희야? 안녕 철수야? 너 밥은 먹었니?" 수준으로 쪼개봅니다.

->회 쳐놓은 문장 중에서 답변을 효과적으로 요약하는 강력한 한 문장을 낚아 올립니다. 마치 기사제목 카피처럼 생겨먹은 놈을 건지세요.

3. 냉수 한사발 마시고 쪼개진 문장을 재배열합니다. 가장 무난한 건 시간을 따라가는 배열. 썰(성장배경 지원동기)을 풀어야 한다면 기-승-전-결. 똑똑해 보여야 하는 문항이면 원인-결과를 설계하며 배열합니다. 

-> 자소서에 적히는 내용이 사실 다들 비슷비슷해. 그러면 차이에서 비롯되는 디테일이 매력을 좌우하는 것. '배열'만 잘해도 당신 자소서는 흠뻑(?) 뗶띠해질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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