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당신의 '장단점'을 묻거든, 고개를 들어 문장단위로 응답하세요
누군가 당신의 장단점을 묻거든, 고개를 들어 뻔뻔하게 응답하세요. 단어가 아니라 '문장'으로. 형용사를 하나 둘 골라 잽을 날리고, 구체적인 일상 예시를 담아 입안에 고인 파동을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세요. 걱정 마세요. 상대방은 이미 당신의 펀치를 받아칠 준비가 되었으니까요.
"~~ 님은 ~~ 님의 장점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단점은요?"
이 물음은 저눔시키가 내 동료가 되기에 적절한지 탐색하는 과정에서 빠지지 않고 나온다. 취업 면접의 필수 기출문제라는 말이올시다.
기출 빈도와 난이도를 고려해 빗대자면, 수능 외국어 영역의 빈칸 채우기와 비슷하다. 무조건 출제되는 퀴즈이며, 제법 어려운 문제라는 점. 갖다 붙이면 말은 되는데, 출제자의 의도를 고려해 정답을 택해야 한다는 점. 행간의 맥락을 읽지 못하면 반드시 오답에 빠진다는 점에서 그렇다.
필자는 지난 4달간, 약 20회의 면접에서 장단점에 대한 문답을 16회 정도 교환했고, 16회의 문답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귀납적으로 도출해냈다.
1. 면접관마다 장단점 질문에 담은 의도는 제각각이다.
2. 취준생이 같은 답을 제출하더라도 평가는 면접관 마음에 달렸다.
3. 따라서 취준생이 하는 대답의 평가는 상대적이다.
4. 심지어 준비한 대답도 면접관의 태도에 따라 다르게 인출된다.
결론을 토대로 예비면접자 여러분에게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해볼 수 있겠다.
1) 장단점의 키워드화, 언제든 기계처럼 인출해낼 수 있는 단어 여섯(장점 3, 단점 3)로 압축해보자.
2) 이왕이면 단점부터 언급하자. 좋은 건 나중에 말하는 게 좋다고 심리학자들이 그랬던가...
3) 면접에서 들이미는 당신의 단점은 극복 가능&개선 가능한 당신의 약점이라 생각해라. 고쳐 쓸 수 없는 너님의 어두운 인성은 면접에서 제출해야 할 단점이 아니다. 당신의 딥 다크 한 내면은 남몰래 간직하되, 어제보다 나아지려 끙끙 애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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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데이 원 인터뷰를 치르던 취업준비생 막바지, 당시 필자는 성수동 헤이그라운드라는 코워킹 스페이스에서 면접을 치르며 '장단점 Q&A'의 가장 세련된 형태를 만났다.
"필년씨가 저희와 일을 하게 된다면, 미리 귀띔해주고 싶은 본인의 성격이나 습관 같은 게 있나요? 저희가 미리 알아야 하는 필년씨에 대해서 말씀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인터뷰를 치르는 나는 질문을 다음과 같은 맥락으로 해석했다.
"인사담당자님이 나를 직장동료로 만났을 때, 예상되는 장단점에 대해 탐색하고 싶은 모양이다."
"저는 제 장점도 열정이라 생각하고, 단점도 정열이라 생각합니다. 제 장단점은 동전 보는 거랑 똑같다고 봐요. 관점에 따라 제가 발휘하는 열정적인 행동은 장점이 되기도, 단점이 되기도 해요.
엊그제 1차 면접 때, 대표님께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뭘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계획을 세워서 하기보단, 몸이 먼저 움직이는 편입니다. 그래서 궁금한 데가 있으면 발이 먼저 움직이는 편이고 아까 말씀드린 사회경험의 대부분은 그렇게 만들어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드니까 예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정을 붙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TPO라고 해야 할까요? 열정도 시간이나 장소를 고려해서 격식 있게 발휘하는 게 필요하겠더라고요. '에이... 일이 일답게만 이뤄지면 되는 거지 격식이 중요해?'라고 생각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예전에 인턴이나 아르바이트할 때 절차를 밟아서 보고 드려야 할 일을 단독으로 처리했다가 이따금 꾸지람을 얻기도 했었어요. 그때는 마냥 서운했는데, 지금은 다 정확한 지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같이 일하게 된다면, 이런 점을 고려해서 꾸짖어주세요 ㅎㅎ"
"ㅎㅎㅎ... 필년님! 사실 이 질문은 제가 왜 드렸냐면... 제가 벤처 일을 10년 정도 하면서 다양한 분들을 면접을 통해 만났고, 제가 항상 드리는 질문이기도 해요. 면접 보시는 분들이 자기 자신을 어떻게 객관화하고 어떻게 자신을 풀어서 말하는지 궁금해서 드리는 질문이거든요. (웃음) 답변 잘 들었습니다."
"유레카!!! 아! 이거였구나."
장단점을 따지는 질문의 본질은 '진술statement'이다.
진술하는 발화자의 언어로 짐작하게 되는 진술의 일관성과 논리성. 몸짓으로 미루어 짐작하게 되는 타인의 태도. 취업시장에서 지원자의 장단점을 따지는 면접관의 질문은 지원자의 자발적인 진술을 부추기고, 저절로 드러나는 지원자의 자기 객관화 수준을 탐색하는 것이다.
오늘 면접관님이 내게 던진 질문을 해체해보자. 구체적인 상황을 제시하는 질문이라 스토리텔링을 가미한 응답을 자연스럽게 유도하고, 행동을 토대로 한 개인의 성질머리를 짐작할 수 있다. 상대방에 대한 단서를 미리 채집하니, 상대방에 대한 배려로 까지 이어질 수 있다.
담당자님의 질문은, 이 얼마나 훌륭한 질문이란 말인가!
게다가 질문만 쏟아냈지, 질문을 왜 했는지 물어보는 면접관은 만나보질 못했기에 퍽 신선한 경험이었다.
면접관의 질문의도를 처음으로 듣게 되니, 장단점 문답 자체를 새로운 지평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이런 질문을 붙이는 회사라면 분명 좋은 사내 문화를 꾸리고 있을 거란 심증을 쌓을 수 있다.
장단점 문답은 그 자체로는 유효한 인사이트를 끄집어내기 힘들다. 콘셉트를 덧대야 힘이 세진다. 질문자가 뚜렷한 의도와 심증을 갖고 임해야, 유효한 응답을 얻어낼 수 있다. 질문은 질문하는 사람의 의도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구성하는지에 달렸다.
자본이나 기득권이 없는 개인은, 평생 동안 타인에게 자신을 설명하는 작업을 반복하다 죽음을 맞이하리라. 죽기 전까지 자신의 장단점을 떠들어야 한다면, 오해로 얼룩질 수밖에 없는 자기소개를 짜야한다면, 그것을 색다르게 접근하려는 사람에게 마음을 주는 게 낫지 않을까?
당신이 만약 누군가에게 정을 붙여야 할 처지라면, 개별 개체의 장단점을 상냥하고 정중한 어휘로 따지는 사람에게 다정했으면 좋겠다.
1년, 365일의 3분의 1을 취업 면접에 몰두하다 보니, 아주 경험적이고 임상적인 깨달음을 얻었다. 타인에게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 세련된 사람이 결국 좋은 인성과 탁월한 능력을 갖춘 사람란 것.
인터뷰를 마친 후, 최종 합격통보를 받았다. 좋은 동료와 함께 일할 수 있겠단 생각에 기꺼이 팀에 합류했다. 3개월 수습기간을 묻고 따블로 채운 6개월 차 신입사원은 그럭저럭 직장을 만족스럽게 다니고 있다. 일은 도전적이고, 업무는 제법 터프하지만, 좋은 사람들을 만나 믿고 의지한다는 감각이 애사심을 북돋는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비슷한 경로를 거쳐, 소중한 동료를 만나시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