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없지만 종교적 체험은 신뢰하는 이유
시속 20km로 양화대교 남단을 통과하는 자전거 위에 물방울이 적중할 확률은 몇이나 될까? 그건 날아가는 비둘기가 투수가 포수를 향해 던진 공을 얻어맞는 확률만큼이나 낮겠지.
서울 어딘가에서 자전거를 타던 지난 토요일, 내 머리 위로 빗물 같은 게 떨어졌다. 앞바퀴 위에 달린 바구니에도 물방울이 튀었다. 바구니 위에 얹어둔 빵봉투에 얼룩이 지지 않는 것으로 짐작했을 때, 다리 어딘가에 이슬처럼 맺힌 물방울이 아닐까 싶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빼꼼 올려다보니 내가 통과하는 곳은 양화대교 한강공원 진입계단 근처였다. 바구니에 담았던 빵 봉투로 얼른 손을 뻗어 냄새를 맡아보니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아 조금은 안도했다. 새똥이었으면 기분이 한국은행 기준금리만큼 낮아졌을 테지.
사람 겪는 일이 참 기묘해. 마른하늘의 날벼락은 실제로 벌어진다. 어떤 우연은 너무 절묘해서 완벽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일요일 아침, 요가&무용레슨을 받으러 연남동에 다녀온 나는 몹시 배가 고팠다. 집으로 돌아가는 인천역 방면 열차에서 나는 원래 내려야 할 역을 캔슬하고 한 정거장 더 가기로 맘먹는다. 걸음 방향을 크게 틀어 주안의 오랜 주택가로 들어갔다. 인천에는 고향사람들이 으뜸으로 치는 신포 닭강정이 있으나, 혹자는 신포동 보다 맛을 더 높게 쳐주는 주안 대오통닭의 닭강정이 먹고 싶어졌다. 미리 전화를 걸어 예약해둔 닭강정을 들고 집까지 느긋하게 걸어가는데, 횡단보도 앞에서 누가 나를 잠시 멈춰 세우는 게 아닌가.
"저기 여기 근처에 재흥시장이 있지 않나요?"
"(??? 그런 시장이 있었나?...)"
길을 묻던 아주머니의 마스크가 갑자기 내려간다.
"어머 너?!"
"아니 고모!!!"
서울 답십리 큰집에서나 보던 둘째 고모가 왜 여기서 나와? 요양병원 일 때문에 잠시 인천에서 머무르고 있다는 소식을 오마니를 통해 듣긴 했지만, 이렇게 길에서 느자구없이 만날 줄이야. 고모 곁에는 요양보호사로 추정되는 세 명의 길동무가 있었고, 갑갑해서 잠시 나왔다고 했다. 요즘 같은 시기에 카페를 갈 수도 없는 노릇이라 나중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피식피식 웃었다.
레슨 받기 싫어 방에 콕 틀어박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면, 레슨 받고 개운해진 몸을 이끌고 안양천 고척 돔구장까지 자전거를 타지 않았더라면, 닭강정을 사들고 춥다는 핑계로 버스에 탔다면, 나는 고모를 만날 수 없었겠지. 사람 인연도 참 기묘해. 낯선 동네에서 갑갑해서 잠시 산책을 나섰다, 롱 패딩과 마스크로 중무장한 조카에게 길을 묻는 고모도 존재한다. 내가 물리학이나 수학은 잘 모르지만, X, Y, Z 축에 놓인 두 독립 개체가 무작위로 움직이다 같은 시공간 좌표에 머무를 확률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해지는구먼.
온 가족이 모여있는 일요일 오후, 닭강정을 사들고 집에 들어온 나는 헐레벌떡 이 소식을 식구들에게 알린다. 나는 주방에 있는 아일랜드 테이블 옆에 앉아 온기가 남은 닭강정을 우물우물 먹으며 고모의 표정에 깃든 혈색이나 횡단보도 신호가 한 번 바뀌는 사이에 나눈 짧은 대화를 전한다.
"어머어머 무슨 그런 일이 다 있니?"
거실에 앉아 마늘을 까던 오마니는 꼭 느이 할아버지 같다며 말을 이어간다.
"할아버지가 형이랑 이북에서 따로 월남하셨었잖아. 형제가 따로. 그런데 할아버지가 수원에 계셨을 때, 느이 할아버지가 어느 날 버스 안에서 군복에 적힌 '이종환' 세 글자 적힌 것만 읽고 버스에서 얼른 뛰어내려서 내려서 형 만났다고. 그게 엄마 큰아버지인, 수원 할아버지잖니."
"아 맞다. 그랬었지. 할아버지 얘기는 언제 들어도 신기해. 남한에 있어도 서로 소식도 모르고 사는 실향민들 많잖아."
"그거뿐이겠니? 그러다 할아버지도 형 따라 군에 들어갔는데, 부잣집 막내딸이던 느이 할머니 만난 거잖아. 할머니는 그때 방 여섯 칸 살던 집 딸이고, 할아버지는 북에서 온 고아가 어딜 넘보냐며, 할머니 만나러 갔다 쫓겨난 적도 있다고 하고."
"아! 할아버지 더 오래 살아계셨으면 그 얘기 진짜 듣고 싶은데..."
"얘는! 뭐 그걸로 소설 쓸 거니?"
"우리 외할아버지는 그래도 돼. ㅇㅇ"
"큰 이모가 기억하는 게 많으니까 나중에 큰 이모한테 물어봐"
외할아버지는 황해도에서 홀몸으로 월남해 전성기에는 박지성의 활동량과 손흥민의 공간침투력을 발휘하며 트럭운수사업을 펼치시며 자수성가하신 분이다. 사업하는 분들이 대개 그렇듯, 현대아산 정주영 회장도 손 꼭 잡고 울먹일 사연이 가득하다. 내 기억의 파편을 하나씩 모아 보면,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의 이야기에는 우연치 곤 너무 기적같이 느껴지는 사건사고들이 많다. 어머니 추억을 조금 보태니 할아버지가 겪었을 해프닝이 더욱 선명해지니. 가만히 생각해보니 결국에 사람이 하는 일, 사람이 엮이는 일이 다 어떤 실천 내지는 행동에서 빚어지는 것일 뿐인 건가 싶다.
성공이나 실패는 일단 아무래도 상관없고 가진 게 뿡알 두쪽 밖에 없는 상태에서도, 행동 하나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즐기는 내 성격은 어쩌면 외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셩격일지도 모르겠다. 오늘따라 외할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다. 그리고 외할아버지의 좋은 점을 더 잘 발휘해보도록 해봐야지. 행동력 하나로 경제적 자유와 살아갈 이유를 차근차근 늘려나갔던 외할아버지였다. 그런 그를 나는 애틋해했다오.
4.
여기서부터는 정리되지 않은 아무 말 대잔치.
우연이 빚어낸 사건은 사건 한복판에 있는 사람에게 종교적 체험으로 기억된다. 절에 가면 108배를 올리고 영어 이름은 논산훈련소에서 받은 세례명을 쓰는 나이롱 종교인에게도 영성은 있다. 일상에서 겪는 우연이 너무 절묘하게 느껴지면, 사람은 저절로 인과관계를 추적한다. 평소에는 신경도 쓰지 않은 일에 마음을 쓰고, 성찰을 시작한다. 왜 이딴 일이 하필 나에게, 혹은 이 시기에. 아무리 생각해봤자 정답 같은 건 알 수 없지만, 종교적 체험에서 얻은 가치관은 사람의 인생을 좀 더 일관성 있게 가꿔준다는 점에서 유익하다. 종교는 없지만 종교적 체험은 신뢰하는 이유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나의 아무 말대 잔치보다 유익할 어느 만화의 명장면.
내가 이 모양 이 꼴로 태어나, 알 수 없는 일에 휘말리고, 이상한 사람들과 엮여 어쩔 줄 모를 상황에 놓인다면, 단지 그것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고. 거기서부터 온전한 자유가 시작된다고. 지금은 요 정도만 생각하고 산다.
나에게도 비슷한 체험이 있었다. 요즘도 종종 느낀다. 이 사람, 이 사건, 이 대화를 위해서 내가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었구나...라는 생각, 어떤 각성, 강렬한 깨달음. 올해는 그런 체험이 많아서 다행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