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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필년 Nov 13. 2017

팅커벨처럼 맴도는 청춘의 신神이 있다면

젊은이들이 착각해. 청춘은 다른 사람과의 비교나 우열로 결정되지 않는다네

"내 주변을 팅커벨 마냥 맴도는 청춘의 신神이 있다면, 
아마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라는 발상으로 9-10월에 체감한 숱한 생각을 형상화해본 사고 실험이자 다이얼로그.  
이름에 '–우스' 들어가는 사람들이 잔뜩 나오는 고대 희랍신화를 떠올리며 

알쏭달쏭한 근대 희곡을 상상하며 써 내려감.

근데 다 써넣고 보니 쓸 데 없이 현학적이다. 희희喜喜. 

하지만 가을 동안, 올 한 해 동안 내 몸을 통과시킨 체감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일은 나름 쓸만하지 않나 생각해본다.



라파엘로 산치오 / 『아테네 학당』


"이봐요 젊은이! 당신 유예 청춘 보증기간이 만료됐다네. 이제 빚진 젊음을 상환하셔야 해." 

"네? 벌써요? 저는 아직 준비가 안됐는걸요?" 


"벌써라니 젊은 양반. 아직 학생이란 이름으로 보낼 시간이 여섯 달 정도 남아있긴 하지만 자네는 남들보다 더 젊음을 많이 당겨 썼어. 

좀 더 싸늘하게 말하겠네. 이제 자네한테는 하루에 여덟 시간 정도 공들여 일하는 직장이 있어야 하고, 직장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이 있어야 하고, 벌어들인 수익을 배신하지 않으며 살아야 한다네. 요컨대 자네는 누구의 힘도 아닌 스스로의 힘으로만 살아야 하는 나이가 됐다는 거지."  

"불공평해요. 나는 아직 졸업도 못했고, 모든 면에서 어설퍼요. 아직 자신 없네요 저는. 제대로 된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이 모양 이 꼴로 내몰려졌단 말이에요. 제가 못났지만, 제가 못나서만 이렇게 된 건만은 아니에요.

"그건 나도 무척 안타깝게 생각한다네. 하지만 자네도 이미 알고 있잖나. 꿈이나 이상은 미룰 수 있지만, 밥벌이는 미룰 수 없어요. 여태껏 자네를 품어준 보호자는 쉽게 늙어간다네. 그런 자네를 보는 주위의 시선도 결코 곱지 않지. 개썅마이웨이와 개썅마이웨이를 가능케하는 실력은 구분해야 겠지. 자네를 둘러싼 모든 게 위태로워지고 있다네. 하나만 기억하게. 나는 자네가 돌이킬 수 없는 지점까지 가는 걸 막으려는 것뿐이야."

"그럼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정답은 없네. 젊은이. 다만, 지금처럼 살면 결코 답을 얻지 못할 거라네."  

"좀 더 알기 쉽게 말씀해주시죠." 

"자네는 자네 그릇에 알맞은 루틴을 찾아내야 한다네. 루틴이란 말이지... 평범하게 살고 싶다 해도, 남들처럼만 살고 싶어도 필요한 것이라네. 혹은 자네가 벗어나고 싶거나 진저리 칠만한 삶에서 멀어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네. 자네가 좋아하는 영화평론가가 그랬잖나. '형식이 완성도에 기여하는 몫이 분명히 있다'라고.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당신 말대로라면 우선 루틴에 집어넣을 재료를 골라야겠군요. 그런데 이걸 무슨 기준으로 분별하죠?" 

"자네는 사실 이미 답을 알고 있다네. 1인분의 삶에 있어선 여전히 풋내기지만, 자네는 은 스스로의 호불호와 선악을 분별하고 있어. 잘 하는 일과 못 하는 일을 판단하는 힘을 갖췄고. 낭비한 시간이 많지만 낭비한 덕에 가능한 일이라네. 자네가 올 한해 동안 보낸
 나날을 떠올리게나. 게으를지언정, 심지어 게으름조차도 십중팔구 젊은이의 의지 will대로 행한 일 아니던가?  

"그렇긴 하네요." 

"의지대로 행한 건 참 좋았어. 이제부터는 의지를 슬기롭게 발휘하는 연습을 해보자고. 첫째는 몸, 둘째는 머리, 셋째는 '낯섦의 교환'이 좋겠지" 

"하나씩 불러주세요. 메모 좀 해둡시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느끼지? 자네 요즘 많이 게을러졌어. 괜히 피곤하고 말이야. 몸을 움직이시게. 누구도 절대 건드릴 수 없는 피지컬 한 시간을 확보하는 거지. 먹거리도 골라 먹고. 몸에 좋은 일을 최우선으로 하게나" 

"다음은요? '머리'라면 역시 공부에 관해서겠죠?" 

"간직만 해두고 미처 꺼내지 못한 공부 거리만 마킹하게. 그리고 책좀 그만 사게. 자네 맘 내가 아는데 지금 쟁여놓은 것만 해치워 충분할 걸세. 가을에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지인들과 미리 약속해둔 글쓰기&독서 모임 있잖나! 잘 활용하면, 미처 못 읽은 자료는 올해 안으로 능히 해치울 수 있겠지" 


"낯섦의 교환은 뭔지 알 것 같아요. 쉬는 날에 우연 가득한 시공간으로 스스로를 몰아넣는 일을 말하는 거죠?" 

"이건 말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군. 이건 이제 1-2주에 한두 번 정도면 충분할 것 같네" 

"좋아요. 해봅시다. 당신이 말해준 걸 토대로 해내겠어요." 

"좋아 젊은이. 이 정도면 올해 안으로 꾸려나갈 유예 청춘 상환에 어느 정도 보탬이 될 걸세. 명심하게. 유예 청춘 상환의 핵심은 1인분의 몫에 달려있다네. 자네가 살아가면서 1인분의 몫을 해낼 때, 그때 터득하는 물리적 실감이 자네의 빚진 청춘을 갚을 걸세. 많은 젊은이들이 착각하는 건데 청춘은 다른 사람과의 비교나 우열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네. 청춘을 일종의 챌린지-스포츠라고 생각하게. 한계에 도달한 나를 터프하게 몰아붙이면 드러나는 또 다른 '나' , 잠재된 '나'를 발견하는 일이라 생각하시게나. 오직 꾸준하면 된다네 젊은이. 그럼 나는 해가 바뀌면 돌아오겠네. 내년에 다시 만납시다. 젊은이. 그럼 행운을 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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