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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필년 May 06. 2018

보여지는 기록의 배신

반드시 어느 지점에선가 '편집'되는 일상이 있습니다.

혹시 블로그 같은 매체를 통해 일상을 간직해 두시는 편인가요? 저는 블로그를 꽤 열심히 운영하는 사람입니다만, 요즘 들어 블로그에 일상기록하는 것을 조금 미루고 있습니다. 홀로 간직하는 기록이 늘고. 혹은 기록 할만한 일상을 마음 속에만 간직하려 무던히 애쓰고 있습니다.


먼저 밝히지만, 일상기록의 순기능은 어마어마합니다. 저는 일상을 기록하는 사람이 삶의 강자가 된다고 믿습니다.

다만 '보여지는 기록의 배신'이라고 해야 할까요?  스스로에게 솔직하고 싶어 시작한 기록이 오히려 나를 속여먹는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아무리 투명하게 일상을 기록해도, 기록물에 100%의 자기자신은 반영되지 않는 것입니다.

반드시 어느 지점에선가 '편집'되는 일상이 있습니다. '편집'의 기준이 되는 잣대에 따라 은폐되는 일상이 분명 존재하는 것을 분명히 명심해두려고 합니다. 물론 일상이 어느정도의 기준과 규칙에 의해 편집되어야 하는지를 정하는 것은 순전히 각자의 몫이겠지만요.

이를테면 블로그에 아무리 솔직하게 쓰더라도, 애인이랑 섹스한 과정을 낱낱히 전시하거나 도덕적으로 손가락질 받을 행동을 티낼 순 없는 것입니다. 매체 특성상, 블로그를 오래한 사람일 수록 블로그에 기록된 '나'를 믿어버리기 쉽다고 생각합니다.


블로그를 벌써 수년 째 써먹고 있지만, 슬슬 위화감을 느낍니다. 저의 현실세계의 모습을 모르는 이들은 가상세계에 기록된 나를 진짜인양 여기시거든요. 아! 이제 슬슬 기록된 '나'에게 거리를 둬야 마땅합니다.

우연히 주웠는데 두고두고 꺼내보는 다이얼로그입니다.
'편집된 나'와 '편집되지 않은 나'는 얼마나 다른지.


설령 정확하게 살펴보는 게 불가능하다더라도, '편집된 나'를 구분지으려는 노력 덕에 자신을 속이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겁니다.


제 블로그의 일상기록을 1천건 넘기며, 기록을 더 남기는 것보다 여태까지 남겼던 기록을 다시 살펴보는 게 낫다는 생각을 자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요즘에는 기록보다는 대화에 관심이 옮겨갑니다.  일상의 대부분은 말로 채워져 있고, 일상기록의 본질은 말의 기록이지 않을까요. 내뱉은 말을 나중에 100%로 만드려 애쓰는 것이 기록이라면, 차라리 말 자체에 집중하는 게 낫지 않을까.

내 눈 앞에 있는 사람과의 말. 즉 대화의 밀도 내지는 순도를 100%에 가깝게 만드는 게 훨씬 낫지 않나.

라는 생각을 세면대에서 열심히 해봤습니다.


저는 왜 이런 걸 끄적이게 됐을까요...얼마 전에 본 피드가 지대한 영감을 주었습니다. 유명 쇼핑몰 운영하는 분의 양심고백입니다. 조금만 더 스크롤을 내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__leeheeeun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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