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버린 옛사랑도, 비겁한 폰팔이도 너그럽게 안아주는 비결.
나는 임시직 고등학교 과학실 직원이기 때문에, 공무원과 함께 일하고 있다.
공무원. 세간에서는 무사태평하다 여겨지는 안정직업군에 속하지만, 옆에서 쭈욱 지켜본 결과 공무원은 전혀 무사태평하지 않으며 일하는 사람들의 멘탈은 매일매일 요란스럽다. 만약 당신 곁에 있는 공무원이 존나 편해보이면 직장에서 해야할 일을 몹시 느슨히 처리하거나, 승진욕심 없는 사람으로 간주하면 된다. 오히려 공무원만큼 사나운 생태계도 드물지 않을까.
회사는 사사로운 이득을 물고 늘어지는 집단이라, 집단 구성원간의 입장이 충돌하더라도 수익증진을 위해 결국 서로 협조할 수 밖에 없다. 변증법적인 발전이 가능하다. 반면 공무원조직은 기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면 그만이다. 퀄리티 향상보다는 하던대로 처리하는 것이,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는 것보다 관성으로 움직이는 게 합리적이다.
학교 또한 공무원집단이지만, 재밌게도 교사는 일반 회사원 같은 마인드로 근무해야한다. 전반적인 추세가 그렇다. 다들 너무나 잘 알다시피 공교육의 신뢰도는 바닥을 기고 있어 조직 자체의 시스템 개선의지가 워낙 뚜렷하다. 더군다나 요즘엔 4차산업혁명이니 뭐니해서 교사들 자체가 새로운 시대를 준비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상황은 내 생각에 학벌지상주의 때문에 빚어지는 공교육트렌드와는 무관하다.)
학교 바깥 사람들은 잘 모르는 사실이기도 한데... 요즘 선생님들 무진장 바쁘다. 교사는 수업이 없으면 온갖 공문서처리와 주중에 1회 이상 회의를 하고, 각자 모둠을 꾸려 워크샵을 하고 있다. 다 같이 책을 읽어 소감을 나누거나, 초빙강사의 특강을 듣는다. (필자가 중고등학생 때...교무실 들어가면 몇몇 교사가 수업없는 시간에 안대차고 의자에 몸을 기대 자고 있는 풍경...좀 처럼 보기 힘들어졌지.)
이제 여기서 한발짝 더 나가는 교사는 뭔가 열심히 일을 벌인다. 추경예산을 따와서 학생들을 위한 여러가지 활동을 기획하고 집행하게 되는데...
이제 여기서 교사와 행정직원이 충돌한다.
지구과학실 천장에 있는 전기콘센트 콘솔이 망가졌다. 전원을 키고 버튼을 누르면 전기콘센트가 빙글빙글 회전하며 내려온다. 버튼을 거꾸로 돌리면 다시 빙글빙글 돌며 천장 안에 쏙 들어가는 하이-테크(?) 기기.
기말고사가 끝나고 방과후 자율동아리 활동이 한창인데, 자율동아리 아이들은 노트복을 쓰기 때문에 전기콘센트가 고장나면 교사나 학생이나 꽤 곤란한 처지에 놓인다.
과학실 조교인 나는 고장을 확인하자마자 수리기사를 불렀고, 수리기사는 며칠이 지나 금요일 오후에 학교에 도착해 수리를 시작했다. 수리불가판정이 떴다. 여기서부턴 내 권한 바깥의 문제고, 상급담당자인 과학실 쌤이 행정실에 전화로 신속한 수리요청을 했는데, 행정실 직원은 절차와 견적내기를 강조하느라 십여분 정도 은근한 말싸움이 오갔다. 결국 행정실 직원이 직접 올라와서 민원요청을 확인했고, 우선 전기콘센트를 애매하게 고쳐두는 것으로 수리작업이 매듭지어졌다.
퇴근사인를 쓰러 행정실에 들른 나는 '과학실이 이러쿵' 소리를 듣고, 다시 가방 챙기러 과학실로 올라와 '행정실이 저러쿵' 소리를 들으며 퇴근 했다.
이것이 얼마 전 겪은 사건의 요약이다.
이런 일련의 사건은 내가 행정실 소속이면서 업무는 과학실운영을 맡기 때문에 지켜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행정실과 과학실을 헤르메스처럼 오고 가다, 결국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구약성경의 유태인처럼 되고 마는 것이다. Quo Vadis, Domine
다만 경계에서 두 집단을 양 손에 놓고 견주어 볼 수 있는 처지에 있기 때문에 눈에 잘 들어오는 게 있다. 과학교사와 행정직원의 갈등은 단순한 소모가 아니다. 합리를 추구하는 정치다. 그들은 저마다의 합리를 끝까지 밀어붙였을 뿐이다.
교사입장에서는 학생들에게 최대한 신속하고 탁월한 교육(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지라, 행정직원에게 예산집행을 끊임없이 요구해야 한다. 반면 행정직원은 요청받은 집행제안를 꼼꼼하게 검토해야 할 의무가 있다. 신속함보다는 꼼꼼함이, 절차를 제대로 지키는지 따져보는 게 행정직원의 일이다.
이런 식으로 집단 안의 파벌(?)을 섣부르게 욕하지 않고 너그럽게 지켜보면, 그 누구도 미워하지 않을 수 있다. 누구를 탓할 필요도, 남을 원망할 까닭도 없다.
행정직원은 왜 칼퇴근을 할까. 그건 행정직원들이 3040여성이고 그들에겐 돌봐야 할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이렇게 생각하면 행정직원이 서둘러 집에 돌아가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일을 남겨놓고 누군가에게 떠맡기는 것도 아니니까.
굳이 밤늦게 까지 일을 늘려서 잔업하는 교사는 왜 그렇게까지 미련하게 일하는 걸까? 그건 그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하나라도 더 많은 기회를 주고 싶기 때문이겠지. 이렇게 생각하면 그 선생님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맛있는 차 한잔을 건내고 싶어진다. 일을 일답게 하는 사람은 반드시 어딘가에서 가치를 인정받는다.
저마다의 합리. 이것이 어디서부터 비롯됐는지 차분하게 살피다 보면 세상천지에 미워할 게 하나도 없다. 날 버린 옛사랑도, 비겁한 폰팔이도 가슴에 품을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