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에 구애받지 않는 공부를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거니와, 지금 우리 회사가 하는 일 자체가 두루 다방면에 호기심을 갖고 정보를 긁어모아야 하는지라 앞으로 도서관에 다닐 일이 많아지리라. 학이시습지 공자 선생님 역시 인생은 불역열호입니까?
일하는데 필요한 책이 평소에 관심 있는 책이기도 하다는 게 얼마나 큰 기쁨이고 행복인지.
올해 춘삼월에 느끼는 가장 커다란 기쁨은 아무래도 월요일 아침마다 쏟아지는 햇볕을 쬐며 회사 옆 도서관으로 내달리는 일이다. 한강을 건널 무렵 비행기 편대처럼 날아 한강 하류로 비행을 시도하는 철새 무리를 본다거나, 명량에서 열두 척의 조선배를 사뿐히 즈려 밟고 갈 기세였던 일본 전함처럼 무리 지어 밤섬 주위를 떠다니는 오리 무리를 보는 것도 자전거를 몰고 나아가며 느끼는 사소한 기쁨 중 하나다.
그러다 보면 망원동 방면 출입구를 통해 경의선 철길로 빠지거나, 양화진 순교성지로 올라 홍대입구역 가는 길로 빠져 살짝 연희동 쪽으로 방향을 비틀어 골목길로 나아갈 수 있으니, 내친김에 페달을 세게 밟아 단숨에 백양로로 박차고 올라가 보는 것이다. 대운동장을 지나 학술정보원 벽 모퉁이 한편에 자전거를 잠시 내려놓는다.
학술정보원에 도착하면 출근 시간을 30분 정도 남겨놓는데, 간밤에 미리 점찍어둔 책을 빌릴 셈이니 그리 서두를 이유도 없다. 오히려 오늘의 저녁밥과 내일의 점심 샐러드를 고민하느라 쏟는 시간이 더 크다. 매점에서 도시락이나 챙기며 휘파람이라도 불어야지. 매점에서 파는 生우유 아이스크림 콘은 볼 일을 마치고 회사로 향하는 내게 진짜로 휘파람을 부르게 한다. 룰루~
읽을 책 고르는 기준 : 흉내내기를 위한 책 / 일평생 추구하(려)는 주제를 위한 책 / 요즘 자주 생각하는 주제를 위한 책
자. 그리하여 이번 달은 어떤 책을 빌리는가. 굳이 매주 찾아갈 정도인 까닭이 있는가.
있다.
글 잘 쓰는 사람들의 정수를 온몸에 쏟아부어야 하기 때문이다.
서가에는 내가 아직 집에 미처 모시지 못한 멋진 글쟁이들이 도처에 자리한다. 주간지 산문 연재의 아이돌이시자 뼈 있는 농담의 대가이신 김영민 교수, 시만큼 산문도 강력한 김소연 시인, 청탁받은 산문 원고를 쓰는 무라카미 하루키, 나의 미약한 산문 원고를 손봐주시는 편집자 Y님이 추천해주신 줌파 라히리. 산문집을 무사히 엮어낸 선배들을 만나러 분주히 서가를 쏘다닌다.
요즘의 나는 5권을 빠르게 순환시키며 읽는데, 1~2권 정도는 에디토리얼 업무에 쓸 레퍼런스고, 나머지는 글 잘 쓰는 사람들의 산문집을 만나는데 열심이다. 서가에서 끄집어내 대출을 마친 책들은 예전에 읽었거나, 읽고 싶었는데 읽지 못했거나, 몰랐지만 이내 푹 빠져 읽을 책들이다. 바꿔 말하자면 내가 손길을 내민 산문은 나의 과거였고, 나의 지금이며, 나의 내일일 책들이다. 나와 닮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그 누구도 함부로 따라 하기 힘든 개성만점 산문들이다. 산문집이 숨어든 서가에서 나는 모든 걸 잊고, 그들과 대화를 나눈다.
서가에서 볼 일을 마치고 동네를 크게 돌아 쏘다니며 일하고 싶은 마음도 넉넉히 북돋아본다.
쓰기 시작한 시각 오후 10시 30분, 소요시간 30분.
의식적으로 쓰는 글이 풀리지 않아서 생각나는 대로 마구 써본다... 글이란 참 아이러니 하지. 힘 빼고 쓴 게 힘주고 쓴 거보다 나아보이기 마련이니...
청탁받은 원고도 이런 리듬으로 써 내려가면 참 좋을 텐데... 글쓰기에 적합한 마음씨는 최근 들어 많이 회복한 거 같은데, 글쓰기를 살리는 리듬감은 아직 되찾지 못한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기본적으로 글쓰기를 음악에 빗대는 작가들에게 공감하는 편이다. 재미없고 감동도 못주는 글은 대부분 글맛에 리듬이 없다. 하필 리듬을 잃은 글이 내 글이라는 게 퍽 서운할 따름이지.
그래도 미리 썼던 글에 리듬을 부여할 수 있으니 포기하지 말 것. 미리 썼던 글의 리듬이라도 다시 고치러 가자며, 마음을 다독이며 글에 리듬을 불어넣어 본다.
브라질에서 태어난 보사노바, 남미 스페인의 춤추는 무용수를 떠올리게 만드는 볼레로, 작은 아씨들이 연회장에서 췄을 법한 왈츠.
머나먼 나라의 낯선 리듬을 노동요로 끌어안은 채.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나는 나의 글을 들여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