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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선 May 06. 2023

육체는 신전이다

우울증 수기 4

지난 글에 이어서 네 번째 우울증 수기입니다.

바로 이어집니다.



나는 생각이 많은 사람이다. 멍청해서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 대부분의 일을 머릿속으로 수십 번 생각해 보고 여러 번 시뮬레이션해보고 나서야 실행에 나선다. 결정하고 나서는 득달같이 돌진하는 편이지만 결정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는 편이다. 아무것에나 득달 같이 돌진하면 생존에 좋지 않기 때문에 나라는 동물로서는 경제적인 습성인 것이다. 그래서 생각만 많고 실제로 하진 않은 일들이 많다. 내 현실이 언제나 내 상상보다 지루했던 이유가 이것이다. 영화 인셉션의 세계에 있다면 꿈에 중독된 자들 중에 하나가 되지 않았을까. 물론 코브처럼 아이들이 있다면 그 책임을 져야겠지만, 나는 혈혈단신이다.


악순환(Vicious Circle)은 말 그래도 악랄하다

우울증과 직면하기로 결심하고 다음날부터 바로 시작한 것은 운동이었다. 그간 내게 도피처 되어준 침대라는 작은 세계에서 벗어나 그간 쌓여있던 집안일들을 하는데 최초의 호모 에렉투스가 이랬을까 직립보행 하는 것이 영 어색했다. 절대로 과장이 아니다. 거의 걷질 않았으니 다리 근육이 약화된 게 가만히 있어도 느껴질 정도였다. 몇 달간 끼니도 제대로 챙겨 먹지 않고 수면 장애에 시달리고 누워서만 지냈더니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목, 어깨, 등, 허리가 결리고 아팠고 기운이 없었다. 그러면 그 '기운 없음'이란 결과는 다음 사이클의 원인이 되어 전형적인 악순환을 만들어 상태는 점점 더 나빠져만 간다. 그게 내가 수개월간 헤매고 있던 길고 깊은 터널에서 벌어진 일이다. 우울증을 마주하기 위해 당장 해야만 하는 일은 이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끊어내는 것이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와 같이 논쟁의 여지가 있는 말이지만, 지금 내겐 무엇이 먼저냐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건강한 신체가 필요하다. 글을 쓴다는 것은 육상 경기로 치면 마라톤과 견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다분히 체력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근육이 빠져 이곳저곳이 쑤시고 아픈 것은 상당히 불쾌하다. 최소한 이전의 몸 상태로 돌려놔야 했다. 아니, 그 이상을 해보자고 생각했다. 이제는 일도 하지 않는 백수니까 시간은 넉넉하다. 그래서 매일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최대한 생각과 계획은 배제하고 내가 현재 잘 알고, 당장 할 수 있는 운동을 지금 할 수 있는 데까지. 시챗말로 무지성으로, 무작정 했다. 지쳐서 쓰러지면 좀 쉬었다가 다시 일어나서 반복했다. 잠이 오지 않아 생각이 많아지는 새벽이면 나가서 조깅을 했다. 새벽 2~4시경에는 거리에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다소 부담 없이 밖에 나갈 수 있었다. 여전히 사람을 마주하는 것은 조금 두렵다. 그래서 짧게는 한 시간, 길게는 두 시간을 뛰었다. 이런 식으로 운동을 한 것은 몸을 혹사시키면  불면증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계산이 있기도 했지만, 주목적은 그게 아니다. 당장 운동할 수 있으면, 그냥 하는 거다. 한 번에 하나씩.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운동에만 집중하자. One thing at a time. 그게 요새 내 모토다.


처음에는 매우 힘들었다. 느린 속도로 100미터 정도만 뛰어도 숨이 찼다. 그러면 뛴 거리보다 더 멀리, 천천히 걸으면서 숨을 고르다가 괜찮아지면 다시 뛰고를 반복했다. 뛸 때는 힘들어서 괜찮은데, 걸으면서 쉴 때 또 이런저런 잡생각들이 드는 것을 막기 위해서 가벼운 주제의 팟캐스트를 들었다. 인스턴트 하게 웃겨주는 유머 팟캐스트들이 제격이다.


그러고 보면 내 인생도 뛰지 않고 설렁설렁 걷고 있었기 때문에
우울증에 걸린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내가 사는 동네는 서울의 강남이라는 곳이다. 여기서 4년째 살고 있지만, 사실 나는 이 주변을 잘 모른다. 보통 집, 회사, 집, 회사를 반복하는 집돌이다운 생활을 했던 데다가 가끔 어딘가 다른 곳을 간다고 해도 각 목적에 따라 이미 정해 놓은 한 곳에서 대부분 해결하기 때문이다. 음식은 집이나 회사 주변에 종목 별로 정해진 곳, 영화가 보고 싶으면 강남 CGV,  책이 보고 싶으면 역삼 도서관 또... 뭔가 더 말해보고 싶은데… 더 말할 게 없다. 정말 단조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걸 새삼 느낀다. 이런 집돌이라서 4년간 산 동네의 생김새를 잘 몰랐다. 나란 놈은 여기서 또 생각을 했다. 이 기회를 살려 동네 이 구석 저 구석을 훑어보자고. 다행히 실행하기 쉽고 나름 생산적인 생각이었다. 그래서 인적 드문 야밤에 동네 여기저기를 뛰어다녔다. 몇 주 정도를 그러고 나니 이제는 이 동네의 생김새를 대강 알겠다. 그중 한 2할만 밝은 낮의 모습이고 나머지는 모두 어두운 밤의 모습이긴 하지만 그게 또 지금 나의 모습과 닮아 있어서 괜히 각별하다. 낮의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그 야심한 밤에 일하는 사람들을 간혹 마주하면 일말의 동지애도 느꼈다.


조깅을 하고 와서 씻고 누우면 대략 새벽 5시 경이된다. 처음에는 너무 힘들어서 누우면 곧 잠이 들곤 했는데 며칠 그렇게 했더니 또 적응이 되었는지 뛰고 오면 오히려 정신이 말똥말똥해져서 다시 잠 못 이루는 새벽이 이어졌다. 그러다 아침이나 낮에 매트 위에서 요가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스르륵 잠이 들곤 했다. 요새 가장 기분이 좋을 때가 이럴 때다. 운동하다 지쳐서 나도 모르게 스르륵 잠이 들었다가 깼을 때 가장 기분이 좋다. 이런 꿀잠이 또 없다. 그렇게 매일 하루에 4~5 시간을 움직였다. 2시간은 밖에서 뛰고, 1시간은 집에서 뛰고, 1시간은 웨이트하고, 1시간은 스트레칭이나 요가를 하면서, 중간에 힘들면 쉬고, 잠이 오면 자고, 배고프면 먹고, 쉬는 중에 심심하면 영화나 책을 보다가, 또 운동하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그 무엇보다 더 내 몸에 집중을 하니 체력이 늘어나는 것이 느껴졌다. 한 번에 더 멀리, 더 오래 뛸 수 있게 되었고 숨이 턱까지 차올라 주저앉는 지점이 조금씩 뒤로 밀릴 때마다 성취감이 들었다. 그러면 그 성취감을 딛고 조금 더 멀리, 조금 더 오래 달리며 작은 도전들을 쌓아나갔다. 악순환을 끊고 작은 선순환을 만들어낸 것이다.


우울증에 빠져 한창 허덕이고 있을 때, 그러니까 아직 우울증을 직면하지 못하고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외면하려고 했을 때는 몰랐는데 요새처럼 '건강한 신체 먼저'에 초점을 맞춘 생활을 하다 보니 참 다행이다 싶은 게 하나 있다. 바로 술을 즐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술을 즐겼다면 우울증에 허덕일 때 술독에서도 같이 허덕이다 무슨 사달이 나지 않았을까. 혹자는 오히려 평소 술이나 담배 같은 것으로 뇌에게 심심한 위로를 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 반향이 극심한 우울증 같은 것으로 한 번에 밀려온 거라고 하기도 하지만 나는 향정신성물질이 그다지 달갑지 않다. 내 멍청한 뇌를 보존해야겠다는 생각은 아닌데 왜인지 정신력에 영향을 주는 물질들을 기피하는 편이다. 그게 좋은 영향이든 나쁜 영향이든 말이다. 아마 이것도 어머니의 영향이지 않을까 싶다. 술도, 담배도, 커피도, 항우울제도, 신경 안정제도, 수면제도, 싫다. 병원에서 주는 약에 의지하기보다는 자연력으로 회복하고 싶다. 설령 실패하더라도 도전해보고 싶다. 이번만은 실패가 무서워서 안전한 도전만 하며 스스로를 도전하는 사람이라고 윤색했던 과거의 나를 이 지경에 이르러서까지 답습하고 싶지 않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1q84를 보면 아오마메라는 인물이 이런 말을 한다. 육체는 신전과 같다고,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고, 항상 진지하게 자신의 몸을 지키려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만성적인 무력감은 사람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손상시킨다고, 육체야말로 인간의 신전이며, 거기에 무엇을 받들어 모시든, 그것은 조금이라도 더 강인하고 아름답고 청결해야 한다고. 사도 바울의 고린도서를 읽어보진 않았지만 나는 이 표현이 마음에 든다. 아오마메처럼 바울과는 다소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긴 했어도, 육체는 신전과 같다. 신앙이 있어 거기에 신을 모시든, 인간의 비물리적인 어떤 특별한 것을 모시든, 모든 것은 물리적이지만 아직 인간의 뇌 속에서 벌어지는 작용들을 다 밝혀내지 못했을 뿐이라고 믿든, 안에 뭐가 들어있든, 들어있지 않든 간에 육체는 중요하다. 정직하고 신실한 성직자가 신전을 관리하듯 정성을 다해 관리해야 하는 것이다.


목 아래 부분은 우리에게 필수적이지 않다는 데릭 파핏의 말이 설령 참이라도 뇌나 머리를 다른 건강한 육체에 이식하는 지금은 너무나도 공상적인 일이 일회용 마스크를 매일 교체하듯 쉽고 싸게 할 수 없는 현실에서 건강한 육체를 위해 운동을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애초에 거짓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이 중요하고. 육체를 "나의 일부분"으로 보나 "내가 잠시 타고 있는 것"으로 보나 나의 잘 존재함(well-being)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현실이니까.


그러니까 운동을 해야 한다. 당신이 우울증을 앓고 있고 그걸 마주하기로 결심했다면 더더욱. 건강한 정신을 위해 건강한 신체를 만들어야 한다. 닦고 조이고 기름 쳐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인간이란 게 한낱 동물에 불과하단 것을 믿기 시작하면 우리가 결점 투성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와 남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용서하는 데는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용서와 관용이 우리 시대에서 가장 필요한 것으로 보이니까.


불면증아, 네 죄를 사하노라. 

그게 니가 원하는 거라면, 마음 껏 놀다가렴.

한 바탕 달리고 와서 잠을 청하는 중 반사된 이미지가 재밌어서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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