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시 좌복을 접고, 스님께 하산을 고했다.
절에서 4년 정도를 살았다.
나의 첫, 절 생활은 강릉에 있는 한송사라는 절이었다. 1년 정도 살았던 것 같다.
그곳은 출가한 친구가, 아니 도반스님이 주지로 계신 절이었다.
난 그곳에서 행시를 공부하고 있었다.
그리고, 스님과 신도 자녀 중학생과 함께 셋이 강릉시내에서 검도도 배웠다.
또 그리고, 생활비가 떨어질 때면 인력사무소에 나가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일용직을 뛰었다.
한송사 소나무 밭, 구석에 있는 컨테이너가 나의 도서관이자 여름 숙소였다.
막일을 한참 나갈 즘, 안쓰러우셨는지 신도 두 분이 자녀들 과외를 맡겼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막일은 안 나가게 되었다. 매우 감사했다.
어느 날, 스님이 선배 한 분이 찾아왔다며 함께 차를 마시자고 했다.
그 선배는 법원 사무직 7급 수석을 한 분이셨다.
선배는 포크레인 자격증을 따고, 4개월 일을 해 돈이 모이면, 다시 공부하는 패턴으로 5년 만에 결과를 봤다. 내공이 높은 선배였다.
스님께서는 일체 한 마디 잔소리 없이 부러, 선배의 방문을 (나 때문에) 추진하셨던 것이었다.
내가 행시를 공부한다고 하니, 몇 마디 나누고는 앞으로 한 4년 더 하면 되겠다고 선배는 말했다.
공부를 시작한 지, 1년 조금 모자란 시점이었다.
뭐? 앞으로 4년? 눈앞이 캄캄했다.
난, 사실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지 않았다.
검도장에서는 하라는 검도는 안 하고, 성인반 초등교사 2살 연상 누나랑 연애를 하고 있었다.
에스페로 스틱(강원도 여성들은 대게 장거리 운전이 많아, 스틱을 몰았었다.)을 몰던 그녀와 데이트하다가
교장선생님이신 그녀의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를 집 앞에서 마주쳤고,
"저런 쓸데없는 놈 하고나 만나고 다닌다!"라는 질책을 에스페로 운전석에 앉아 들었었다.
강릉에서는 공무원 아님 교사가 알아주는 직업이었다.
각설하고,
이런 나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던 한 보살님이 말씀하셨다.
"절을 해야 할 거 같아요."
"왜요?"
"그냥 해야 할 거 같아요."
보살님은 함께 해줄 수 있다며, 하루 1000배를 권했다.
난 물었다.
"얼마 나요?"
보살님은 말했다.
"계속- 쭉."
스님께 말씀드렸더니, 그러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난 웬일인지 꼭 그래야 할 것만 같아서 하루 1000배, 기약 없는 정진을 시작했다. 보살님께는 혼자 하겠다고 말했다. 폐 끼치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법당은 현대식 콘크리는 건물 2층이었다. 법당으로 올라가 1000배를 시작했다. 보통 108배는 빠르면 15분에서 늦으면18분 걸리는 것이 예삿일이었다. 그런데, 1000배는 무려 2시간 54분, 약 3시간이 소요되었다. 무릎과 허벅지가 많이 아팠다. 스님은 계속하면 점점 시간이 줄고, 몸도 괜찮아진다고 거짓말을 태연히 했고, 난 철석같이 믿고 나아지겠거니 다음 날, 또 했다.
둘째 날, 3시간이 넘어갔다. 그런데 다음 날은 무려 4시간 가까이 걸렸다.
7일이 넘고 무릎은 소위 '아작 난다' 지경에 이르렀고, 허벅지는 진짜 터질 것 같이 아팠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수고로움이 허사가 되게 할 수 없어, 계속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10일이 넘어가면서부터는 5시간이 걸렸고, 나의 하루 일과는 1000배를 위한 준비, 실행, 회복으로만 점철됐다. 오전에 다리를 풀며, 2층 법당에 올라가지 않을 방법, 핑계를 매일 찾았지만 관성은 무서웠다. 무엇보다 지금까지의 수고로움이 허사가 되게 할 수 없었던 마음이 점점 커졌기에, 올라가기 싫은 만큼 오기가 발동해 기어코 2층에 올라갔다. 스님의 거짓말을 뒤늦게 알아챘지만, 따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렇게 30일이 흘렀다.
그날은 정말이지 300배를 넘어가면서부터 사점이 찾아와 도저히 절을 할 수가 없었다. 뜨거운 여름이라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숨은 가빴으며 다리는 후들거리다 못해 계속 균형을 잃었다.
결국, 절을 중단하고 좌복 위에 네 발로 엎드려,
'도저히 못하겠다.'
내면에서 포기를 선언하고, 숨을 몰아쉬며 계속 그렇게 엎드려만 있었다.
그런데, 한 십여 분이 흘렀을까?
고개를 들어, 부처님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문뜩 법당 측면 현대식 통창을 바라보았다.
한송사 답게, 소나무 밭이 눈에 들어왔다.
난, 또 그곳에 시선을 고정한 채, 십여 분 그렇게 멍하니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쑤욱- ,
소나무가 법당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난, 꿈같은 환영에 경악하며 그 자리에서 그냥 몸이 굳어버렸다.
곧이어,
법당이 소나무 밭인 지, 소나무 밭이 법당인지 모를 황홀경에 깊게 빠지게 되었다.
안과 밖이 무너진 경지.
그 어느 순간 난, 불현듯 깨달았다.
이것은 '구경각!'
난, 그 즉시 좌복을 개고 법당에서 내려와 스님과 보살님께 하직 인사를 했고, 다음 날 서울로 상경했다.
상경 후,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글' 강의를 신청한 일이었다.
그 이후, 난 뒤도 옆도 돌아보지 않고 겁도 없이 전업작가를 선언하고는 글공부를 시작했다.
지망생 주제에, 전업 작가라니...
이미 고난은 그렇게 예고되어 있었다.
만약, 중도 포기하거나 해서,
구경각을 못 봤다면 난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