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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필년 Nov 15. 2017

애매하게 가는 정의正義

남은 절대 모르고 오직 나만 아는 양심.


일상의 비非일상.


'기억할 만한 지나침'으로 분류 할 사건은 루틴을 살짝 바꿨을 때 일어난다. 이를테면 회사에 나가는 사람이 갑작스런 변덕으로 매일 먹는 커피를 거르고, 생과일 쥬스를 갈아마신다 치자. 그러면 갑자기 배가 아플 수도 있고, 배가 아파 오매불망 기다리던 데이트를 망치고 하루를 망칠 수도 있으리라. 혹은  과일맛이 좋아서 주변 사람들한테 권했더니, 너나 할 것없이 아침에 과일을 먹는 문화가 근무지에 꽃필 수도 있다. 극단적이고 단순한 예시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뇌가 짜릿해지는 일이란 대체로 사소하며 어처구니 없는 일에서 비롯된다. 일상의 미묘한 비틀림이 사건을 특별하게 부풀린다.



어느 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디자인 학원을 알아보려고 버스에서 도중하차. 내린 곳은 집과 학교의 딱 중간쯤 되는 곳이다. 여기서 집으로 가려면 석바위 사거리를 지나가야 한다. 평소라면 버스타고 휙~지나가버리는 곳이다. 날씨가 추웠는데 무슨 변덕이었을까. 나는 버스를 갈아타지 않았다. 석바위를 거쳐 집까지 걸어가자고 결심했다.

석바위 사거리를 가로지르는 횡단보도 옆, 어떤 할아버지가 가로수를 붙잡고 위태롭게 주저앉아 있다.푹눌러쓴 개장수모자, 낡은 패딩을 입은 노인, 종로 파고다 공원에 가면 볼 수 있는 70무렵의 할아버지가 위태롭게 주저앉고 말았다. 하필 저녁이었다. 빠르게 교차로를 돌파하는 자동차 때문에 (퇴근 무렵의 석바위 사거리는 분명 위협적이다.) 가로수가 없었더라면 할아버지는... 


나무 하나에 간신히 몸을 의지한 할아버지는 나를 불렀다. 횡단보도에 사람이 제법 많았음에도 굳이 나를 지목한 건, 아마 건장한 체격인 성인남성을 딱 짚어서 도움을 요청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 여겼음이겠다. 앉은뱅이 노인은  내게 집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거기까지 부축해줄 수 있는지 물어봤다. 나는 주저앉은 할아버지를 번쩍 들어올릴 수 있으리라 믿었지만, 할아버지의 다리는 천근만근이었다. 의사표현이 멀쩡한 양반이 몸을 못가누다니. 내 생각에 갑작스럽게 풍風이 오지 않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노인들은 사실상 뇌졸증 시한부라고 보면 된다.)  다리에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 사람을 일으키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나는 부축을 포기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차가 올 때 까지 할아버지 곁에 있었고, 경찰이 도착하고 순경 두명에게 할아버지의 상태를 설명했다. 곧바로 자리를 빠져나왔다. 이것이 오늘 벌어진 비比일상의 전부다. 


나는 분명 할아버지를 가엾게 여겼다. 그러나 할아버지를 향한 동정심은 온정어린 박애에서 비롯된 행동이라기보단, 중풍으로 쓰러진 외조모님에 대한 기억 때문에 발동한 무조건반사에 가까웠다.



나는 다른 상황이었어도 과연 할아버지를 끝까지 도왔을까?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가 풍으로 쓰러지지 않았더라면.
만약에 앉은뱅이 노인이 나를 지목하지 않았더라면.

~~라면...



이 사건이 폭로한 나의 실체.


나는 딱히 의협심에 불타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양심에 일말의 가책을 느끼는 주제에 정의로운 사람인 척할 수는 없겠다고 생각했다.

집에 가는 내내, 난 스스로의 정의正義나 도덕관념따위를 점검했다.

시민구출미담의 소小영웅처럼 두팔 벗고 나서서 할아버지를 도와드리지 않았다. 나는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난 그저 횡단보도 신호가 두번 바뀔 때까지도 주변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할아버지 곁을 지켜야겠노라 결심했을 뿐이다. 솔직히 할아버지를 끝까지 집에 바래다 줄 생각에 눈 앞이 컴컴해지기도 했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범위를 넘었다고 생각하자 곧바로 다른 대안을 모색했다. 



경찰차를 기다리는 동안 할아버지는 70평생에 처음 겪는 증상이 창피해 남에게 도움을 구하기 
힘들었다고 말씀하셨다. 할아버지는 자꾸 부끄럽다고 말씀하셨다.경찰에 신고도 못하고 30분을 길바닥에 주저앉은 까닭이기도 했다. 정작 나는 할아버지를 돌보며 깃든 순간순간의 진심 때문에 부끄러웠다. 

한 개인의 본모습은 행동에서 드러나기도 하지만, 사실은 행동을 반추하는 양심이 더 명확하게 포착하는 
게 아닐까
. 이런 비比일상에 대처하는 순간순간의 진심에서 드러난다. 남은 절대 모르고 오직 나만 아는 양심의 영역. 한마디로 윤리와 도덕의 문제
인 것이다. 

인간을 향한 애매한 애정. 
그게 부끄러웠다.
부끄럽다.

내가 평소에 "딱!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도와야지."라는 태도로 살고 있구나.
'애매하게 가는 정의심'을 확인한다.


젊은이의 부끄러움을 덮을 단 하나의 것이 있었다면 할아버지와의 악수.

할아버지가 내 손을 꼭 잡고 
"고맙소...고맙소 젊은 양반."이라 거듭 말해주던 것.

단 하나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마련해줬다.
그거면 됐다고 하는 할아버지. 이래저래 말을 아끼던 할아버지.

매서운 찬바람이 불었지만, 할아버지의 손은 참으로 따수웠다.
할아버지 올 겨울 부디 무사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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