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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필년 Nov 13. 2017

[#.4] 레토릭. 말言의 톤&매너

수사학修辭學. 입말을 갈고닦는 공부를 들여다보면

묘하게 피로해지는 때가 있다. 피곤한 까닭은 '피지컬한 체력소진'(이를테면 수영이나 조깅같은 운동) 때문이라기 보다 '소모되는 대화'를 했기 때문이리. '멘털리티의 문제'.

소모되는 대화의 예는 다음과 같다. 굳이 '혼밥러'에게 밥을 사 먹이겠다며 근무지로 찾아와 준 친구의 마음 씀씀이는 분명 고마운 것이다. 허나 온갖 의미부여는 다 짜 놔둔 레디메이드ready-made 카톡을 내 앞에 들이밀며, 좋아하는 아이에게 연애 걸지 말지를 굳이 물어보는 친구의 '답정너 식 말하기 전략'은 참으로 나를 피곤하게 만든다.

합정상수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어가며 몇 년 만에 보는 반가운 지인들과 근황을 나누는 일은 분명 즐겁다. 하지만 대화 안에 담긴 우리들의 상투성과 피상적인 세계인식과 정체된 인간관을 감지하다 보면 '준비된 사회성'은 생각보다 빠르게 소모되고 마는 것이다.

명언 甲

요즘 들어 '말 잘하는 방법'. 레토릭에 관한 책을 읽는다거나 
일부러 연예인&정치인 성대모사를 찾아보고 따라 한다거나
말과 얽힌 에세이를 퇴고하다 보니 그런 걸지도 모르겠는데
평소였으면 무심코 넘어갈 만한 (나 혹은 타인의) 언행言行을 내 안에서 무의식적으로 포착하게 된다.

"어휴... 나는 ~~하는 ~~는 절대 안 만나."같은 단호한 맹세.
"너도 나이를 먹으니까" "넌 결혼했으니까"같은 단정적 표현을 나도 모르게 캐치하고 만다.
(*이런 레토릭에 대한 고찰은 나중에 페미니즘과 사회학적 개념을 엮어서 나중에  '반드시' 기록해보려 한다.) 

이것은 폭력적인 말에 대한 히스테릭한 반동이라기보단
잘 훈련된 말하기 전략. 대화의 적절한 톤&매너를 찾고자 하는 열정적 호기심일 텐데
어쨌든 대화를 통해서 말言의 속성을 '우연히' '자꾸' 발견invention 하고 싶다.

과정으로든 결과로든 대화에 푹 젖은 채로 살다 보면 말言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재수 없는 표현일 수도 있지만) 나는 말言의 최전선'에 있으니까.

수사학修辭學. 말을 갈고닦는 학문. 

'레토릭'에 관한 책을 읽다보니 '탁월한 레토릭'의 근본根本은 '언어의 유연성'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설가는 상황에 따라 어떤 문체를 사용하여 '적절하게' 표현할지 선택한다. 이러한 적절성은 에토스적 호소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어떻게 표현하는지에 따라 청중이 연설가를 평가할 테니 말이다. 사실 적절성은 수사학에서 매우 포괄적인 의미를 함축한 단어로, 문체라는 항목과 접목시키는 일은 주객을 전도하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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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학자들은 '적응(accommodation)'이란 말을 곧잘 거론한다. 적응이란 자신의 언어를 공동체에 맞추는 것이다. 즉, 같은 언어를 쓰는 공동체의 특징에 맞춰 억양을 높이고 낮추는 방법을 익히고, 온갖 숙어를 터득하는 과정이다. 이런 과정을 적절성을 연습하는 것이라고 의식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우리는 직관적으로 안다. 이력서를 쓸 때 문자메시지 약어나 윙크하는 표정의 이모티콘을 쓰는 것이 적절하지 않으며, 시부모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도 상스러운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또한 법정에서 증거를 제시할 때 판사에게 '방가방가'라고 인사하지 않으며, 반대로 친구들에게 법정에서나 쓸 법한 말을 썼다간 다들 배꼽 빠지게 웃어댈 것이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

『레토릭: 세상을 움직인 설득의 비밀』 - '제2부 레토릭의 비밀 5가지' 中 / 샘 리스
문학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기성관념은 버리고 느낀 것, 머릿속에 떠오른 것을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써보면 되지 않을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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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란 원래 터프한 것입니다. 기나긴 역사가 뒷받침해주는 강인한 힘을 가진 것입니다. 누가 어떻게 어떤 식으로 거칠게 다루든 그 자율성이 손상되는 일은 일단 없습니다. 언어가 가진 가능성을 생각나는 한 모든 방법으로 시험해보는 것은, 그 유효성의 폭을 가능한 한 넓혀가는 것은, 모든 작가에게 주어진 고유한 권리입니다. 그런 모험심 없이는 새로운 것은 탄생하지 않습니다. 나에게 일본어는 지금도 어떤 의미에서는 도구입니다. 그리고 그 도구성을 최대한 깊이 추구해나가는 것은, 약간 과장해서 말하자면, 일본어의 재생으로 이어질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 제2회 '소설가가 된 무렵' 中 / 무라카미 하루키

한국어도 마찬가지 일 테다. 



말에 담긴 유연성Flexibillity을 찾아내는 건 일종의 게임이다.

수사학Rhetoric을 공부하는 일은 
어떤 수사에 담긴 사연이나 배경에 편견을 갖지 않고
요리조리 굴려가며 언어의 가능성을 탐사하는 작업인데

이런 작업을 통해 느끼는 희열은 
슈퍼마리오 시리즈나 MMORPG 게임에서 느끼는 즐거움과 대체로 비슷할 게다.
잘 짜인 세계 안에서 가변성을 최대한 실험하며 느끼는 기쁨. 창조적 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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