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썰미

이건 알고리즘이 아니라 마음의 문제니까

by 정필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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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 나는 눈썰미가 참 신기해. 특히 얼굴을 알아채는 눈썰미 말이야. 평소처럼 아침에 환승열차를 갈아타려 한꺼번에 쏟아지는 사람들을 헤집고 나아갔어. 인파 속에서 아주 잠깐 익숙한 얼굴이 섞였다는 걸 눈치챘어, 남다른 얼굴을 솎아내 잠시 내 편으로 돌려세웠는데, 그럼 그렇지! 내가 정확히 본 거야.


엊그제 아침, 신도림역에서 대학 후배를 만났어. 아주 오랜만에. 몸짓을 담아 인사를 건넸어. 단톡방은 여전히 야단법석이고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통해 거의 매일 안부를 주고받지만, 아무래도 가을볕이 따사롭게 내리쬐는 지상역 플랫폼에서 눈을 마주치면 훨씬 반갑지. 다음 열차가 오기를 기다리며 새삼스럽게 서로 안부를 물었어. 각자의 SNS를 통해 일상의 조각을 성실히 공유하고 있는데도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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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에 분명 후배랑 나란히 캠퍼스로 가는 열차를 탔었는데… 오늘은 방향을 반대로 틀어 초록색 지하철에 몸을 밀어 넣고, 강남과 선릉을 잇는 대로변에 무성하게 우거진 빌딩 숲을 헤치고 무려 출근을 하고 있네. 와우 알찬 방학을 고민하는 삶에서 야근을 알차게 피하는 법을 고민하는 삶으로 건너와버렸네. 정말이지 건너와버렸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부러웠던 건 아냐. 6연강을 듣는 후배의 한숨이나 주간업무를 쳐내야 하는 나의 한숨이나 무겁긴 마찬가지지.


삶의 무게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거라고 믿어,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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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얼굴을 구분 짓는 것만큼 놀라운 능력도 없는 것 같아. 앞으로도 사람 눈썰미가 기계보다 우월할 거라 생각해.


이건 알고리즘이 아니라 마음의 문제니까. 짧은 순간에 차이를 구분짓고 알아채는 넉넉한 마음씨를 계속 간직하고 싶다. 스타벅스에 흐르는 재즈선율을 백색소음이 아니라 빌 에반스의 피아노 연주라고 알아 챌 수 있는 '그런 사람'.


너는 어때?



작가의 코멘트 : 말로 끄집어 내고 싶은 생각을 2인칭으로 묶어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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