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지 못한 슬픔보다 사랑하지 않은 고통이 더 크다."
우선 정의definition부터.
진정한 친구란 '계산하지 않아도 이뤄질 사이'로,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자연스러운 초월적 관계가 아닐까.
이를테면
친구에게 경조사가 생겼을 때,
월급의 절반, 내지는 그만한 인적 물적 자원을 아낌없이 제공할 친구.
'호구 잡혀도 서럽지 않을 사람'으로 분류해두자.
일단 생각나는 대로 주먹구구로 헤아려보니.
일단 동네 친구가 셋에...
고등학교 동창이 최소 넷...
대학 동기가 하나.
숙명여대에서 하나.
대외활동이 넷.
... 또... 있긴 한데...
일단 이 정도?
세다 보니 두 자릿수가 넘어가는데, 이 정도면 고단한 삶 가운데에서도 잘 꾸려왔다는 생각이 든다.
정치도 경제도 부동산도 복지도 사람을 배신하는 세상에
믿을 구석이 사람이라면, 사람과 사람이 맺는 연대라면 그것 참 근사하지 않겠는가.
물론 처음부터 인간관계에 능했던 건 아니다. 이런저런 시행착오와 풍파를 겪었고
그러면서 쌓아 올린 율법이 생겼다. 모든 관계는 이런 몇 가지 원칙에 뿌리를 둔다.
내가 관계 맺기에서 설정해두는 주요 행동강령은 세 가지인데
"뭐... 그럴 수도 있지"
-> 기대를 안 하면 실망도 적다. 오히려 기대하면 반드시 실망할 거라 생각해두는 편이 낫다. 누군가를 만나면 우린 반드시 '내 멋'대로 상대방을 해석하게 되는데, '내 멋'대로 해석한 게 반드시 일치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명심한다. 물론 나의 기댓값을 벗어나는 상대방의 행동은 엄청나게 거대하고 또 무거운 짐이나 상처가 되지만, 미리 되뇌면 그나마 덜하더라. 빨리 아물고.
이렇게 상대방한테 기대하는 마음이 줄어든다면, 뜻밖의 호의는 갑절로 심장에 와 닿지 않을까요? 상대방이 내게 베푸는 모든 것이 고맙고 기뻐지는 것이니, 이것은 네거티브는 반절로, 포지티브는 곱절로 누리는 태도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접속사가 매력적인 까닭은 '저 인간이 별로인 이유 백 가지'보다 '저 인간이 특별한 이유 한 가지'를 더 귀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정말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나는 그 사람의 숨겨진 '썸띵-스페셜'을 발견하게 된다. 죽을 때까지 한 개인의 유일무이함과 대체 불가함을 밝혀내는 모험가이자 탐험가이고 싶다.
"사랑받지 못한 슬픔보다 사랑하지 않은 고통이 더 크다."
->무언가를 먼저 좋아하는 건 언제나 나의 몫이었다. 덤을 뒤집어쓰더라도 흑돌을 쥐고 '먼저'다가가야 속이 풀린다. 저 인간(혹은 대상Target)에게 잘 해준다 해서 반드시 보답받는 법은 없으나. "나는 당신을 이마아아아안큼 좋아해요."라고 온몸으로 표현했을 때 맞이하는 기적 같은 체험이 있다. 이게 나를 살린다. 오직 잘 표현된 애정만이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이끌었고 , 더 사랑'하는' 사람으로 이끌었다.
"어떤 사람을 아는 사람은 희망 없이 그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발터 벤야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