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화면에 내 글이 떴다
터졌다.
재난문자처럼 우르르 우르르 아침부터 요란하게 진동이 오더니
결국 점심을 먹을 즈음 조회수 5000을 넘겼다.
조회수 2000, 을 검색어로 검색을 해보고
알고리즘에 대한 글을 읽고
여기저기 뒤지던 중
다음 메인 화면에 노출돼 있는 내 글을 발견했다.
처음 기사를 쓰고 많이 본 기사로 올라갔을 때 보다 더한 희열이 느껴졌다.
나의 이야기
이것은 기사와 다른 이야기였다.
그리고 곧 브런치 화면에도 떠 있는 나의 글
그리고 이어지는 댓글들
라이크잇
그리고 곧바로 이어진 책망의 댓글들
우리 아이가 쓴 것처럼 아이에게 감정이입을 해서 써준 댓글들을 읽고
마음이 쪼여오기 시작했다.
‘분명히 반드시 트라우마가 생길 것이다’란 느낌의 댓글들
독심술이라도 쓴것인지 나의 아이의
마음을 옮겨놓은 것처럼 쓴 댓글을 보면서
반성의 시간에 쌓였다.
어그로, 기레기
나는 15년의 기자생활동안 어떤 단어를 사용해야
대중이 선택하는지
대충은 안다.
그래서 나는 본능적으로 씨씨티비와 범죄 라는 두가지 단어를 썼나보다..
다 저녁 지인에게 온 문자에
브런치 이야기를 했다.
글을 읽은 지인은
‘스릴러 저리가라다,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나중에 쓸어내렸다. 별인 아닌데 너무 엄하다‘
그리곤 댓글에 일일이 대답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너무 늦은 밤이었을까. 지인은 잠들어 버렸을텐데
읽지도 않을 답글을 달고 있었다.
‘언니, 나는 좀 자격지심이 있나봐.
워킹맘이라 손가락질 받는 아이로 키우고 싶지 않은
이것이 내 발목을 잡겠지‘
또 눈물이 또르르
그사이에도 내 글엔 라이크잇
디스라이크잇이 있었다면 오늘 나는 알람에
몇 번 충전을 했어야 할지도.
변명을 하고 싶었다.
나는 내 아이와 잘 소통하고 있고
내 아이의 상처를 잘 보고 있다고.
내 아이는 늘 말한다.
“엄마는 다른 엄마들하고 좀 달라요.
정말로 내 마음을 잘 알아요.
정말로 내 편인 것 같아요.“
항상 아이를 바르게 키우려고 노력하고
예의 바르게 키우려고 노력하는 것과 별개로
나는 아이보다 유치한 감정으로
아이에게 과한 감정이입을 할 때가 있다.
코로나로 인생과도 같은 수영을 강제로 내려놓고
영어학원에 다니게 된 아이는
수영을 하던 것처럼 열성으로 영어에 매달렸다.
작은 쪽지시험에도 아이는
도대회 수영대회를 준비하듯 불태웠다.
어느날 남보다 더 많이
오랫동안 단어를 외우고 간 시험에서
아이는 시간이 모잘라 다 쓰지 못하고
시험지를 낸 모양이었다.
학원차에서부터 울먹이며 전화가 온 아이는
대문을 열고 나를 발견하자마자
울음을 터트렸다.
“나는 정말로 열심히 외웠는데 시간이 없었어요.”
재택근무 중이었던 아이아빠는 아이에게
“시간안에 써내는 것도 실력이야.
그렇게 단련해야해”
하고 뻔한 말을 했다.
나는 아이가 눈물을 쏟아내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
나도 모르게 눈물을 터트렸다
“정말 속상하겠다. 진짜 열심히 외웠는데
진짜 화가나겠다. 어떡해...“
터진 울음이 울음을 부르고
아이의 그간의 노력이 안쓰러워
대성통곡에 가까워질 때 쯤
아이가 어디 구멍에 털 날것 같은 표정으로
“난 엄마가 정말 좋아요.
엄마는 나보다 더 슬퍼해주고 내 마음을 너무 잘알아요.“우리는 그런 사이다.
이것은 빙산의 일각, 나와 아이에게는
당신들이 이해 못할 것이 있다.
이렇게 항변하고 싶었다.
그러나 사실 긴 댓글을 곱씹으며 감사했다.
내 아이의 트라우마를 걱정하며
퇴근길 집에 가지 못하고
기다리며 나의 아이와 나를 위로했던
좋은 이웃처럼
랜선 이웃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나와 아이를 걱정해주고 있었다.
그 걱정이 1만건을 넘어섰다.
디스 라이크잇이 없어 누르지 못한 걱정들도
수천건이리라.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당신의 걱정을 먹고 오늘도
내 아이와 나는 자라겠습니다.
그리고 내일은 오늘보다 나은 부모가 되겠습니다.