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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필년 Jul 19. 2018

슬픔이 나를 데려가 데려가

<언니네 이발관>이 환기시키는 삶의 진실

내 경험에 따르면, <언니네 이발관> 음악이 끌리면 멘털리티를 체크해야 한다. 내면 상태에 균열이 생겼다는 증거다. (사실 병환을 진료하거나 병폐를 해소하기 위한 연구가 필요하단 점에서 임상심리학적인 접근이다.) 물론 이런 나의 심증은 <언니네 이발관>이 도달한 음악적 성취와는 무관하다. 


하지만 <언니네 이발관>이 뽑아내는 사운드는 삶의 어두운 시절을 견뎌내는 사람에게 당사자가 갖고 있는 마음의 정확한 좌표를 일러준다.

식구들이 떠난 집안 거실에서 IPTV를 켜 스트리밍 채널을 들어간다. <언니네 이발관>의 뮤직비디오 몇 가지를 틀어둔 채 설거지를 한다. 컴퓨터 학원 가는 길에 앨범 하나를 통째로 셔플 재생한다. 한 계절을 통째로 회상하게 되는 뮤지션이 있다. 2017년의 <NELL>, 2018년의 <언니네 이발관>.

리스너로서 참 다행이라 생각하는 점은 내가 작년부터 <언니네 이발관>을 알게 됐다는 점이고 한국음악의 애청자들은 익히 알다시피 <언니네 이발관>은 월드컵이 세 번은 열려야 음악을 뽑아내는 창작집단이다. 기다리지 않고 완결된 작품을 누리는 기쁨에 감사하자.


https://www.youtube.com/watch?v=MYYXLw8jRD0&start_radio=1&list=RDMYYXLw8jRD0

그대의 익숙함이 항상 미쳐버릴 듯이 난 힘들어
당신은 내 귓가에 소근대길 멈추지 않지만
하고 싶은 말이 없어질때까지 난 기다려
그 어떤 말도 이젠 우릴 스쳐가

앞서간 나의 모습 뒤로 너는 미련 품고 서 있어
언젠가 내가 먼저 너의 맘 속에 들어가
하고 싶은 말이 없어지지 않을 거라 했지.
그랬던 내가 이젠 너를 잊어가.

사랑했다는 말 난 싫은데 아름다운 것을 버려야 하네
넌 말이 없었지 마치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슬픔이 나를 데려가 데려가

나는 너를 보고 서 있어 그 어떤 말도 내 귓가에
이젠 머물지 않지만
하고 싶은 말이 없어질 때까지만이라도
서로가 전부였던 그때로 돌아가
넌 믿지 않겠지만

사랑했다는 말 난 싫은데 아름다운 것을 버려야 하네
난 나를 지켰지 마치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그동안의 진심 어디엔가 버려둔 채

사랑했었나요 살아 있나요 잊어버릴까 얼마 만에
넌 말이 없는 나에게서 무엇을 더 바라는 가
슬픔이 나를 데려가 데려가

[아티스트 정보]
ARTIST: 언니네 이발관
TITLE: 아름다운 것
SESSION: 이석원(보컬), 이능룡(기타), 전대정(드럼), 유정균(베이스)

[ONSTAGE] 언니네 이발관, 사랑과 삶을 노래해온 보통의 존재들
http://music.naver.com/onStage/onStag...

Presented by (재)NAVER문화재단
http://www.naverfoundation.org/main/N...

Created by Studio Lovo
website : http://www.studiolovo.com


자타공인 '시스터 바버샵 사운드'의 최고봉으로 꼽는 5집의  <아름다운 것>은 어째서,이다지도 내 마음을 사로잡는가.


요즘의 나는 누굴 만나도 행복전도사였다. 형식은 제각각이었으나 맥락 상 똑같은 질문을 연거푸 받았다. "당신은 행복하냐?"는 물음이었다. 행복하다 생각했기에 나는 성실히 대답했다. 뜸을 들이면 행복론을 툭 떨어뜨리는 행복 자판기.

불행하지 않으려면 차이를 구분 지을 줄 알아야 합니다. 구분 지으려면 반복해야 합니다. 반복되는 것에 반드시 미묘한 차이가 숨겨져 있습니다. 결국 당신은 발견하게 될 겁니다. 여름이 오면 도시에서 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것들은 뭘까요. 마른 볕 뽀송뽀송한 바람 호수 위에 흩부려진 무지개 황혼녘의 빛 산란 나는 그런 걸 채집해요. 어디 뭐 볼빨간 사춘기 여행가야 보는 풍경이 아니에요. 집 근처 어딘가 흔해 빠진 시간에서 잡아내는 거예요. 노력하면 능력이 되더라고요. 행복은 일상의 비일상을 주워담는 거예요.

  내가 응답했던 건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불행에 빠지지 않는 노하우들이었다. 다들 내게 궁금해하는 것은 방법론에 대한 고민과 실질적인 행동이행이었으므로. 나는 확실히 불행을 잘 다스리는 편이었으므로.

 


<언니네 이발관> 노래를 들으면 이 모든 것을 의심하게 된다. 사실 나는 어느 정도 불행한 사람이고 불행에서 얍씰하게 잘 도망칠 뿐이란 걸. 유예된 불행을 앞두면 꽤나 초조해한다는 걸.

그런데 말이에요. 요즘 들어 몇 가지는 의심스러워요. 불행이니 행복이니 그딴 게 뭔지 구분 짓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관념을 아득히 초월한 사람들이지요. 그런 사람들은 두 가지를 갖고 있어요. 돈 아니면 시간. 둘 다 있으면 최고죠. 육신이 싱싱하고 그것에 매겨지는 가치를 잘 파악하고 움직이는 사람들은 평생 구겨지지 않아요.  구길 필요도 없고 구겨지지도 않아요. 훼손되지 않는 것은 신神적인 거예요. 아름다운 것 중에서도 가장 으뜸인 아름다움이에요.

그렇게 나는 목도한 불행을 마주하고 슬픔이 나를 데려가도록 내버려둔다. 슬픔이 데려다준 곳이 행복이 만연한 곳보다 나으리라 짐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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