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절 당신은 누구길래 굳이 내 앞에 나타나, 하필 저를 가르치시나이까
만약 정말로 전생의 업으로 현재의 인연이 맺어진다면, 으뜸은 '부모와 자식'사이일 것이다.
그렇다면 버금은 무엇인가? 나는 두가지를 꼽는데 하나는 '내짝꿍 내연인' 둘은 '스승과 제자'다.
"군대가기 전에 오라고 했는데 안 오고!! 죽었어 너!!(꿀밤)" "아~쌤! 그래도 저는 직접 찾아뵙잖아요.ㅠㅜ " "(웃음)그건 인정!"
여러분의 삶에 있어 '스승'이라 부르고 싶은 사람이 몇이나 있는지 모르겠다.적어도 '한 명 이상'은 있었으면 좋겠다.누군가 스승을 '먼저(先)' '태어났기에(生)' 오지랖을 부리는 사람이라 여긴다면, 나는 그 사람을 평생 딱하게 여기고 말 것이다.
"대관절 당신은 누구길래 굳이 내 앞에 나타나 하필 저를 가르친단 말입니까?" 아~~ 이거... 보통 인연이라면 불가능하겠지요.
삶의 길목마다 좋은 스승을 만났다고 생각한다. 나는 비교적 선생님에게 말을 더 많이 붙이는 아이였던 걸로 기억한다. 아니면 말을 많이 붙일 수 밖에 없게 사고를 치든지... 여섯살 유치원 선생님부터 대학교 지도교수님까지, 적어도 담임선생님에 대해 말해보라고 한다면, 지금도 각각에 얽힌 사연을 막힘없이 풀어낼 만치 선명하게 떠올린다.
그렇기에 학업을 마치고도 꼬박 연락을 드리는 선생님이 세 분이 계신데, 언젠가 결혼이라도 한다면 대체 어느 분에게 주례를 부탁드려야 할까? 스승과 꾸준히 쌓아온 인연은 분명 내 인생의 큰 복이다.
어느 겨울, 삼둥이가 사는 송도신도시로 가 은사님을 찾아뵙는다. 한 시간 남짓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많은 장면이 머리를 스친다. 스산한 바람이 창가에 몰아치는 새벽, 모처럼 각잡고 차분하게 써내려간다.
"쌤! 같은 학원을 8년이나 다닌 건 저밖에 없을거에요. "
내가 살던 아파트 상가 2층에는 '바를 正'에 '가르칠 訓'이라 적힌 학원이 있었다. 그 곳엔 검은 뿔테를 쓴 남선생님과 빨간테 안경을 쓴 여선생님이 있었고, 여선생님은 나와 어머니를 학습서가 무더기로 쌓인 허름한 상담실로 안내했다. 방에는 원형탁자가 있었고 거기엔 백지노트와 볼펜이 올려져있었다. 자세한 대화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머니는 내 학습수준과 성격을 털어놨을 것이다. 얘기를 들으며 끊임없이 볼펜으로 어머니의 말을 받아적던 선생님의 손길만큼은 또렷하게 기억한다. 똑같은 걸 봤던걸까? 어머니는 젊은 선생을 믿는 눈치였다.
그러고 다음 날 부터 학원에 나가기 시작했다. 또래 어머니들끼리 짜기라도 했는지, 동네친구들 모두 '정훈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당시 "'정훈학원'은 선생이 어리긴 해도 학생을 성실하게 지도한다."는 입소문이 났다고 한다. 동네친구들이 모두 함께 했기에 큰 무리없이 적응했지만, 초4부터 고2. 방과후 8년. 내 사춘기의 전부를 이 학원에서 보낼거라곤 당시에는 알 길이 없었다.
학원에 데려가면서 어머니는 "열살이 넘으면 학교공부만으로는 모자라니, 슬슬 보습학원을 다녀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사실이 그랬다. 우리 세대는 6교시만 넘기면 오후 두시부터 마음껏 놀러다닐 수 있었고, 당시엔 어딜가나 또래 친구들이 밖에 나와있는지라 동네를 누비다보면 공부는 저절로 뒷전이었다. '눈높이' 숙제 보다 친구랑 '슈퍼껨보이'로 오락하는 게 즐거웠던 내 유년시절.
그래도 책읽기를 좋아해 국어와 사회는 쓸만했지만, 수학은 세자리수 연산부터 영~부실했고, 영어는 발음규칙도 몰라 보이는대로 읽는 문맹이었다. 어머니의 선택은 옳았다. 나이가 두자리수가 넘으면 진득하니 앉아 집중하는 습관을 붙여야한다. 그렇게 만난 스승님은 나의 '8년 담임선생님'이다. 길어야 담임 2년인데, 자그만치 8년이다. 학원이름이 '정훈학원'이니, '정훈선생님'이라 호명해보자.
'정훈선생님'은 내 지성과 인성이 싹틀 무렵부터 나를 지켜봐왔고, 자라나는 과정을 거듭 가지치기 해준 오랜 담임. 내 모든 생각과 감정은 선생님 손바닥 위에 있었고, 우리집 숟가락이 몇개인지 훤히 꿰고 있을만치 어머니와도 긴밀했다. 8년 넘게 같은 학원을 다니면서 아쉬운 건 분명 있지만...
중3무렵, 집이 경매에 넘어가 학원비는 왕창 밀리고 더 이상 학원을 보낼 처지가 아니라고 어머니가 학원에 찾아왔을 때, 정훈선생님이 "어머니! 돈 신경쓰지 말고 그냥 보내세요. 지금 그만두면, 애 삐뚤어집니다. 그렇게 안되게끔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라 말했다는 썰을 어머니로부터 전해들은 건, 그로 부터 10년 뒤의 일이다.
돈과 성적향상만이 친목의 잣대인 학원사제관계를 고려하면 퍽 독특한 상황. 보통 애정이 아니면 이렇게 가르치기 힘들다. 고2때, 더 이상 다니는 건 의미없겠다 싶어 그만 두겠다 말씀드리니 선뜻 "이제 하산하여라! 가끔 놀러와~"라고 웃으며 보내준 정훈선생님.
이제는 여쭐 수 있다.
"왜 그러셨어요?"
"넌 똑똑한 건 아닌데 그렇다고 멍청하진 않아. 그리고 착했지. 남들보다 느려서 그렇지 막상 손에 익으면 잘 한단 말이야. 손이 많이가지만 일단 바닥으로 끌어 내리고 다그치면 잘해. 그리고 어렸을 땐 시건방을 많이 떨었지, 안 그래?(웃음)이 때 내가 잡아줘서 사람 된거야 너!"
리얼팩트 반박불가.
정훈선생님은 덧붙인다.
"너 대학가서 바닥부터 이리저리 휩쓸고 다니는 거 난 좋아. 원장선생님도 그랬어. 별에 별걸 다하면서 고생 많이했는데, 내가 옛날에 거기에 반했잖아. 너도 그래. 넌 옛날부터 그렇게 바닥부터 올라왔잖아. 처음엔 서툴러도 결국 해냈지. 난 그게 보기 좋다!"
"잘하고 있어!"
"사실 예전에 선생님이 가르치셨던 것보다 회초리 맞으며 혼난 게 더 기억에 남아요."
학원은 젊은부부 둘이 꾸려나갔다. 다시 생각하면 두 선생님은 말도안되는 멀티플레이어였는데, 두 분이 가르치는 범위는 초2부터 고2까지였기 때문이다. 남선생님이 '원장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수학/과학/사회를 가르쳤다. '정훈선생님'은 '영어선생님'이라는 호칭이었지만 국어도 가르쳤다. 수업은 한 시간, 학년별 방과후 시간에 맞춰 동갑내기 끼리 묶여 진행됐다. '정훈학원'의 수업 내용은 학교진도에 맞춘 보습. 그리고 나이에 걸맞는 영어지식 교정 및 전수. 여기까진 다른 학원과 별반 다를 게 없다.
허나 정훈학원의 오리지널리티는 바로 특유의 '쌍팔년도 식 훈육'에 있었다. 특히 영어가 그러했는데 , 매일 할당되는 단어&숙어 암기. 미수행&저성적이면 '사랑의 매'를 적극 활용. 만점통과 때까지 나머지공부. 지금 생각하면 선생님 두분 모두 8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90년대 학번이라 그런가 싶다.
나는 매해 학원 최다 회초리질과 최장 나머지공부 기록을 달성했다. 이런 빡센 훈육방식이 몸이 괴로워서 그렇지 기억은 오래간다. 지금도 누가 옆구리 쿡 찌르면서 내게 "투~투~"라 속삭이면 "너무 ~~해서 ~~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바로 외칠 것이다.
시간은 거듭 쌓여, 영어는 기초를 어느정도 다졌고, 이는 중고등학교에서 이어진 지옥불반도식 영어에 탁월한 효과를 발휘했다. 요즘엔 '자기주도식 학습'으로 바꾸셨다고 한다. 요즘 세상에 매질은 꿈도 못꾸거니와, 요즘 애들은 매 맞을 근성도 없다며 회초리를 봉인하셨다는데... 재밌는 건 지금 정훈선생님을 찾아오는 제자는 '호되게 매질하던 제자'란 사실.
벌써 시간이 많이 흘렀다. 강산이 바뀌고 월드컵은 대륙을 세번 돌았다.
스승과 제자는 이제 '때린 사람은 울고, 맞은 사람도 같이 얼싸안고 울던 빈 강의실'을 함께 웃으며 추억한다.
8년이나 함께 하다보면 스승님 이야기도 많이 주워담게 되는지라 자연스럽게 선생님 인생사를 익히게 된다.
특히 '정훈선생님'은 삶 자체가 입지전(立志傳)이다.
자식 많은 직업군인의 장녀로 태어나, 이악물고 대학에 들어가 제 힘으로 공부하다, 대학시절 원장선생님을 만났고, 일찍 결혼했다. 가진 거라곤 대학에서 빨아들인 먹물밖에 없는 사람들이라 부부는 인천까지 흘러내려와 학원을 차린다. 잠 잘 시간까지 아껴가며 학원을 운영한 끝에, 학원 옆 셋방 살던 부부는 차를 사고, 방을 넓히고, 아이를 낳고, 집을 사고, 동네에서 제일 이름난 학원을 꾸리는데 성공한다. 부부는 운영하던 학원을 다른 이에게 넘기고 '기회의 땅' 송도로 넘어가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새로 차린 학원은 기어이 자리를 잡았고, 요즘 부부는 자신들이 젊은 날 미처 하지 못한 일을 익히는데 힘을 쏟으며 지낸다.
자수성가의 교본같은 분이라 유독 내게 애틋해 하시는지도 모르겠다. 자수성가가 가장 필요한 제자이기 때문에...
이번 만남엔 유독 선생님과 옛날 학원 다닐 시절 얘기를 많이했다.
잠시 여백을 두는 침묵. 선생님은 아련한 표정으로 탄식한다.
"너가 벌써 스물 여덟이니!? 어휴 우리 이제 같이 늙어가는구나! 아이고"
자수성가를 꿈꾸며 가장 열정적으로 학생을 가르치던 옛시절을 떠올리셨던 건 아니었을런지.
불초 제자는 감히 그렇게 생각해봅니다.
선생님이 못 본 사이 운동에 푹 빠져 계신 모양. 따로 여쭙지 않아도, 보이는 게 딱 그렇다.
40대 후반, 애 둘 낳은 어머니의 몸이라기엔 20대 피트니스 강사와 같은 단련된 육체.
"찾아뵙기 전에 본 선생님 카톡 사진이 보디빌더용 프로필같다." 말씀드리니
"그거 진짜 맘먹고 운동한 다음에 찍은거야. 내년에는 진짜 보디빌더 대회를 나갈까 진지하게 고민중!"
이라 하신다.
어지간한 젊은 사람보다 젊게 사시는 모습에 불초제자는 또 한 번 젊음이 부끄러워졌습니다.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서 시간에 아랑곳 않고 신이나서 강의를 이끌던 이어령 선생님에 이어 두번째군요.
'정훈선생님'은 이어 말씀하신다.
"나는 내가 좋아서 하고 싶은 걸 잘 할거야 앞으로도.
아내로서 엄마로서 하는 역할도 잘 붙잡으면서...
그러면 다른 사람들도 행복해지는걸!"
참으로 한결 같으시다. 수업 끝내고 찾아드는 쉬는 시간 10 분에 5분 쪼개더니, 사소한 5분이라도 부지런히 소설책을 탐독하던 10년전이랑 하나도 달라지지 않으셨구나. (선생님은 당시에 영미권 소설에 심취해 계셨다.)
'좋아서 하는 일을 잘 하는 것.'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만화책에서 혹은 TV에서 본 청춘영화에서 보고
좌우명으로 삼았다 생각했는데 어쩌면 아니었을지도 몰라.
사실은 나와 십여년을 함께 한 스승님의 '정수'였던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