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양귀자 스앵님 소설<비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한다>도 아니고 비가 오면 모듬전에 막걸리를 마시겠다는 B. 비만 오면 막걸리를 마시자는 B의 행선지를 따라갈 수 밖에 없지.
우리 동네엔 공덕시장만큼의 고퀄리티를 유지하면서, 무한으로 즐기다 가라는 어느 갈빗집처럼 즐길 수 있는 모듬전집이 있기 때문.
하필 겨울에도 문전성시여서 한시간을 바깥에서 손가락 호호 불며 기다렸지만 그마저도 좋았다. 만날 가는 곳이라 사진도 안 찍어둠.
이 남자가 막걸리에 모듬전 땡기자고 하는 날에는 늘 좋은 대화를 주고받게 되는데...
이 남자와의 동행을 이미지로 표현하자면 나란히 걷다 춤추는 모양새라 해야 하나~ 되게 다른 성격을 가진 두 인간이 묘한 교집합으로 얽혀 진한 정을 나눔.
"사람은 누구나 ~한 척 하는 게 있다잖아. 너는 ~~한 척하는 거 같냐?"
"나??!! ... 흠(터레스팅) ... 나는 내가 '잘 먹고 잘 사는 척' 하는 거 같아. 이건 돈 많다고 사치 부리는 게 아니라. 내가 실제로 잘 먹으려는 거랑, 잘 살 고 싶은 걸 내세우는 거야. 너도 알다시피 나는 내 일상의 부분을 도려내서 사람들에게 공유하잖아. 그건 내가 의식적으로 타인에게 '저는 이러 이러한 삶을 추구한답니다. 혹시 당신은 어떠신가요?'라고 묻는 셈이거든. 넌 뭔데?
"나는 '안 힘든 척'을 하고 살았던 거 같아. 이건 내가 하는 '안 힘든 척'이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해서 그러는 거야. 힘들 때 힘든 척하고, 안 힘들면 안 힘들다고 태연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나는 이게 힘드네."
(...중략...)
"와 그러면 나는 플러스+ 척이고, 너는 마이너스- 척에 가깝네.
"그거 내가 예전에 공무원 법률 공부했을 때, 작위랑 부작위라고 불러. 해야했음에도 하지 않은 것을 부작위不,作,爲. 작위는 반대."
"오 그럼 'Do or Do not' 인가..."
= 이 대화의 주제는 시인 김수영의 표현을 빌리면 '포즈POSE'. 타인을 의식하며 짓는 한 개인의 사회화된 행동. 그것을 얼마나 잘 다루고 있는지에 대한 문답으로 기억한다
"너 요즘 시간 좀 있으면, 지방법원가서 재판을 니 흥미에 알맞은 걸 골라 한 번 지켜봐봐. 보는 거 되게 쉬워. 신분증을 내지 않아도 되고, 아무도 참관을 막지 않아. 거기 가면 되게 많은 걸 느끼게 될 거야."
" !! 야... 그거 내가 좋아하는 디자이너가 미美적 기준에 균열을 내고 싶은 사람은 신세계백화점 명동본점에 가라고 했던 말이 생각나는데...비슷한 충격을 받을 거 같아."
"나는 가서 공판 몇 개 지켜보면서, 법원이야말로 사람의 민낯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이란 생각이 들었어. 누구든 여기서는 가장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을 꺼내겠구나. 그렇게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구나. 그리고 사법으로 잴 수 없는 죄, 나 자신만 아는 내면의 죄나, 양심에 호소하는 죄 같은 것들도 생각해봤어...호송되는 피고인을 다루는 사람들이나, 재판에 임하는 판사,검사,변호사의 태도도 보통 사회랑은 남다른 구석이 있고...
"아무래도 법의 단어로 이야기 하니까 그렇겠지? 그래서 너는 여길 어쩌다 갈 생각을 하게 된거야?"
"나야 예전에 노량진에서 공부할 때, 강사가 법공부하다 심심하거나, 이 공부를 더 잘 이해하고 싶으면 가보라 해서 한 번 가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