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도 다 친구짝궁이 있다는 사실을 좀 더 잘 느껴보아요
필자가 요즘 들어 부쩍 열심히 품어내려 애쓰는 것이 있으니 바로 중장년의 삶이다. 젊은이들이 쉽게 후려치고 마는 것을 시니어의 삶이라 해두자. 젊은이란 대체로 저희네 삶만 중헌줄 아는 치들이라 다른 세대의 삶을 삼겹살에 소금 찍어바르듯 발라둬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후회를 덜한다. "아이고 어매 돌아가시기 전에...아바이 아프시기 전에 같이 꽃이라도 한번 더 보러다닐걸"하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봤다.
요즈음 알바하며 은퇴 무렵의 시니어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 다 58년 개띠 베이비붐 세대에 한발씩 걸치고 계신 분들이다. 장성한 자식이 있고, 회사(혹은 사업)를 십년 이상 하다 은퇴했고, 은퇴하기엔 아직 너무 씩씩해 황혼의 삶을 새롭게 꾸려나가고 싶은 분들이다.
강화도 시골분교가는 봉고차에서 실장님은 CJ가 삼성그룹에 있었을 적, 그러니까 바야흐로 20여년 전으로 추정되는 먼 과거, 인천부두 설탕공장에서 일했던 시절 이야기를 어쩜 그리 열심히 말씀하시던지. 사장님이자 매일매일의 알바를 챙겨주시는 친구아버지는 함흥냉면에 갈비를 넉넉히 구워주시며 친구아들의 20대는 어땠는지, 본인의 청춘은 어땠는지, 나와 친구를 앞에 두고 해주고 싶으신 말씀이 어찌나 그리 많던지.
어르신들에게 젊은 사람들한테 예의를 갖춰 말을 꺼내야 한다는 분위기가 제법 싹트는 모양이다.
어설픈 조언 잘 안 꺼내신다. "~~를 해야 잘먹고 잘산다."는 식의 의무를 강요하기보단, 본인의 인생-타임라인에서 어떤 대목에 어떤 선택을 내렸는지 쭉 읊기만 하신다. 무엇을 주워담을지는 똑똑한 젊은 놈들의 몫이다.
이럴 때 가장 좋은 건 말을 많이 교환하는 게 아닐까. 요즘 어른들이랑 말을 많이 섞으며 느끼는 건데, 조금만 느긋한 마음으로 대하면 어른들은 훌륭한 말동무로 변신한다. 어른들은 사실 수다쟁이임을 숨기고 있다.
그러니까, 젊은이 입장이라면 그저 '잘' 듣고 보자는 말이다. 어른들이 보글보글 끓여 낸 썰을 분별해서 듣는 다면, 수십여년 전의 추억이 욕실 안 수증기처럼 자욱해지며 드러나는 어른들의 후회와 판단만 적당히 필터링할 수 있다면. 어른들의 삶에서 증류되어 남는 건 오직 '지혜' 뿐이니.
그러던 와중에 2018 어버이날을 맞이했다. 올해 어버이날은 유독 못마땅하다. 날을 기념하기엔 내 스스로가 너무도 무력한 까닭이다. 카네이션 달아드리긴 새삼시런 나이 스물 아홉. 머리에 카네이션 달고 손으로 꽃받침하고 달려들기엔 너무 징그럽게 커버렸다. 좀 더 그럴싸한 성의를 표시하고 싶지만, 두툼한 지갑을 어버이 선물로 다이어트 시킬 날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 마...솔찍헌 심정으로 금일봉 팍팍 넣어드리고 싶었는데, 그 돈. 한 달 전, 새로 이사온 집 소개시켜주신 부동산 복비로 부모님 대신 내드렸다. 신자유주의-실용주의 효도 만세. 불가피한 억지효도 만세. 올해는 돈으로 효도하기는 글러먹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를 찾아갔다. 안 그래도 678월달 인턴자리공략은 어찌 할까 고민하다 들어왔는데, "동생과 오마니는 왜 이번 주는 노는 거니...역시 빨리 군대를 갔었어야 한다는 둥..." 자꾸 신경긁는 잔소리만 하니!
흥 난 오늘 아부지랑 놀거야!
이번에 이사하면서 계약과정 전반을 알게 됐고, 얼마나 아버지가 고생했는지 잘 알게 되서. 요즘도 한 푼이라도 더 벌고자 귀가가 늦어진다는 걸 직접 보게 되서. 요즘엔 아버지에게 많이 마음이 쏠린다. 아버지의 하루를 떠올린다거나. 아버지가 내 나이 무렵에 뭐 했을지. 아버지를 향한 은유. 그것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
"아부지! 요 앞 편의점에서 캔맥주나 합시다!"
"아들! 아빠 학철이 삼촌이랑 다른 아저씨들이랑 요 앞에서 저녁약속 있는데?"
뭐 그래서 아버지 지인분들이 사주시는 맥주 몇잔 얻어마시고, 자주 찾는 카페로 넘어와 최근에 생각해둔바를 끄적끄적이고 있다. 아버지의 선약 때문에, 아버지와 있던 순간은 길어야 삼십분 정도였지만, 뜻밖의 조합으로 자리에 있던 덕에 새삼 알게 된 게 있다.
어버이날엔 어버이들끼리도 모인다. 오늘은 어버이날 어버이 세상!
아버지가 만나는 친구들이 하는 얘기를 들어보니. 아버지의 무언가와 동행하는 사람들이었다.처지를 잘 이해해주는 사람들이었다. 같이 일하다보니 정든 사람. 어려운 시절을 함께 헤쳐나간 사람. 그런 어버이들끼리 잘해보자는 모임이 꾸려진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전혀 몰랐던 아버지의 무언가를 함께 한 셈이다. 덕분에 어버이들도 다 친구짝궁이 있다는 사실을 좀 더 잘 느끼게 됐다.
아! 그렇군. 호형호제하는 사람들이 있어 사나운 팔자를 보듬어주기도 하고 매 해 염려되는 건강도 서로 챙기고. 그렇게 배우자도 자식도 어떻게 해줄 수 없는 짐을 덜면서 살아가는 걸테지.
이 땅의 모든 어버이들이시여! 오늘 즐겁게 놀다 집에 오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