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아니라 욕조 물놀이
안녕!
우픈(웃기고 슬픈)? 얘기 하나 해줄게.
날이 좋을 때 애나는 서퍼스 파라다이스보다는 쿨랑가타에 자주 간다고 했어.
관광객이 적어 서퍼와 수영을 즐기기가 더 좋다는데 나를 위해 며칠 묵자고 골드코스트 Meriton Suites Surfers Paradise에 한 달 전부터 예약을 해 두었어.
아침부터 설레며 분주하게 짐을 챙긴 우리는 날씨까지 좋아서 기차역까지 15분 정도를 걷기로 했어. 자카란다, 골든와틀, 부겐빌레아 혹은 이름도 모를 꽃들도 우리를 들뜨게 했지.
기차에는 여행객과 남녀노소와 홀로 혹은 커플의 청춘들 그리고 남자 중고생들도 6-7명쯤 되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타고 내렸어. 어떤 역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울긋불긋 현란한 차림새의 한 여자가 타서 내릴 때까지 혼자서 큰소리로 떠들고 있는 거 있지. 계속 듣다가 참다못한 남학생들이 그만하라고, 시끄럽다고 몇 번이나 항의를 해도 여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학생들 과도 싸우고 전화상대와도 싸우는 거야. 더 가관인 것은 그런 자기 모습을 실시간 유튜브로 찍고 있었는데 어이가 없더라. 골코까지 2시간 거리에 1시간 가까이나 비상식을 다양성이라고 착각하던, 어이없던 여자가 내리고 그다음 역에서 남학생들도 내리고 나니 세상 참으로 평화로웠어.
헬렌스베일에서 작고 예쁜 트램으로 갈아타고 골드코스트 Cypress avenue 역에서 내리니 바로건너편이 우리가 묵을 호텔이었어. 프런트 데스크에 짐을 맡겨두고 나오니 생각보다 바닷바람이 세게 불고 있었어.
골드코스트 해변이 57-80km 나 된다는 것이 상상이 안 될 만큼 대단하게 느껴지다 못해 끝이 없이 시퍼런 수평선에서 끊임없이 밀려와서 부서지는 하얀 파도는 조금 무섭기까지 하더라.
우리는 멕시칸 타코 레스토랑에서 제공하는 원색의 밀짚(?)모자를 쓰고 타코랑 부리또볼에 과카몰리 추가해서 시켜 먹었어. 기분에 칵테일 한 잔씩 마시면서 잔뜩 분위기도 잡고 사진을 찍으면서 재밌는 시간을 보냈어. 우리 건너편 테이블에는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온 젊은 부부는 애들은 내버려 두고 둘이서 먹고 마시면서 즐기더라.ㅎㅎㅎ.
우리는 구경 인파들과 몰려다니면서 카페에 들러 커피도 마시고 마트도 가보고 쇼핑센터 에도 들렀어. 지인들에게 나눠줄 마그네틱과 원주민들이 만든 타월도 샀어. 서퍼스의 명물 콘돔이라는 오픈형 성인용품 가게도 슬쩍 구경도 하면서 민망해 킥킥거리고...
3시 30분에 호텔로 와서 체크인하려고 하니 방 청소는 되었는데 오픈 준비가 안 되었 다네. 애나는 내가 프런트데스크 직원은 못 듣게 소극적 분노�를 했다고 그러더라.
ㅎㅎㅎ.
대신 레이트 체크아웃으로 (10시 체크아웃 >11시) 해준다고 하니 드라마를 보면서 기다렸지. 4시에 체크인 방 1개+거실+욕실 인 one bedroom 레지던스에서 투베드룸과 욕실 2개에 커다란 욕조에 거실은 두 배로 넓은 곳을 배정받았어. 시티뷰와 오션뷰를 다 갖고 있는 룸으로 업그레이드받고는 아까 혼자 흥분한 것에 좀 민망해지고(좀 참지, 역시 나는 한국인).
바람을 맞고 들어와서 뜨거운 물로 반신욕을 하였어. 해질 무렵 서퍼스파라다이스 해변에서 열린다는 마켓을 가봤어. 주 3회 열리는데 작가들이 직접 만든 다양한 수공예품부터 패션과 기념품을 판매하는 가판대가 100여 개나 된다고 하네. 이름난 휴양지라 어찌나 관광객들이 붐비는지. 가끔 우리나라 여행객들도 보이는데 옷차림만 봐도 한국인이라는 걸 알겠는 건 뭐지.
ㅎㅎㅎ.
골드코스트 Meriton Suites Surfers Paradise 와서 바닷바람을 많이 쐐서 그런지 밤에는 심하게 기침이 나서 많이 괴로웠어.
그러던 한밤 중에 울린 소방 사이렌 소리에 비상대피를 하는 한바탕 소동을 겪었고.
잠이 들지 않아 약을 먹고는 테라스로 나와서 새벽이 올 때까지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어.
창밖을 바라보는데 하늘도 바다도 시커멓고
거친 파도소리는 쉼 없이 들려왔어. 높은 흰파도가 밀려오는 해변을 따라 불빛 하나가 왔다 갔다 하는 거야.
'뭐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켜보고 있었어. 창가에 붙어서 아무도 없는 바닷가의 불빛을 따라서 두 시간 가까이 보고 있었나 봐. 멀리서 수평선이 발갛게 물들기 시작할 때쯤 불빛이 꺼졌어.
아침에 애나에게 얘기를 했더니 동전이나 금 찾는 사람이 있다더니 그런 사람인가 싶더라.
Wow!
남들 다 자는 밤, 파도치는 해변에서 그렇게 열심히 밤샘 작업을 하는 건가. 그 사람은 밤새 일하고 나는 일하는 사람을 밤새 내려다보고. 이해 못 할 일이지만 그런 일도 있더라.
동이 틀 무렵 잠자리에 들어 몇 시간을 자고 났더니 컨디션이 한결 나아졌어.
발코니에서 내려다보니 다양한 에메랄드빛 바다에 하얀 파도가 그림 같았어. 지난밤 커다란 동물소리를 내지르던 밤바다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에 우리는 감탄을 보내며 차와 과일로 아침을 대신하였어.
"너 혼자라도 수영장에서 물놀이 해."
"엄마도 안 하는데 혼자서는 안 할 거야."라네.
서퍼스 파라다이스에서 서핑보드는 못 타더라도 바다 수영은 실컷 하리라 했는데 바다는커녕 실외, 실내 수영장에서 물장구도 치지 못하고 욕조 사우나만 하고 있다니ㅠㅠ.
수영을 좋아하는 애나에게 수영을 배워보려고 챙겨 온 수영복은 가방 속에서 잠만 자고.
ㅎㅎㅎ.
여행도 인생도 가끔 의도치 않은 변수가 생기기도 하는 거 같아. 동생부부도 중국 여행 4일 동안 비와 안개와 구름 속만 헤매다 왔다고 했으니까.
많은 이들이 쏟아지는 햇빛아래 하얀 파도에 온몸을 맡기고 서핑과 수영을 즐길 때, 우리는 더 이상 바람을 쐬는 것은 자제하였어. 얼마 전에 DFO 아울렛에서 내가 잘 먹던 음식을 기억해 낸 애나와 트램을 타고 더커피클럽에 가서 샐러드랑 플랫그릴을 점심으로 시켜 먹고 쇼핑을 하고 물 없는 곳에서 놀았어.
마지막 날 아침에는 기어이 바닷가를 거닐어 보고 싶었어. 신발을 벗고 아이처럼 새들을 쫓아 물기 가득한 해변을 정신없이 뛰어다녔어. 부드러운 모래 위로 하얗게 부서지며 달려오는 파도와 끝없이 펼쳐진 해변은 나의 천국인지 극락인지 아무튼 그랬어.
11시에 체크아웃해야 하는데 골드코스트에서 10시부터 카레이싱 경기가 있다고 하였어. '부릉부릉' '부웅'하는 차 소리가 해변 산책로를 올라오니 더 요란스럽게 들렸어. 우리나라에서 한 번 본 적 있는 F1을 여기서 한다니까 관심이 살짝 갔지만 시간이 없어서 소리 듣는 걸로 만족하는 걸로 치고. 우리가 묵은 호텔 1층 해변 레스토랑이 핫플레이스라네. 음식과 커피를 즐기기 위해 대기 줄이 길었고 먹고 싶은 파스타는 안 된대서 못 먹고 강황이 들어간 골든라테와 타코와 oo(생각 안 남)를 시켰는데 라테 맛은 속으로 '우웩!!!' 다른 것도 음식값만 못했어.ㅎㅎㅎ.
객실로 돌아오자마자 마지막 사우나를 했지. 잊지 못할 골드코스트 뜨거운 욕조 사우나!
다음에 또 뜨거운 욕조 사우나를 해야지.
물론 서핑도 수영도 하고.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