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중요한 건 '나'에게 소중한 일이 뭔지 아는 것이었다.
16학번이 새내기가 된다는데 10학번이 졸업을 못 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동기 선후배가 학사모를 머리 위로 던질 무렵, 나는 휴학 서류에 확인 도장을 꾹 눌러 찍었다. 인생은 어쩜 이리 삐걱대며 나아갈까? 다들 화살처럼 날아가는데, 나는 홀로 휘청대는 주정뱅이 같다. 지난 시간을 곱씹어보면 흥청망청 쓴 돈보다 어영부영 흘린 시간이 더 아쉬워진다.
나는 남들보다 느렸다. 재수해서 대학에 들어왔고, 휴학과 복학을 거듭했다.학교 다닐 돈이 모자라서, 군대갈 준비하다 떨어져서…. 뭔가를 자꾸만 미뤄야 하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부모님은 이런 내게 너그러우시다. 이따금 “우리 아들은 뭘 해도 남들보다 늦어질꼬” 라며 한숨을 쉬시면 뭐라 드릴 말씀이 없다. 사실이니까. 지금까지 보낸 시간과 그로 인한 현실은 내 의지로 선택한 결과이니 불만은 없다. 하지만 불안하지 않다면 거짓이다. 어느덧 내 나이는 스물일곱, 어느새 부모님은 아프기 쉬운 나이에 접어들었고, 우리 집 가계부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느리게 산다. 글로 사람을 그려내는 일을 더 잘하기 위해서다. 좋아하면서 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믿기에 몰두할 따름이다. 요즘엔 나만 쓸 수 있는 ‘글’, 나만 할 수 있는 ‘말’을 가다듬는 데 노력을 쏟고 있다. 묵묵히 무언가를 읽고 쓰고 기록하는 일에 매진 한다. 서투를지언정 또박또박.
쉽게 그만두는 편이었던 나는, 언젠가부터 학생기자 활동에 열심이었다. 수십 군데를 돌아 다니며 수백 명의 사람을 만났다. 처음엔 실수도 많았지만, 하면 할수록 더 나아지는 기쁨을 맛봤다. 몇 개는 커뮤니티 곳곳을 떠돌아 여러 사람의 입에 올랐다. 누구보다 나를 걱정했던 부모님은 든든한 조력자가 됐고, 지금까지 쌓아 올린 순간들이 지금의 나를 지탱하고 있다.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에 열심인 게 비효율적이더라도, 틀린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입시와 취업에 있어, ‘싫어도 해야만 하는 일’을 경쟁과 스펙이란 명목으로 순순히 따라왔다. 그것이야말로 ‘효율적’이며 남부끄럽지 않은 직장에 들어가 행복한 삶으로 이끄는 미덕이라 여겼는데, 정작 중요한 건‘나’에게 소중한 일이 뭔지 아는 것이었다.
한동안 고요히 지내며 비슷한 하루를 거듭 반복하던 3월, 두 친구가 나를 찾아왔다. 고등학교 때 친하게 지냈던 이과생과 문과생, 제때 취업한 공대생과 교대생. 대졸 최고 연봉 기업에 다니는 연구원과 정년이 보장된 초등교사가 ‘문송합니다’의 선두 주자를 달리던 나를 찾아 온것이다. 너네보다 한참 느리게 살고 있는 나를? 대체 왜?
“일찌감치 좋은 데 취업해봤자, 별 것 없더라. 나 없이도 직장은 잘 돌아가거든.
이젠 나를 알 고 싶어.
나도 너처럼 내가 좋아하는 일이 뭔지, 나만 잘하는 건 뭔지 찾아볼 거야. 같이하자!”
그래서 우리는 요즘 부쩍 자주 만나, 신나게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후진 없는 직진만 권하는 세상이지만, 나 자신을 알기 위해서라면 나선형으로 돌고 도는 삶도 괜찮다. 남들처럼 빠르게 내달릴 수 없다면 적어도 씩씩하게 걸어보려 한다. 느릴지언정 뚜벅뚜벅. 그래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